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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문화층 유구의 조사

➊ 7분층

8호 주거지의 수혈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 밑바닥으로 약 10cm 정도를 하강했다. 전반적으로 2문화층의 8호 주거지의 수혈이 파고들어간 지층과 마찬가지로 갈색 사질점토와 물에 오래 잠겨 있을 때에 흔히 나오는 약간은 푸른색을 띤 모래층이 섞여 있는 층이었다(평면도 14, 그림 592~594). 이때에 드러난 토양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발굴지의 서쪽에는 밝은 색의 황갈색 사질점토가 일부 섞여 있는 암갈색의 사질점토층이다. 이 층에서는 목탄의 흔적과 불에 탄 소토들도 다수 확인되어서 문화층과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유물들은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이러한 목탄과 소토층은 이웃한 34구역에서도 일부 노출된 바 있는데(2008년도 크라스키노 보고서 참조), 역시 유물은 출토된 바 없다.
발굴구역의 중앙부에서는 밀도가 치밀한 갈색의 사질토층이 있는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북서쪽에는 수혈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상층(8호 주거지)에서 판 수혈로 이 문화층과 관련이 없다. 또한 동벽과 동북쪽의 암갈색 사질토층은 유구의 흔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분층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은 바로 여기에서 출토된 것으로, 8분층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41구역의 최하층, 즉, 3번째 문화층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동북쪽 모서리에서 원형으로 확인된 유구의 흔적은 밝은 황갈색의 사질토층에서 갈색 사질토로 이루어진 토양에 군데군데 목탄이 섞인 것이다(Н,O-1,2). 또 Н-О-2-4구역에서 확인된 유구의 흔적은 황갈색의 다소 타원형에 가까운 유구 흔적으로 내부토는 M-1에서 확인된 것과 유사하다.
К-Л-4-5구역에서는 구상유구로 추정되는 암갈색 사질토층이 돌출되듯이 노출되었다.
•출토유물
3문화층의 출토된 유물은 윗 문화층보다 매우 적은 편이다. 동북과 동쪽편의 원형유구의 범위 내에서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격자 O-2, О-5, 그림 595~602). 또한 О-5 격자에서는 철부편으로 추정되는 철기편이 출토되었다(그림 603, 604).

➋ 3문화층 유구의 정리(8분층)

7분층에서 3문화층의 유물과 유구의 흔적이 조금씩 확인됨에 따라 이 유구들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기 위하여 5~10cm의 두께로 발굴을 했다. 그 결과 7분층에서 애매하던 유구들이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격자 Н-К-1, 2, 3, 4부분에서는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긴 구상유구가 확인되었다. 또한 Н, О-1, 3에서도 주거지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은 원형유구의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그 주변으로 4개의 기둥구멍들도 확인되었다(평면도 15, 그림 605·606).
〈표 1〉3문화층의 유구 일람표
구덩이번호위치직경(cm)깊이(cm)비고
2О-6388
3Л-М-55610
4М, Н-3, 44312
5М-35221
6М-О-1-3159×22317
① 구상유구: 발굴구역의 동쪽과 서쪽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또한 이 구상유구를 경계로 양편의 토층은 상반된다. 즉, 발굴구역의 동편은 비교적 밀도가 치밀한 갈색의 사질토 계통인 반면에, 서편은 자잘한 모래로 이루어진 비문화층이다. 이 구상유구의 최대 너비는 107cm이고 발굴구역 내에서의 길이는 408cm에 달한다(그림 607).
② 기둥구멍: 발굴의 동쪽구역에서는 총 5개의 기둥구멍이 확인되었다. 다소 짙은 암갈색 사질토가 내부토이며, 각각 구덩이 2~5호로 명명되었다.
③ 주거지(?) 흔적: 발굴구역 동북쪽에서 확인된 유구로, 크기는 159×223cm이고 깊이는 17cm이다. 단순한 저장공이나 기둥구멍으로 보기에는 형태가 너무 크고 일부 소토층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주거지로 추정되었지만, 러시아 측과의 협의에 따라 잠정적으로 구덩이 6호로 명명했다.
•출토유물
① 석핵(?): 주거지로 추정되는 6호 구덩이에서 변성암 계통의 갈색돌이 출토되었는데, 모서리에 타격흔적이 있어서 구석기 시대의 석핵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근거리에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없으며, 근처에 4기층이 발달했다는 보고는 없다. 더욱이 석재 역시 구석기 시대의 돌감으로 흔히 쓰이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떠한 용도인지 불명이지만 크라스키노 주민이 석핵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그림 610).
② 윤제토기 구연부편(그림 611): 암회색의 점질계열 태토로 성형했다. 속심은 회색이며, 전반적으로 녹로 성형 후에 좌우로 마연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구연부의 직립상태로 보아 작은 옹형토기의 일부로 생각된다.
③ 윤제토기 구연부편(그림 612-1): 윤제토기편, 표면은 검은 색에 가까운 편이며 니질계의 태토를 사용했다.
④ 윤제토기 구연부편(그림 612-3): 윤제토기편, 표면은 황갈색의 니질계이며, 구연부는 90도에 가깝게 젖혀진 형태이다.
⑤ 윤제토기 구연부편(그림 612-4): 구연은 직립하고 견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옹형토기의 구연부 편, 황갈색의 사질토를 사용했다.
⑥ 수제토기 동체부편(그림 612-2): 직경 2cm 이내의 작은 수제토기 구연부편으로 기벽은 0.5cm 이내로 매우 얇다. 표면에는 발해유적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격자문이 시문되어 있다.
⑦ 시루 저부편(그림 613): 6호 구덩이(주거지?)에서 출토된 시루편이다. 모두 5개의 구덩이 원형으로 뚫려 있으며, 기벽은 비교적 얇다. 토기의 내벽은 암갈색이며, 바깥쪽은 황갈색이다.
⑧ 시루 저부편(그림 614): 저부의 형태, 기벽의 두께, 천공의 형태 등으로 미루어 볼 때에 그림 613과는 다른 개체로 생각된다.
⑨ 기와편(그림 615): 모두 3개의 기와편이 출토되었는데, 외벽은 승문계통의 문양이 있고, 내벽은 포목흔이 남아 있다. 이제까지 알려진 발해의 기와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➌ 생토층의 확인

8분층, 즉 3문화층이 위에서 본 것처럼 확인됨에 따라 성벽의 북측 구역에서 최하층이 명백하게 규명되었다. 이에 추가로 하부에 문화층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따라 생토층으로 추정되는 황갈색 사질토 층을 추가로 발굴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러시아 측 발굴의 9분층에 해당한다. 하지만 8월 중순의 심한 호우로 발굴장소가 완전히 잠겨버리게 되었다(그림 616). 이로 인해 발굴장의 벽이 일부 무너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빠진 후에 생토층의 확인을 위해서 9분층의 조사를 시작했다. 그 두께는 10~15cm로 비교적 두껍게 흙을 제거했다(평면도 16, 그림 617~620).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유기물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황색의 사질층이 지속적으로 퇴적되었으며, 일부 갈색의 간층들도 포함되었지만, 역시 자연적인 퇴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단, 주거지로 추정되는 6호 구덩이의 수혈은 동북쪽 모서리로 계속 이어지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추후의 조사가 필요하지만, 41구역의 동북쪽은 1990년대에 여러 차례 조사를 하고 복토를 한 곳이어서 추가 조사는 여러 가지를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9분층을 끝으로 2년에 걸친 한국 측의 41구역의 조사는 완전히 종료되었다. 3문화층 이하로는 더 이상의 문화층이 존재하지 않으며, 3문화층 밑의 황색 사질토층이 생토층임을 확인한 이후의 바닥을 정리했으며(그림 621~624), 다시 복토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상과 같이 41구역에서는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특히 2009년도에는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8호 주거지의 밑에서도 문화층과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더욱이 최하층의 문화층에서도 2008년과 마찬가지로 발굴구역의 서편은 유구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 주목되며, 전반적으로 물에 많이 노출된 층위 상황이 특징이다. 2008~2009년의 발굴조사를 통해 발결된 문화층의 깊이는 151~178c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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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층 유구의 조사 자료번호 : kr.d_0007_0020_00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