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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호자구 고분군(蒿子溝 古墳群)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231
  • 위치(출토지)
    集安市 黃柏鄕 蒿子溝村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고분>기타
  • 형태사항
    기타 
출토지
집안시 황백향 호자구촌 (集安市 黃柏鄉 蒿子溝村)
연대
3세기경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3집안시박물관
(集安市博物館)
5월에 실시하여 고분 7기(JHM1-JHM7호)를 확인하였고, JHM1호분만 기록하였으며, 그 외 6개 고분은 기록하지 않음.
2004, 2005집안시박물관
(集安市博物館)
2004년 11월 및 2005년 4월에 張福有, 孫仁杰, 遲勇이 참가하여 고분 6기를 확인하고, JHM1·3·4·5·6·7호로 편호함. 1983년 JHM2호로 편호된 고분은 JHM1호분의 부속시설로 확인됨.
구조특징
호자구 1호분은 대지 남단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경 126˚22'632", 북위 44˚17'926"임. 호자구 3호분은 서쪽 60m에 1호분, 북쪽 3m에 4호분, 동쪽 6m에 7호분이 있고, 호자구 4호분은 서쪽 60m에 1호분, 남쪽 3m에 3호분, 북쪽에 5호분, 동쪽 8m에 7호분이 있음. 호자구 5호분은 대지 남단 동쪽에 위치하며 서쪽 60m에 1호분, 동쪽 15m에 6호분, 남쪽에 4호분, 북쪽에는 밭이 인접함. 호자구 6호분은 대지 남단 동쪽에 위치하며, 서쪽 15m에 5호분, 남쪽 5m에 7호분이 있고, 호자구 7호분은 대지 남단 동쪽에 위치하고, 북쪽 5m에 6호분, 서쪽 6m에 3호분이 있음. 1호분의 동·북 양쪽에서 산자갈을 모은 장방형 돌무지가 발견되었으나 훼손이 심각함. 동쪽 돌무지는 1호분의 동쪽면 기단과 15m 거리에 위치하는데 양자는 평행하고, 남북 길이 40m, 동서 바닥 너비 3m 및 상부 너비 1m, 잔고 1m 정도로 돌무지의 남쪽 면은 석축의 기초부가 보이나 그 위에 쌓아 올려진 돌은 농경지 개간시 쌓아 올린 것으로, 기초석은 가공한 자연석으로 축조했는데 크기는 0.4m 정도임. 북쪽 돌무지는 1호분의 북쪽 20m 거리에 위치하는데 돌부지는 석축한 台形 건축지로 동서 길이 약 30m, 남북 너비 4m이고, 현재 대부분 석재는 없어지고 나머지 기초석은 전부 대형건축지의 서쪽에 놓여졌으며, 농민이 파낸 구덩이에서 동서방향의 기초부가 확인되었음. 기초부는 가공한 화강암으로 축조되었는데 화강암의 크기는 길이 0.6m, 너비 0.4m, 높이 0.3m임.
출토유물을 보면 JHM1호 고분상에 다량의 기화파편이 더미를 이루며 산포하고 있으나, 완형은 없고, 대부분 점토질의 회색이며, 적색도 일부 있음. 전반적으로 기와의 배면에는 승무닝 새겨져 있고, 기와 내면은 굵은 포문이 남아 있으며, 손으로 문질러 만든 넓은 띠 형태의 문양으로 단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자른 가로 방향의 선각이 특징적임.
역사적 의미
고분군의 연대를 보면 호자구 1호분은 3세기경으로, 고분 축조방식에서 대형적석총인 집안 마선구 2378호 및 칠성산 871호의 기단 바깥으로 立石을 설치하고 계장을 구축하는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것은 고구려 초기의 적석총 축조기법이지만, 고분 남쪽면에서 비교적 낮은 곳에 있고, 모서리가 점차 네모져지는 점, 봉석 가운데 강돌이 보이고, 筒瓦의 어깨부분이 점차 높아지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 호자구 고분은 마선구 2378호, 칠성산 871호분보다 연대가 조금 늦음. 호자구 3·4·5·6·7호분은 3세기경으로 1호분과 고분 유형은 일치하나 규모가 작고 고분 연대는 1호분과 비슷함.
호자구 1호분은 왕릉으로 3세기 대형적석묘이며 호자구 1호분의 동·북 양쪽의 유적으로 장방형 돌무지로 陵墻類의 시설로 추정되는 왕릉 시설물이 있고, 고분 남면은 벼랑이고, 서면은 고랑 경사로 능묘시설이 보이지 않음. 호구자 3-7호분은 JHM1호분과 동일 연대로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배총으로 추정됨.
최근 중국에서는 JHM1호분의 주인공을 동천왕으로 비정하고 있는데, 그 근거로 고분의 연대와 규모면에서 연대가 3세기경이고, 고분 규모와 부속시설이 왕릉의 구비조건과 부합하며, 魏 관구검의 환도성 침공 후, 동천왕 21년(247) ‘築平壤城, 移民及廟社’한 기록하고 있으며, 고분이 위치한 호자구는 지리적으로 국내성의 동쪽(東川)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고, 호자구 지명과 동천왕 장지명의 관계에서 장천의 동쪽은 ‘黃柏’에서 ‘호자구’라고 칭했으며, 호자구는 금일 ‘柴子溝’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동천왕의 장지 ‘柴原’과 일치하고, 동천왕대 기록에 동천왕 21년(247)에 축조한 평양성은 ‘양민고성’으로 상정했고, 호자구 지역은 국내성과 평양성의 중간지대이며, 동천왕은 평양성 축조 이듬해인 249년 훙거함. 중국학계의 고분군 해석에 대한 문제로는 현재 잔존된 상태로 미루어 보고자의 견해대로 왕릉으로 볼 근거는 확실하지 않고, 여러 기가 열상 배치되어 독립된 묘역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규모는 마선구 2378호분과 칠성산 871호분에 비해 소형에 해당됨. 연대 판단의 근거도 없는데 마선구 2378호분은 보고서에 의하면 1세기 전후로 비정되고, 칠성산 871호분은 2세기경으로 비정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축조기법이 200년 이상 지속되므로, 축조기법은 연대 판단의 적극적인 근거가 될 수 없음. 적석분구에서 용석이 발견되는 것은 집안 일대 이른 시기 석광적석총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며, 중·소형분에서도 기와의 출토 예가 있음. 따라서 무덤 축조 형식이나 분구에서 기와가 출토된 점으로 왕릉으로 비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해석이며, 더구나 동천왕으로 볼 객관적 근거도 없음.
자연환경
고분군은 집안현성 동쪽 약 31㎞ 떨어진 황백향 호자구촌 동북에 위치하며, 호자구 충적대지 중앙의 동서 1.5㎞, 남북 1㎞ 가량의 작은 언덕 최남단에 위치함. (이 고분의 행정 소재지는 예전에는 황백향이었으나, 최근 靑石鎭 관할로 변경됨.) 호자구는 동서 2.5㎞, 남북 1.5㎞의 충적대지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고 있고, 남쪽에 압록강이 흐르고, 고분군이 위치하는 언덕에서 남쪽으로 약 50m 떨어져 호자구소학교가 위치하며, 청석진과 집안을 연결하는 도로(集靑公路)가 소학교 앞을 동서로 관통함.
유물정보
암키와(板瓦) 2점, 끝암키와 6점, 수키와(筒瓦) 2점
참고문헌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 「國內城始人建于戰國晩期燕國遼東郡塞外的一介據點之上」『東北史地』 2006-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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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구 고분군(蒿子溝 古墳群)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