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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 출토 명문 '道隆弘知' 소고

 
 

4. 크라스키노 출토 명문 '道隆弘知' 소고

 

크라스키노 발해성지 조사에 발견된 문자자료는 '道隆弘知'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특이한 발굴 상황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 우선 이 네 글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확인해 보기로 하자.
우선 '道隆'이라는 용어를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주026]
각주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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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dzk.l.u-tokyo.ac.jp/SAT/.

에서 검색해 보면, 대표적으로 네 가지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道가 주어이고 隆이 동사로, ‘도가 융성하다'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道隆이라는 승려의 이름이며, 세 번째는 절의 이름으로 도륭사(道隆寺)가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명으로 쓰인 사례이다.
『아미타경의술(阿彌陀經義述)』이라는 문헌에 의하면, “비구에는 대개 3가지의 뜻이 있는데, 첫 번째는 '怖魔'이고, 두 번째는 '乞士'이며, 세 번째는 '破惡'이다. 이 3가지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다. '怖魔'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무릇 현문에 처음으로 오를 때 ‘降魔?의 뜻을 세우고 먼저 삭발하고 물들인 옷을 입는다. 그리하면 천마궁(天魔宮)이 동요하여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乞士'라고 하는 것은, 몸이 도의 그릇이 되므로 몸이 편안하면 곧 도가 융성하는 까닭에, 먼저 법복(法服)을 팔고 걸식(乞食)하여 몸을 도우는 것이다. '破惡'이라고 하는 것은, 성인의 도는 점차 커 천마(天魔)만 범부의 도는 사그라지게 되므로 닦은 바가 이미 가득하게 되면 악을 깨트리는 것이 증과(證果)가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道隆'은 도가 융성한다는 뜻이다. [주027]
각주 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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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丘略有三義. 一怖魔, 二乞士, 三破惡. 此三卽初中後也. 怖魔者, 夫創軌玄門, 卽建降魔之志, 故前剃髮染衣時, 天魔宮動而魔怖也. 乞士者, 身爲道器, 身安卽道隆故, 已沽法服乞食以資身也. 破惡者, 然聖人道長, 凡夫道消, 所修已滿, 破惡以證果也”(『阿彌陀經義述』).

『고승전(高僧傳)』에서도 “무릇 재물에는 5가지 갖추어야 할 것이 있는데, 복(福)·계(戒)·박문(博聞)·변재(辯才)·심지(深智)이다. 이들을 갖추면 도가 융성하고, 갖추지 못하면 의심이 쌓인다”고 하였다. [주028]
각주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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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財有五備, 福戒博聞辯才深智. 兼之者道隆, 未具者疑滯”(『高僧傳』).


다음으로 '道隆'이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는 여러 명을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란계도륭(蘭溪 道隆, 1213~1278)을 들 수 있다. 그는 임제종의 승려로서 일본에 건너와 대각파(大覺派)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신승전(神僧傳)』(1417년)에도 “무주(婺州)의 승려 도륭(道隆)은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가 강주(江州)의 능인사(能仁寺)에 머물렀는데, 행하는 바가 범상하지 않아서 위풍화상(爲風和尙)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주029]
각주 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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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婺州僧道隆. 雲遊諸方寓江州能仁寺, 所爲不常但呼爲風和尚”(『神僧傳』).

한편 『속고승전(續高僧傳)』에서는 화엄도륭선사(華嚴道隆禪師)·청천도륭선사(淸泉道隆禪師)·종산도륭선사(鍾山道隆禪師) 등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륭사(道隆寺)라는 절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것은 첫 번째의 연장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 도륭사라는 절이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가가와현[香川縣] 나카다도군[仲多度郡]에 있고, 다른 한 곳은 히로시마현[廣島縣] 아키군[安藝郡]에 있다.
마지막으로 '道隆'은 승려가 아닌 일반인의 인명으로도 쓰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후지와라노 미치타카[藤原道隆, 953~995]가 있다. 그는 이치조천황(一條天皇)의 외척(外叔)으로 관백(關白)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현재에도 '道隆'이라는 이름이 쓰이고 있다. 의미상으로는 첫 번째 용례와 마찬가지로, 道가 융성한다 또는 높다는 뜻이다.
이상의 용법을 정리해 보면, '道隆'이라는 용어는 승려의 이름이나 일반인의 이름, 사찰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기본적인 의미는 '도가 융성한다'는 뜻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이나 사찰에 쓴 경우는 '도가 융성한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道隆'이라는 용어는 불경·승려명·사찰명·일반인명 등에서 폭넓게 확인할 수 있는데 대하여, '弘知'라는 용어는 단 한 차례 '광홍지견(廣弘知見)'이라는 용례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주030]
각주 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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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俗姓申氏, 本貫潞州黎城人也. 自幼年於本州延祥院出家. 禮僧道恭爲師. 年十六落髮授具, 少通義學爲時所稱. 長而遍訪名師, 廣弘知見”(『廬山蓮宗寶鑑』).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의 일자색인(一字索引)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주031]
각주 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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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search.sutra.re.kr/cgi-bin/searchvis_oneindex.exe?T.

승려의 이름으로는 일본 고야산(高野山) 승려인 홍지 법인(弘知 法印)이 보이며, 사찰 이름에 쓰인 사례는 없다.
'弘知'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廣과 弘, 知와 見은 서로 의미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知見을 넓힌다[廣弘]는 뜻에서 弘知를 ‘앎 혹은 지식을 넓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弘智도 '지혜를 넓힌다' 혹은 '넓은 지혜' [주032]
각주 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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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佛弘智覆蓋衆生, 隨其根源而救濟之.”(『最勝問菩薩十住除垢斷結經』); “所觀審諦, 導御道心, 以諸通慧, 立不退轉, 覺了弘智”(『佛説超日明三昧經』).

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금석문 등에서 흔히 복잡한 획수의 글자를 간단한 글자로 대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주033]
각주 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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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銅鏡에서 구리 銅을 同으로, 거울 鏡을 竟으로 쓴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弘知는 弘智를 간략히 한 것으로 본다면 검토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弘智의 용례를 보면, “이와 같이 四智는 동일한 心量으로 모두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이름하기를 弘智라고 한다” [주034]
각주 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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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四智同一心量皆無不周, 故名弘智”(『金剛三昧經論』).

고 하여, 弘智는 두루 넓은 지혜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弘智는 승려의 이름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속고승전(續高僧傳)』에는 수당대의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 승려로 속성이 만씨(萬氏)인 홍지(弘智)가 보인다. [주035]
각주 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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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弘智, 姓萬氏, 始平槐里郷人. 隋大業十 一年, 徳盛郷閭權爲道士, 因入終南山”(『續高僧傳』).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道隆'과 '弘知(弘智)'는 각각 불교 경전 등에서 용례를 찾을 수 있고, '道隆'은 불도가 융성해진다는 뜻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며, '弘智'는 불교 교리 속에서 사용되는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출토된 문자자료로 돌아와서 생각하면, 2행으로 적힌 道隆과 弘知에 대하여 두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두 용어가 모두 불교 교리와 관계되는 내용일 가능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둘 다 승려의 이름일 가능성이다. 전자로 생각한다면, 弘知부터 먼저 읽고 道隆을 나중에 읽는다고 한다면, ‘지혜(지식)를 넓히고 불도를 융성하게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한 승려가 자신이 추구하는 불법수행의 목표를 적어 서원(誓願)한 다음에 이를 땅에 묻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석문의 이러한 용법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과 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로 생각한다면, 두 승려의 이름을 나란히 적은 셈이 된다. 그렇다면 도반(道伴)인 두 승려가 이를 작성하였을 것인데,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우의(友宜)를 다지기 위한 것이지, 아니면 그들의 이름대로 깨달음을 얻어 불교를 융성케 하려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弘知와 道隆이 승려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어느 나라의 승려인지도 문제가 될 것이다. 弘知나 道隆이 현재도 일본 인명으로 쓰이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을 일본의 승려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8세기 대에 발해를 거쳐간 일본 승려로는 『속일본기(續日本紀)』의 입당학문승(入唐學問僧) 계융(戒融)이 보일 뿐이다. [주036]
각주 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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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日本紀』 卷24 天平寶字 7年 10月 乙亥條; 『續日本記』 卷25 天平寶字 8年 7月 甲寅條.

또한 일본이 직접 당나라나 신라에 학문승을 보낸 사례는 있지만, 발해에 학문승을 파견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당에 학문승을 파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항해할 수 있는 계절이 제약되어 있고, 뱃길도 더 위험한 발해로 학문승을 파견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계융(戒融)의 경우에도 당에 학문승으로 파견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발해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온 경우이다. 따라서 이름의 유사성만으로 이들을 일본의 승려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弘知와 道隆이라고 쓰인 토기 자체가 발해의 토기라는 점도 참고가 될 것이다.
단편적인 문자자료이므로 어느 쪽으로 확정할 근거는 없고, 또한 4글자가 전체 자료인지도 의문이 있다. 설령 두 사람의 승려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름이 갖는 의미대로 '弘知道隆'이라는 불법수행의 목표를 함의(含意)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 026
21dzk.l.u-tokyo.ac.jp/SAT/.
주 027
“比丘略有三義. 一怖魔, 二乞士, 三破惡. 此三卽初中後也. 怖魔者, 夫創軌玄門, 卽建降魔之志, 故前剃髮染衣時, 天魔宮動而魔怖也. 乞士者, 身爲道器, 身安卽道隆故, 已沽法服乞食以資身也. 破惡者, 然聖人道長, 凡夫道消, 所修已滿, 破惡以證果也”(『阿彌陀經義述』).
주 028
“夫財有五備, 福戒博聞辯才深智. 兼之者道隆, 未具者疑滯”(『高僧傳』).
주 029
“婺州僧道隆. 雲遊諸方寓江州能仁寺, 所爲不常但呼爲風和尚”(『神僧傳』).
주 030
“師俗姓申氏, 本貫潞州黎城人也. 自幼年於本州延祥院出家. 禮僧道恭爲師. 年十六落髮授具, 少通義學爲時所稱. 長而遍訪名師, 廣弘知見”(『廬山蓮宗寶鑑』).
주 031
oldsearch.sutra.re.kr/cgi-bin/searchvis_oneindex.exe?T.
주 032
“以佛弘智覆蓋衆生, 隨其根源而救濟之.”(『最勝問菩薩十住除垢斷結經』); “所觀審諦, 導御道心, 以諸通慧, 立不退轉, 覺了弘智”(『佛説超日明三昧經』).
주 033
예를 들어 銅鏡에서 구리 銅을 同으로, 거울 鏡을 竟으로 쓴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주 034
“如是四智同一心量皆無不周, 故名弘智”(『金剛三昧經論』).
주 035
“釋弘智, 姓萬氏, 始平槐里郷人. 隋大業十 一年, 徳盛郷閭權爲道士, 因入終南山”(『續高僧傳』).
주 036
『續日本紀』 卷24 天平寶字 7年 10月 乙亥條; 『續日本記』 卷25 天平寶字 8年 7月 甲寅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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