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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우산하 각저묘(禹山下 角觝墓)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453
  • 위치(출토지)
    集安市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고분>벽화고분
  • 형태사항
    가로: 15m, 세로: 13m, 높이: 5m  , 석실 
출토지
집안시(集安市)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35 1935년 만주국 안동도호부의 학교 감독이 발견하여 신고한 뒤 池內宏, 梅原末治 등이 조사. 벽화 가운데, 두 사람이 씨름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각저묘라고 부름. 『통구』下(1940)에 기록.
1956 무덤보수. 나무문 설치.
1957길림성박물관
(吉林省博物館)
1957년 4월 王承禮, 周健鵬, 曲紹伯, 蘇才에 의해 전체적인 벽화묘조사 가운데 이루어짐.
1961 1961년 가을 무덤문 폐쇄.
1962 일부 봉토에 흙을 볻돋아줌.
1963 1963년 6월 무덤 앞에 나무표지판 설치.
1964 1964년 8월 일부 봉토에 흙을 볻돋아줌.
1965 일부 봉토에 흙을 볻돋아줌.
1966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管所)
통구고분군에 대한 실측조사때, 우산묘구 0457호묘라고 편호.
1975 1975년 5월 재보수.
1976 1976년 7월 묘도와 묘문을 수리하고, 벽화에 화학보호를 진행함.
1981집안시박물관
(集安市博物館)
董長富, 張忠國에 의해 재조사됨.
1982집안현문관소
(集安縣文管所)
벽화 모사.
1997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실측후 봉토 바닥변 길이 15m, 너비 13m, 높이 5m라고 기록함.
구조특징
봉토석실벽화묘
1937년에 벽화 가운데, 두 사람이 씨름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각저묘라고 불렸다가 1966년 통구고분군에 대한 실측조사때, 우산하 0457호묘라고 편호됨.
봉토는 유실되어 그 원형을 잃어버리고 일찍이 도굴을 당함.
절두방추형에, 전체 묘장은 묘도, 연도, 좌우 이실(半前室), 묘실 등으로 구성됨. 이실, 연도, 묘실에 백회가 발라져 있고, 그 위로 벽화가 그려짐.
묘도 방향은 서남편 50°이고 규모는 1984년 보고서에는 길이 1.2m라고 기록한 반면, 2008년 보고서에서는 길이 1.5m, 높이 1.3m라고 기록됨. 묘도 입구 내에는 석판이 깔아져 있음. 묘도와 전실내벽이 통하는 문미에는 원래 나무가 박아져 있었으나, 현재는 썩어서 흔적만 남아 있음.
이실은 묘도 뒤에서 두 개가 마주하고 있음. 이실 세벽은 안으로 기울어졌음. 묘도의 경우, 1984년 보고서에는 바닥길이 1.2m, 너비 1m, 높이 2.1m이라고 기록한 반면, 2008년 보고서에는 반전실의 길이 3.2m, 너비 1m, 높이 2.1m라고 기록. 천정은 장방형의 覆頭頂(천장선이 천정석을 향하여 아치형으로 휘어 들어가는 궁륭고임)임. 너비는 0.3m 임.
연도는 이실의 북쪽에 있고 길이는 1.4m, 높이는 1.3m 임. 묘실에 가까운 지점과 묘도와 연결되는 지점 모두 백회가 발라진 문틀흔적이 있는데, 무용묘와 같음.
묘실은 평면은 방형이고, 네 벽은 안으로 기울어졌음. 남벽은 연도 입구로 인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짐. 안쪽면에는 백회가 발라진 문틀이 있음. 바닥변은 길이 3.2m, 높이 3.4m 임. 묘실의 꼭대기는 궁륭식 천정임. 천정은 3층 평행고임을 구축한 후, 다시 4층 말각고임을 구축하고, 석판으로 덮었음. 묘실 왼쪽 벽 아래에는 파손된 석판이 있는데, 관대로 추정됨.
벽화는 이실, 연도, 묘실에는 백회가 발라져 있고, 그 위에 벽화를 그림. 묘실의 주제는 주로 생활풍속도임. 묘실에는 벽면 각 제재의 위, 혹은 아래에 새구름무늬를 배치하였으며, 벽 상단 도리와 보 위에는 세모꼴불꽃무늬를 그렸음.
북벽에는 무덤주인부부의 가내생활도가 그려짐. 북벽 梁枋 아래에는 휘장이 있고, 휘장의 위에는 좁은 들보가 있어, 처마를 상징하고 있음. 처마 위에는 거리가 일정한 세 개의 尖狀 등마루(屋脊)가 있음. 가옥 내에는 묘주인이 연회를 베푸는 그림이 그려져 있음. 그림 가운데 묘주인은 손을 모으고 목궤 위에 앉아 있음. 왼쪽에는 환수요도를 차고 있는데, 현재는 박락됨. 반대편 오른쪽에는 두 여인이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마주잡고 무릎을 꿇고 묘주를 향하고 있는데, 처와 첩으로 추정됨. 무덤 주인 둘레의 작은 탁자들 위에는 활과 화살, 둥근고리큰칼 등을 올려 놓았음. 두 부인 앞에는 각각 음식상이 놓여 있음. 묘주인의 왼쪽에는 한사람이 앉아 있는데, 박락됨. 벽화 좌우 양 모서리 가옥 안팎으로, 각각 비례적으로 매우 작은 노복 한명이 있는데,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음. 전체 벽화면 아랫부분에는 원래 화초 등의 도안이 있었으나, 현재는 희미하여 명확하지 않음.
동벽에는 묘실 동벽은 가장 벽화가 풍부함. 벽화 가운데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위에는 새가 머물고 있음. 天空에는 변형된 구름송이가 있음. 나무 밑동 좌우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사람처럼 서 있음. 나무 아래 오른쪽부분에는 두 역사가 힘을 다해서 씨름을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머리는 서로 상대편 어깨에 두었고, 손은 상대편 허리를 꽉 쥐고 있음. 두 역사 모두 웃통을 드러내고 있고 짧은 바지를 입었으며, 샅바를 걸치고 있음. 머리에는 수건을 매었음. 왼쪽에 있는 사람은 눈이 크고 코가 높은 서역계 인물임. 오른쪽에 있는 역사는 漢式의 짧은 콧수염이 있음. 벽화 오른쪽에는 백발의 노인이 지팡이를 집고 서 있는데, 허리에 두건을 매고, 통이 큰 바지를 입었음. 벽화 좌측에는 四阿式의 가옥이 그려져 있는데, 부엌건물로 추정. 연기가 나는 굴뚝이 세워진 부엌 안에서 작은 시종이 도마와 같은 도구 위에서 무엇인가를 다듬거나 썰고 있는 모습을 묘사. 음식을 썰고 있음. 주방장으로 보임.
서벽은 묘실입구에 해당하여 둘로 나뉜 서남벽 좌우에는 가지가 얽힌 큰 나무가 한그루씩 그려졌으며, 좌우로 나뉜 서남벽의 가운데 상단부는 새구름무늬로 장식. 동남벽에는 세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각기 안장을 갖춘 말의 고삐를 쥔 마부 둘과 우교차 한 대를 그림.
천장고임에는 해와 달, 여러 개의 별자리를 그렸으며(그림7), 별자리 이외의 공간은 넝쿨형 무늬로 장식. 해는 붉은 원안의 검은 세발까마귀로, 달은 노란 원안의 두꺼비로 나타냄.
연도에 그려진 벽화는 대부분 박락. 다만 서벽 아래에 긴 꼬리를 가진 개가 그려져 있는데,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내며 크게 짖고 있음. 목에는 목걸이를 둘렀음. 묘도를 향해 엎드려 있음.
동·서 이실 내 모서리에는 나무 기둥이 그려져 있고, 위에는 橫梁이 올려져 있는데, 두 이실을 통과하고 있음. 안에는 굵은 나무와 자색의 나뭇잎을 그렸음. 자색의 도리와 보 위에는 세모꼴불꽃무늬가 장식.
내부규모 및 특징
1940년 보고서에서 바닥변 길이 46~47척.
1984년 보고서에서 봉토직경 15m, 높이 약 4m.
1997년(2002년 보고서)보고서에서 봉토바닥변 길이 15m, 너비 13m, 높이 5m.
역사적 의미
각저묘의 벽화주제는 사회풍속이 주를 이루는데, 묘주인 생전모습을 표현함. 씨름을 하고 있는 표정이 꼭 닮았고, 흥취가 생생한데, 고구려벽화 가운데 드물게 보이는 것임.
축조 연대에 대하여 魏存成(1994년)는 전체적인 형태가 축조연대가 4세기 중엽~5세기 초로 추정되는 무용묘와 유사하다고 함.
方起東, 劉萱堂(2002년)은 집안에서 발견된 벽화묘의 연대 및 분기와 관련하여, 4기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2기로 파악. 제2기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묘방향은 서향임. 그리고 단실묘에 연도로 이어진 전반실이 갖추고 있는 구조가 주를 이루는데, 전반실은 두 개의 이실천정이 서로 연결되어 통한 결과임. 전반실 꼭대기부분은 橫長覆斗式이고, 묘실 꼭대기부분은 궁륭식 혹은 여러 층의 말각고임으로, 간혹 작은 말각이 더해진 천정을 이루고 있음. 벽화내용은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묘주인의 생전생활을 주로 그렸지만, 천정에 일월성진, 신선과 사신이 출현하기 시작한 내용으로, 다만 사신은 완전하지는 않음. 다른 한 유형은 아직 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배치가 더욱 정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 이 시기의 묘장에는 각저묘, 무용묘, 산연화묘 등이 있고, 축조연대는 4세기 말~5세기 초엽으로 추정.
孫仁杰·遲勇(2007년)는, 연회, 마차, 가옥, 수목, 새짐승 등의 형상은 생동감이 농후함. 이러한 각저묘의 주제는 고구려의 사신묘, 오회분 4호묘와 5호묘의 신선주제와 어긋나는 것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벽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음. 축조연대는 4세기 말로 추정함.
자연환경
집안시구 동북쪽 3㎞, 우산 남쪽 기슭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함. 우산묘구 동부에 위치하며, 태왕진 과수촌 1조에 위치.
남쪽으로 통구평원이 보이고, 광개토대왕릉비까지 약 1.54㎞ 임. 북쪽에 무용묘가 이웃해 있는데, 불과 수 미터임.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지점에 집통철로가 있음.
참고문헌
· 池內宏, 『滿洲國安東省輯安縣高句麗遺蹟』, 滿日文化協會, 1936
· 池內宏·梅原未治, 『通溝』 下: 満洲国通化省輯安県高句麗壁畫墳, 日滿文化協會, 1940
·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文化保存指導局寫眞帳編集室, 『高句麗壁畵』, 朝鮮中央史博物館, 1979
· 朝鮮畵報社出版部, 『高句麗古墳壁畵』, 朝鮮畵報社, 1985
· 中國美術全集編輯委員會, 『中國美術全集 : 繪畵編 12 墓室壁畵』, 文物出版社, 1989
·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편, 『조선유적유물도감』, 1990
· 조선일보사, 『集安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일보사출판국, 1993
· 魏存成, 『高句麗考古』, 吉林大學出版社, 1994
· 한국방송공사, 『고구려 고분벽화』, 한국방송공사, 1994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사계절출판사, 2000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方起東·劉萱堂, 「集安下解放第31號高句麗壁畵墓」『北方文物』 2002-3, 2002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 吳廣孝, 『集安高句麗壁畵』, 山東畵報出版社, 2006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耿鐵華, 『高句麗古墓壁畵硏究』, 吉林大學出版社, 2008
· 吉林省集安市文物局, 『高句麗王城王陵及貴族墓葬』, 上海世界圖書出版公司, 2008
· 전호태, 「고구려 집안권 벽화고분의 현황과 과제」『蔚山史學』 14, 蔚山大學校史學會,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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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하 각저묘(禹山下 角觝墓)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