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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2건축층

두 번째 건축층은 6~12분층에 해당하며, 지표면 레벨은 대체적으로 -100~-150에 해당한다. 2건축층에 속하는 주요 유구로는 서쪽편 구역의 Б, В-15, 16의 1구덩이와 동편에서 9호 주거지로 명명된 온돌이 설치된 주거시설이 있다. 6분층의 정리작업은 아마 주거지의 돌담유구였을 발굴구역의 동과 서편의 석열구조를 노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그림 17). 7분층의 표면은 주로 갈색 사질점토로 이루어졌는데, 그 밀도는 곳에 따라 달랐다. 즉, 발굴구역 서편의 서쪽과 중앙부는 대체로 단단하며, 발굴구역 서편의 북쪽은 다진 것처럼 단단하다(평면도 10, 그림 18~22).

➊ 1호 구덩이(Б, В-15,16)

이미 2008년도의 발굴 때부터 격자 Б,В-15, 16에서 확인된 1호 구덩이에서는 다량의 돌들이 출토된 바 있다. 당시에는 이 유구가 온돌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발굴을 지속해보니 여기에 놓여 있는 적석들은 무질서했으며, 토양은 잘 부스러지는 사질점토였다. 더욱이 주변에서 발견된 많은 토기편과 자잘한 유물들로 보아 이 유구는 온돌이 아니라 일종의 쓰레기장(폐기장)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구덩이에 돌들, 토기편, 부서진 철기 등을 버렸던 것이다. 6분층을 제거하자 구덩이는 갈색 사질토의 토양에서 아주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평면도 10, 그림 18·19·23). 구덩이의 직경은 7분층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약 160cm를 기록했다. 이 유구가 쓰레기 구덩이로 판명된 이후에 전체 퇴적 상황을 좀 더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그 가운데에 남북방향으로 둑을 설치하고 양쪽의 흙을 제거하기 시작했다(평면도 10-A, 평면도 11, 그림 24~26). 구덩이의 충전토는 잘 부스러지는 갈색 사질토로 이루어졌으며 그 내부는 자잘한 돌들, 철제품, 대량의 토기편과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짐승뼈들로 가득 차 있었다(평면도 11, 그림 25~30). 구덩이의 깊이는 7분층의 시작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60cm가 된다(평면도 11A, 그림 31·32).
격자 В-15의 토기편들 중에는 유약을 입힌 三彩계열의 토기뚜껑이 출토되었다(-112, 그림 33, 34). 또한 토제반지가 출토되었으며(격자 В-16, -120, 그림 35, 36), 그 밖에 토기와 기와편으로 만든 장기알도 출토되었다(격자 Б-15, 16, -124/-139, 그림 48). 그 밖에도 격자 Б,В-15, 16의 -120/-152의 깊이에서 철기편 다수 출토되었다. 즉, 철제 고리(-112), 꺾쇠(-138, 그림 41-43), 못(-112/-160, 그림 37~39), 철촉편(-107), 청동제 요대장식(-124/-138) (그림 44~47), 소형 철제 못 (-157, 그림 37 : 1, 38), 구부러진 도자(Б-15, -153, 그림 55, 56), 주철제 부속품(Б-15, -146, 그림 61, 62), 마차바퀴마개(В-15, -147, 그림 57, 58), 토기 벽에 부착된 손잡이가 달린 주철제 철기편(-172, 그림 59, 60), 마연구(-160), 그리고 주철제 철기편이 격자 Б-16에서 출토되었다(№50, -151, 그림 63, 64).
1호 구덩이에서 출토된 토기의 양만 해도 모두 100여 kg에 이르며 그중에는 대형의 토기 동체부, 저부 등 토기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도 있지만 전체 기형이 복원되는 토기들도 있었다(그림 67~84, 86~100). 또한 기와도 있었다(그림 85).

➋ 9호 주거지

발굴 동편구역의 서편에서는 6분층을 제거하자 단단한 황갈색의 사질토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남편 격자 Ж, З-20, 21부근의 단단한 갈색 사질토층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채 좀 더 단단하게 바뀌었다. 이 구역의 동북편에서는 삼각형의 모양으로 단단한 갈색 사질토층이 나타났다(평면도 10, 그림 18·19·101·102). 이 주거지 내부의 지층은 중간 정도 밀도의 갈색 사질토에 자잘한 모래가 섞인 지층, 중간 정도 밀도의 갈색 사질토에 소수의 목탄과 진흙다짐이 섞인 지층, 암갈색 사질토에 자잘한 모래가 섞인 중간 밀도의 지층 등으로 분포한다. 9호 주거지의 북서쪽편 바깥으로는 굵은 모래가 섞인 황갈색 사질점토가, 남서쪽으로는 암갈색 또는 갈색의 사질점토층이 경계를 이루었다. 주거지 윤곽의 내부에는 7분층부터 석열들이 노출되었는데 거의 반지처럼 원형을 이루면서 동벽의 모서리 끝편으로 이어졌다. 이 부근의 격자 З-15에서 토기가 집적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Ж-15에서는 불에 탄 흔적이 확인되었다(그림 101). 그 다음으로는 5cm 두께로 비교적 얇게 7분층을 제거했다. 그 결과 남북방향으로 새로운 석열이 등장했고 주거지의 윤곽은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주거지의 온돌시설은 두 개의 배연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평면도 11, 그림 25·102~104). 두 온돌 사이는 중간 밀도의 암갈색 사질점토로 채워졌다. 이와 같이 8분층의 표면에 이르러서는 주거지 내부토의 중간부분까지 드러났다. 이외에도 Ж-15에서는 직경 60cm의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이 화덕자리의 토양을 보면 가운데 부분은 적갈색의 잘 부스러지는 사질토에 목탄이 섞여 있으며, 그 주변으로 황갈색의 사질토로 이루어진 간층으로 둘러싸인 형태이다(그림 105, 106). 화덕에서 남쪽으로는 재층이 확인되었으며 적석 사이에서는 다량의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9호 주거지의 윤곽이 확인되면서 남서-북동방향으로 너비 25cm의 둑이 설치되었다. 둑이 설치된 후에 8분층 제거에 들어갔다(평면도 12, 그림 107~112). 주거지임이 확인된 후에는 전체 주거지의 번호에 따라 9호로 명명되었다. 9분층을 정리하면서 주거지 내부의 석열들도 정리가 되었다. 연도시설에서는 아주 단단한 황갈색의 진흙으로 이루어진 진흙다짐이 확인되었다(격자 Ж, З-17б18). 연도시설의 사이에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에 자잘한 모래가 섞인 흙이 채워져 있었고 목탄과 자잘한 진흙다짐들이 다량으로 확인되었다(격자 Ж, З-17,18).
9분층을 7~10cm의 두께로 제거하자 10분층의 표면이 드러나면서 좀 더 분명하게 온돌(칸)의 배연구시설이 드러났다(평면도 13, 그림 115). 배연시설은 평균 크기 10×15cm 정도되는 돌들로 이루어졌으며, 그 주변에 발랐던 진흙의 흔적이 배연구 시설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배연시설은 납작한 돌로 덮였는데, 그중 몇몇의 경우에는 고열, 습기 등으로 깨져 나갔다(그림 116). 9분층을 제거하는 가운데 9호 주거지가 폐기되면서 퇴적된 벽체, 지붕체의 흔적이 단단한 갈색 사질토층으로 확인되었다. 단, 주거지의 남벽쪽인 격자 Е-З-17, 18에서는 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 밖에 불에 탄 목재구조의 흔적과 진흙다짐도 확인되었다. 진흙다짐은 단단한 명갈색의 사질토, 목탄이 섞인 암갈색의 사질토, 잘 부스러지며 목탄이 포함된 암갈색 사질토, 목탄이 섞인 중간 밀도의 암갈색 사질토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대체로 Д-Ж-14-17 구역에서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북쪽에 해당하는 Ж, З-14, 15 격자에서는 화덕자리를 정리하자 다른 구덩이의 흔적이 드러났다. 이 구덩이의 윤곽은 회갈색의 사질점토로 이루어졌으며 그 내부에는 적갈색의 소토층과 작은 재층이 확인되었다. 아마도 화덕자리와 화덕 주변의 구덩이로 추정된다(그림 117).
이후 작업으로는 9호 주거지의 바닥까지 정리하면서(평면도 14, 그림 118·119) 온돌의 배연구를 정리하고 내부 충전토를 제거했다. 온돌의 배연구는 중간 정도의 밀도로 이루어진 암갈색 사질토와 황갈색 진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 황갈색 점토는 온돌을 만들 때에 사용된 것 같다. 또한 불에 탄 단단한 진흙다짐과 자잘한 돌들도 확인되었다. 거대한 돌들 밑으로는 심하게 불을 먹은 사질토양이 확인되었으며 온돌 배연구의 내부에는 황갈색의 사질토로 이루어진 얼룩이 군데군데 보였다. 또한 토기편과 불에 타 잘게 부스러진 동물뼈들도 발견되었다. 온돌의 배연구 사이에서는 아주 단단한 밀도로 진흙다짐이 일부 섞인 명갈색의 간층도 확인되었다. 북편의 З-18 격자에서는 동-서로 이어지는 불먹은 적색의 사질점토와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불에 탄 암회색의 진흙다짐, 목탄 간층이 확인되었다.
9호 주거지의 전체 범위를 발굴하고 온돌의 배연구 하부까지 정리하자 주거지의 남서편 모서리에서 새로운 층위가 노출되었다. 이 층은 잘 부스러지고 부드러운 황갈색의 사질토이며 황색의 간층과 중간 크기의 자갈이 섞여있다. 또한 주거지의 서벽에 해당하는 남편에서는 단단한 암갈색의 사질층이 노출되었는데, 그 안은 목탄과 황갈색 점토가 섞였다(평면도 15, 그림 124~127). 이 점토가 섞인 암갈색의 사질토를 제거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바로 9호 주거지는 그 이전의 유구를 파괴하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9호 주거지 사이의 둑을 제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바닥을 확인하기 위해 바닥보다 한 단계 더 밑에서 바닥을 정리했다(평면도 16, 그림 128·129). 그 결과 황갈색의 모래층을 확인했고(그림 130~133), 이를 확인한 이후, 둑의 단면을 그림으로 남기고 제거했다(그림 133, 134).
이상과 같이 9호 주거지는 모두 5번에 걸쳐서 바닥을 정리하면서 노출되었다. 각각 5~7cm의 두께로 발굴을 했으며, 전반적으로 주거지 수혈의 깊이는 25~30cm가 된다.
9호 주거지의 장축은 약간 동쪽으로 기울어졌지만 대체로 남북방향이며, 그 출입구는 북편에 설치되었다. 화덕의 직경은 60cm(격자 Ж-15)이며 주거지의 북쪽에 위치했다. 두 개의 배연구 시설 길이는 2.2m이며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 동쪽으로 꺾이는 형상이다. 배연구의 너비는 석제구조를 포함해서 약 40cm이다. 온돌의 벽은 수직으로 세워진 석열구조로 약간 땅을 파고 자갈을 세운 것이다. 전체 온돌시설의 높이는 25~30cm이며, 전체적인 너비는 위에 덮인 돌을 포함했을 때에 적어도 1.2m가 된다. 온돌의 배연시설 밑에는 곳에 따라서 장기간 불을 먹은 지층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이 주거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온돌의 배연구 사이, 온돌과 벽 사이 등에는 불에 타지 않은 점토층이 노출되었다. 주거지의 서편과 남편의 벽은 온돌시설로부터 약 30~40cm 정도 떨어져 있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에 주거지는 화재 등으로 폐기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폐기된 것 같다. 벽체와 지붕이 무너진 흔적은 주거지 위에 아주 단단해서 거의 사질점토처럼 보이는 사질토층임을 알 수 있다.
9호 주거지를 발굴하면서 기와, 토기편, 그리고 사암 등으로 만든 장기알(격자 Ж-16, -128) 부정형의 철기와 선철로 추정되는 철기편(격자 Е-16, -124/-135 ; 격자 Ж-16, -131/ -151, 그림 136, 137), 철제 꺾쇠(격자 Ж-16, -136, 그림 138, 139), 석제 구슬(격자 Ж-16, -133, 그림 140 : 3), 그리고 대량의 토기편(그림141~157)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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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축층 자료번호 : kr.d_0007_002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