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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백기보고성(白旗堡古城)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920
  • 위치(출토지)
    遼寧省 新賓縣 紅升鄕 白旗村
  • 지역
    무순(撫順市)
  • 유형
    성곽>평지성
  • 형태사항
    동서 남은 길이 118m, 남북 남은 길이 110m, 면적 15,000㎡  , 12점 
출토지
요녕성 신빈현 홍승향 백기촌(遼寧省 新宾縣 紅升鄕 白旗村)
연대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78 6월, 성지는 생산대(生産隊)가 불도저로 평평하게 밀어 논으로 개간하면서 파괴되었지만 성의 윤곽은 뚜렷하게 남아 있었음.
1985왕면후, 손력, 서가국
(王綿厚, 孫力, 徐家國)
전한(前漢)시기 토기편을 발견하였음. 한대 고성(漢代古城)임을 명확하게 확인함.
. 현문물보호단위(縣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됨
1960년대 높이 3m의 성벽이 남아 있었음.
구조특징
성은 논으로 개간하면서 파괴되었지만, 성의 윤곽은 뚜렷하게 남아 있음.
성은 지표면보다 1m 높은 대지 위에 있음. 평면은 거의 방형이고, 방향은 남북향임. 지면 한대 문화층(漢代 文化層)의 퇴적 두께는 40여㎝임.
성벽 등 성곽시설은 파괴되어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음. 기편들이 도처에 흩어져 있었음.
역사적 의미
백기보고성은 한대(漢代)의 평지성으로 추정되는데(徐家國, 1984; 田中俊明, 1994; 여호규, 1999), 집안현성 토성(集安県城土城)·환인 하고성자고성(桓仁下古城子古城)·통화 적백송고성(通化赤柏松古城) 등과 마찬가지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됨(田中俊明, 1994).
고구려시기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규모도 작으며 방어상 취약한 소형 평지성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인들이 재사용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추정하기도 함(여호규, 1999).
백기보고성 일대는 소자하 수계(蘇子河 水系)와 혼강 지류인 부이강 수계(富爾江 水系)의 분수령(分水嶺)지대로서 요동평원에서 소자하 상류를 거쳐 혼강유역으로 진입하거나 혼강유역에서 소자하 상류를 거쳐 요동평원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임. 현재 고구려발상지인 혼강 연안의 환인지역과 소자하 사이의 교통로로는 육도하(六道河) → 횡도하자 애구(橫道河子 隘口) → 차로구(岔路溝)의 환인 서북로와 부이강 - 소자하 상류의 환인 동북로 등을 설정할 수 있는데, 백기보고성은 바로 환인 동북로의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음(여호규, 1999).
백기보고성에 대한 위치비정은 다음과 같음.
徐家國(1984)은 성의 위치와 와당, 기둥초석, 석제 배수관 등의 유물 등으로 볼 때 현치(縣治)의 소재지라고 추정하며, 구체적으로는 한대 상은태현 현치(漢代 上殷台縣 縣治)로 추정함.
潭其驤(1988)은 제2현토군(第二玄菟郡)의 고구려현성으로 추정함.
孫進己·馮永謙(1989)은 『삼국지』위서 고구려조에 ‘동쪽 경계(東界)에 작은 성인 책구루성(幘溝婁城)을 구축하고, 조복의책(朝服衣幘)을 그곳에 두었다’는 기사로 미루어 그 책구루성으로 추정함.
여호규(1999)는 제2현토군의 군치(郡治)인 영릉진고성(永陵鎭古城)에서 동쪽 방향에 위치하였다는 점에서 제2현토군의 ‘동계’에 위치한 최전방 현치로 추정함.
王綿厚(2008)은 전한(前漢)시기 제2현토군 동쪽에 있던 책구루성으로 추정함. 『삼국지』고구려조에는 ‘고구려가 차츰 교만 방자해져서 현토군에 오지 않자, 현토군 동쪽에 책구루성이라는 작은 성을 쌓고 조복의책을 그곳에 두어 해마다 가져가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음. 신빈현 영릉 동남쪽의 이도하자고성(二道河子古城)에서는 한·위·진(漢·魏·晋)시대의 “千秋萬歲”명 와당 등 군국(郡國)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한(漢)의 제2현토군의 고구려현으로 추정됨. 백기보고성이 현토군치인 이도하자고성에서 동북쪽으로 약 30㎞ 떨어진 지점에 있다는 점에서 현토군의 “동쪽 경계(東界)에 축조하였다”는 책구루성의 위치에 부합함. 또한 백기보고성은 한 대성(漢代城)이고, 이도하자고성보다 규모가 작으며 유물이 적다는 점도 책구루성으로 볼 수 있는 근거임. 한편 백기보고성은 현토군치에서 고구려 도성인 국내성으로 통하는 남·북 이도(二道)의 사이에 위치함. 즉 서한 현토군(西漢 玄菟郡)에서 고구려의 고도(故都)로 가는 우월한 교통지리조건을 갖추고 있음. 당시 양한(两漢)의 현토군 경내에는 남·북 이도가 있었음. 남도(南道)는 이도하자를 따라 50여㎞ 가서 혼강 지류인 사도하자(四道河子)와 육도하자(六道河子)로 진입하여 환인현 오녀산성에 이르고, 더 나아가 서북쪽으로 방향을 돌아 국내성까지 도달할 수 있음. 북도는 소자하 상류 왕청문 방향으로 동행(東行)해서 부이강으로 진입하고 고비류부(古沸流部) 왕성을 지나서 집안 국내성에 도달할 수 있음. 백기보고성은 바로 소자하 상류에서 국내성을 갈 수 있는 북도(北道) 상에 있는데, 남도와 비교해 볼 때 비교적 평탄함. 이러한 백기보고성의 입지선택은 고구려가 조복의책을 가져가는 것을 편하게 하기 위함임. 서한 현토군과 고구려와의 공속(贡属)은 물론이고 관구검(毌丘儉)·모용씨(慕容氏)와의 전투도 모두 북도 상에서 발생함. 이로 볼 때, 현토군 동쪽 경계 북도상에 설치된 책구루성은 지리적으로 최적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자연환경
신빈현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홍승향 백기촌 서쪽 왕청문(旺清門) 부근 소자하 강변에 위치함. 백기보고성 옆으로는 신빈~통화를 잇는 간선도로가 지나가고 있음.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신빈현 소재지와 영릉진(永陵鎭)을 거쳐 혼하연안의 요동평원으로 나아갈 수 있음. 동쪽으로 가면 통화와 집안으로 나아갈 수 있고, 홍승이나 왕청문에서 남쪽으로 갈라지는 지방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환인이나 집안으로 나아갈 수 있음.
백기보고성이 위치한 소자하․부이강유역은 토양이 비옥하고 수원이 풍족하여 논으로 경작되어 왔음. 소자하는 소자하 합류지점에서 상류로 거슬러 오면서 하협하진(河夾河鎮) 부근에서 소분지를 이룬 다음, 하협하진~목기진(木奇鎭) 구간에서는 험준하고 만곡이 심한 협곡을 이루게 됨. 목기진 부근에서 비교적 넓은 충적평지를 형성하였다가 다시 하천의 만곡이 심해짐. 그러다가 영릉진 서쪽 10㎞ 지점에서 만곡이 거의 없어지고 하천 좌우로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지가 펼쳐짐. 이 충적평지는 신빈현 소재지를 지나 백기보고성 일대까지 약 30㎞ 정도 이어지다가 홍승진 소재지로 진입하는 도로 부근에서 끝나고 험준한 산간지대로 진입하게 됨. 홍승진 소재지를 지나면 혼강의 지류인 부이강 유역으로 진입하게 됨.
성지의 위치를 보면, 산을 기대면서 소자하를 두고 있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다 볼 수 있는데 아주 적합한 곳에 성의 입지를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음(徐家國, 1984).
유물정보
한대 동경(漢代 銅鏡) 1점, 한대 수키와(漢代 筒瓦) 1점, 한대 암키와(漢代 板瓦) 1점, 권운문와당(卷雲文瓦當) 1점, 한대 토기편(漢代 土器片) 1점, 초석(础石) 1점, 배수관편 1점, 소토(红烧土) 1점, 목탄(木炭) 1점, 한 오수전(漢 五銖錢) 1점 등
참고문헌
· 徐家國, 「漢玄菟郡二遷址考略」『社會科學輯刊』 1984-3, 1984
· 潭其驤, 『中國歷史地圖集』 釋文匯編 東北卷, 1988
· 孫進己·馮永謙, 『東北歷史地理』 (一),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 田中俊明, 「高句麗の興起と玄菟郡」『朝鮮文化硏究』 1, 東京大學文學部朝鮮文化硏究室, 1994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王綿厚, 「西漢時期的玄菟郡“幘溝婁”城與高句麗早期“南北二道”的形成-關于高句麗早期歷史文化的若干問題之六」『東北史地』 2008-5, 2008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 西安地圖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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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보고성(白旗堡古城) 자료번호 : ku.d_0001_0070_005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