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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득승보산성(得勝堡山城)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889
  • 위치(출토지)
    新賓 上夹河镇 得胜堡村
  • 지역
    무순(撫順市)
  • 유형
    성곽>산성
  • 형태사항
    둘레: 약 1000여 m 
출토지
신빈 상협하진 득승보촌(新宾 上夹河镇 得胜堡村)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99 초경전(肖景全), 정진(鄭辰) 등이 조사함. 1999년 무순 경내의 연진한장성(燕秦汉长城)을 조사하던 중에 발견됨.
구조특징
산성이 위치한 지세는 매우 험하고, 둘레는 약 1000여m 임.
성벽은 거칠게 다듬은 돌과 쐐기형 돌을 섞어서 축조함. 산성의 성벽은 성의 남북 양측에서 산아래 구곡(沟谷)으로 계속해서 축조되어 있음. 남측으로는 신남공로(新南公路)를 지난 후 계속해서 산강(山岗)으로 뻗어나가며, 북쪽으로는 오룡촌(五龍村)으로 통하는 길에 의해 가로막혀 있음. 이 형세는 마치 산성에서 양쪽으로 팔을 뻗은 것 같아서 양측 구곡(沟谷)의 교통을 통제하고 있음.
서남쪽의 낮은 곳에 문지가 있음.
역사적 의미
산성이 위치한 곳은 후금삼도관(後金三道關) 가운데 하나인 ‘찰객관(紮喀關)’이라 불렀음(「古迹」『兴京县志』, 1922). 일찍이 고구려시기에는 동서교통을 통제하는 관애(關隘)를 축조하였는데, 득승보산성(得勝堡山城)은 바로 관애와 함께 공통으로 방어체계를 구성하는 당도소성(當道小城)임.
위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음.
남소성(南蘇城)설임. 張正巖·王平魯(1994)의 견해. 『新唐書』卷220에는 647년 당의 이적(李勣)이 고구려 정벌에 나섰을 때, ‘영주도독병(營州都督兵)을 이끌고 신성도(新城道)로 진입하여, 차례대로 남소(南蘇), 목저(木底)에서 고구려군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다’라는 기록이 있음. 이로 볼 때 신성도(新城道)의 기점에는 신성, 남소성, 목저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당대(唐代)의 신성도는 동진(東晋)시기 고구려의 남, 북도 가운데 남도, 수(隋)대의 ‘남소도(南蘇道)’에 해당함. 그 길은 신성에서 시작하여 남소, 목저를 거쳐 환인, 집안으로 들어감. 남도 상에 있는 성 가운데 남소성은 동진(東晋)대에도 보이는데, 『資治通鑑』 卷97에는 395년에 ‘모용각(慕容恪)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남소를 점령했다’는 기록이 있음. 즉 고구려를 공격할 때 먼저 남소성을 점령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339년 ‘모용황(慕容皩)이 고구려를 공격하였을 때 병사가 신성에 이르렀다’는 기사와 관련하여, 원대(元代) 호삼성(胡三省)의 주(注)에는 ‘신성은 고구려의 서비(西鄙)로, 서남쪽으로는 산을 곁에 두고, 동북쪽으로는 남소, 목저 등의 성과 접해있다(『資治通鑑』권 96)’라고 기록되어 있음. 이로 볼 때 남소성은 신성과 목저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음. 한편 남소성의 위치와 관련하여 남소수(南蘇水)가 주목됨. 남소수는 『漢書』地理志, 남소성은 『晋書』에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함. 고대의 성 이름은 강의 이름을 따서 정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남소수는 남소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으로 추정됨. 『漢書』地理志 고구려현조에는 주(注)로 ‘요산(遼山)에서 요수(遼水)가 나오고, 서남으로 요대(遼隊)에 이르러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 또한 남소수가 서북으로 새외(塞外)를 경유한다’라는 기록이 있음. 이 기사에서 보이는 요수(遼水)는 혼하이고, 고구려현의 위치는 신빈현 영릉진(永陵鎭) 남쪽의 한(漢)대의 고성(古城)부근으로 추정됨. 이로 볼 때, 남소수는 혼하지류와 한(漢)의 고구려현 할경(轄境) 내에서 찾을 수 있음. 그리고 신성, 남소, 목저를 거쳐 국내성으로 진격했다는 기사를 참고해 볼 때, 남소수와 남소성은 무순의 동남쪽에서 찾을 수 있음. 즉 남소수는 혼하(요수 遼水)의 지류이고, 고구려현과 그리 멀지 않으며, 무순 동남방향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강은 소자하임. 그렇다면 남소성은 득승보산성으로 볼 수 있음.
남합성(南陜城)설. 王綿厚(2002)의 견해. 『資治通鑑』晋紀에는 ‘고구려에는 이도(二道)가 있는데, 북도는 평활하고 남도는 험협(險狹)하다’라는 기사가 있고, 『晋書』와 『魏書』에는 “남합(南陜)으로 들어가서 목저에서 전투를 벌였다”라는 기록이 있음. 험협(險狹)은 남협지성(南陜之城)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신성을 지나 고구려의 중심부로 들어가기 전 “남도”상의 첫 관문임. 위의 기록을 볼 때, 남협지성(南陜之城)의 위치는 신성에서 남합(南陜)으로 진입하고 목저성에 도달하기 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음. 목저성은 신빈현 오룡산성으로 추정됨. 그리고 오룡산성 서남면의 오룡하구(五龍河口) 산 위에 득승보산성이 위치하고 있는데, “남협지성(南陜之城)”이라는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음. 즉, 산성 소재지는 바로 소자하와 오룡하가 서로 만나는 “관문립자(關門砬子)”곡지(谷地)의 “남합(南陜)”관구(關口)에 위치하고 있는 것임. 이로 볼 때, 득승보산성이 남합성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신빈 상협하진 득승보촌 동쪽의 강연(江沿)~잡목(杂木)간 도로 부근에 위치함. 산성에서 서북쪽으로 50㎞ 떨어진 지점에 무순시 고이산성이 있음. 남쪽으로 5.5㎞ 떨어진 지점에 소자하가 있음.
유물정보
홍색암키와(紅色板瓦) 1점, 수키와(筒瓦) 1점, 토기편(土器片) 1점, 철제차축(鐵輨) 1점
참고문헌
· 張正巖·王平魯, 「新城道及新城道上諸城考」『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肖景全·鄭辰, 「撫順地區高句麗考古的回顧」『東北史地』 2007-2, 2007
· 魏存成, 「中國境內發現的高句麗山城」『社會科學戰線』 201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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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승보산성(得勝堡山城) 자료번호 : ku.d_0001_0070_0050_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