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크라스키노발해성

상세검색

닫기
제목
본문
보고서명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축조 인원

 
 

5. 축조 인원

 

隋唐의 州府縣城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縣級 성은 둘레를 기준으로 대체로 周 9리 좌우, 周 5내지 6리, 周 3내지 4리와 3리 이하의 4級으로 나눌 수가 있다. [주043]
번역주 043
닫기

隋唐의 州府級 성시는 대체로 周 20里 이상, 周 20리 좌우, 周 12리 좌우, 周 9리 좌우, 周 9리 이하의 5級으로 나눈다고 한다(傅熹年 主編, 2003, 『中國古代建築史』제2권(삼국, 양진, 남북조, 수당, 오대건축), 中國建築工業出版社, 350쪽).

여기에 따른다면 크라스키노성은 州城임에도 둘레 길이가 1,200m이므로 제4급 현성의 규모가 된다. 그 내부에는 里坊, 성문과 통하는 도로, 그리고 官署와 駐屯軍도 있었을 것이다.
크라스키노성의 축성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알려진 기록과 발굴 성과를 참조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크라스키노성은 성벽을 쌓을 때 일정 길이를 일정 집단이 담당하는 방식이 채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축조 방법은 고구려 시대 平壤城 등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평양성에서는 시공 단위로 1里나 11里 등의 숫자가 보이지만, 크라스키노성의 경우 제1지점의 틈과 제2지점 틈의 사이는 약 44m이다. [주044]
번역주 044
닫기

田村晃一ᅳ, 2003, 「クラスキノ土城の調査とその意義』, 앞의 책, 11쪽. 또한 상경성 외성의 경우에도 성벽의 구축법이 장소에 따른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田村晃一, 2005, 「渤海上京龍泉府址の考古學的檢討」, 앞의 책, 117쪽).


크라스키노성의 시공 단위는 고구려에 비해서는 작지만 신라와 비교하면 약간 긴 것이다. 현재 발견 된 성벽 축조와 관련된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경우 후기 도성인 平壤城은 대략 550 ~ 600m에 달하고, 신라의 경우에는 6 ~ 32m로 구분되어 축조 단위를 설정하고 있었다. [주045]
번역주 045
닫기

閔德植, 1989, 「高句麗의 後期都城, 『韓國史論』19, 국사편찬위원회, 197~198쪽의 (표 2) ‘고대축성비 및 각자성석 일람표’ 에 의하면, 平壤城은 작업단위가 11리, 12리로서 대략 550 ~ 600m로 상당히 긴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에는 南山新城(591년)은 11보 3척 8촌(17.8m), 7보 4척(11.8m), 21보 1촌(31.8m) 등이고, 明活城(611년)은 14보 3척 3촌(22.2m), 그리고 關門城(722년)은 7보 1척(10.9m), 4보 1척 8촌(6.6m), 5보 5척(9.1m) 등이었다.


성벽 축조 시공 단위가 약 44m라고 한다면, 이것을 토대로 크라스키노성 전체의 축조에 소요된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현재 크라스키노성 둘레는 대략 1.2km로 알려져 있으므로, 성 전체에 소요된 시공 단위는 대략 1200m/44m≠27.3이 된다. 즉 크라스키노성의 성벽 축조에는 대략 27개 시공 단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唐代 都城과 邊城의 築城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크라스키노성 축조에 필요한 인원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通典』권152 兵5 附守拒法에 의하면, 1尺의 城을 쌓는데 47명이 필요하고, 1步(5尺)의 성을 쌓는 데는 연인원 235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주046]
번역주 046
닫기

『通典』권152 兵5 附守拒法. 여기에 반영된 방수 시설은 기본상 安史의 亂 때인 8세기 중반, 구체적으로는 『통전』이 처음 찬술된 765년 전후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傅熹年 主編, 2003, 『中國古代建築史』제2권, 359쪽).

唐代 1척이 30.3cm, 1步가 5尺인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1m당 약 155명이 소요되므로, 크라스키노성의 시공 단위인 44m를 완성하는 데는 연인원 6,820명이 필요하게 된다. [주047]
번역주 047
닫기

그러나 평양성의 1m 당 축조 인원을 대략 84.4명으로 추정한 것에 따른다면(閔德植, 1989, 「高句麗의 後期都城」 앞의 책, 226쪽) 크라스키노성의 시공 단위별로 필요한 연인원은 약 3,713명이 된다.

그리고 크라스키노성 전체를 축조하는 데 필요한 인원은 그 둘레가 대략 1,200m이므로 계산상으로는 연인원 186,000명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성벽 축조와 같은 요역이 농번기 등을 피하여 시행되고, 특히 크라스키노 지역의 자연 환경을 감안하면 일년 중 상당 기간이 추위로 작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크라스키노성의 성곽 시설에서 치나 옹성 등의 방어 시설이 강조되는 등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성곽 축조를 마냥 길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크라스키노성의 축조도 대략 1개월 이내에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주048]
번역주 048
닫기

唐代 동북 지역의 거점이었던 營州城을 8세기 전반에 수축할 때 ‘三句’ 이 걸리고(『舊唐書』권185하 열전135하 良吏 下, 宋慶禮전), 정원 9년(793) 鹽州城도 ‘二句’ (『舊唐書』권196하 열전146하 吐蕃 下) 기간 내에 축조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벽 축조는 시공 단위별로 별도의 집단, 흔히 지역별로 구분되어 시행되고 축조 후에도 일정 기간 책임이 부과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축성 그 자체도 관련 분야 전문가 집단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고구려 후기의 도성인 평양성의 축조 과정을 보면, 각 단위별 축성 책임자는 小兄이나 上位使者와 같이 縣 정도의 지방관이나 무관이 파견되었다. 신라의 南山新城의 축조에는 축성 책임자 뿐만 아니라 村主, 匠尺, 作上人, 書尺, 石工集團들이 관련 금석문에 함께 기록되고 있다. 이와 같이 축성 관련 집단이나 범위를 금석문에 기록한 것은 축성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고, 그 책임은 축성 책임자뿐 아니라 축성에 참여한 지방민 전체에게도 해당되었다. [주049]
번역주 049
닫기

閔德植, 1989, 「高句麗의 後期都城」, 앞의 책, 198~199쪽.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