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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산성자 산성

산성자 산성의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통구를 서쪽으로 흐르는 통구하에 접하는 비교적 좁고 깊은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산성자의 산성에 도착할 수 있다.
성은 山骨을 노출시킨 험준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谷地에 만들어졌고 남쪽이 가장 낮은데 그곳으로 성내의 물이 모여서 밖으로 배출된다. 그리고 그 주변 봉우리의 약간 낮은 외곽선을 따라서 석축의 성벽을 쌓았는데 남쪽의 낮은 지점에 성문을 만들었다. 산성의 전면에는 溪流가 동쪽에서 서로 흐르는데 급하게 꺾여서 남쪽으로 흘러 통구에 이른다. 그 왼쪽에는 바로 山路를 물고 右岸의 산성과의 사이에는 좁은 평지가 있는데 많은 고분이 그곳에 분포한다. 그 산성이 만들어진 산은 험준하여 그 봉우리를 연결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산성이 되는 것이다.
산성은 천혜의 요새로 공격하기가 무척 어렵고, 방어하기에 쉬운 천혜의 구조인데 그 둘레가 1리에 이른다.
 
圖17_산성자 산성의 약측도
圖18_성벽 단면
圖19_성의 내부
圖20_성의 내부(이상 『조선고적도보』Ⅰ에서 전재)
圖21_산성자 산성에서 채집한 유물( 『조선고적도보』Ⅰ에서 전재)
圖22_산성자 산성 채집 유물( 『조선고적도보』Ⅰ에서 전재)
산성자 산성의 도면을 작성한 사람은 구리야마 보조원인데, 고고학잡지의 보고문에 실린 것이 그의 도면이다. 도면은 산성자 산성이 등고와 함께 표현되었고 계아강을 중심으로 주변의 고분군과 그 대안의 절벽을 등고선으로 표현하였다.
비교적 잘 그려진 도면이지만 정식 지형도를 바탕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이 도면을 살피면 조사단이 산성자 산성의 내부를 답사하면서 다수의 기와를 채집하고 산줄기의 성벽을 전체적으로 확인하면서 그 위치를 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남벽에는 성벽 아래에서 소형 배수공이 확인되었고, 성문 오른쪽은 축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는데, 이는 국내성의 성벽 축조 형태와 거의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성내에서 창고로 인정되는 터가 있고 그 주변 밭에 적색 기와가 널려 있었다. 그중에는 와당도 있으며 평와 파편도 획득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가 국내성으로 믿는 통구성의 채집품과 유사하다 판단하였다. 또한 이들 적색 기와의 시기는 고구려 말기에 해당한다고 보고 문헌에 등장하는 위나엄성이 곧 산성자 산성이라 판단했다. 세키노 일행은 성내에서 고분으로 의심되는 분구를 발견하고 연못지도 확인했다.
이상 1913년의 조사에서 세키노 일행이 답사한 성지는 지금의 국내성과 산성자 산성으로 한정되며 나머지는 전부 고분이다. 이들 성지에서 다수의 기와를 채집한 정황이 드러나는데, 현재 일본 각지에서 확인되는 세키노 혹은 이마니시 기증 산성자 유적출토 기와들은 이때의 조사에서 채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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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자 산성 자료번호 : ku.d_0003_002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