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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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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1) 성벽

 

(1) 축조 방법
크라스키노성은 자연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며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은 발굴에 의하면 적어도 2단계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제1단계 성벽은 외부와 내부를 돌로 쌓고, 그 사이의 공간은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주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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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과 길림성 두 개의 성 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발해 평지성은 모두 97개이다. 그 중에서 흙으로 쌓은 토성이 43개이고 돌로 쌓은 석성이 7개이며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이 31개이다. 이외 기초는 돌로 쌓고 기초 위의 성벽은 흙으로 쌓은 것과 성벽의 대부분은 흙으로 쌓았으나 일부 구간만은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것이 5개라고 한다(방학봉, 2002, 『발해성곽연구』, 연변인민출판사, 63쪽).

외부의 석축은 두께가 1.4 ~ 1.8m이고, 전체의 높이는 2.6m였다. 내부의 석축은 7단으로 쌓고 하부에는 테두리석이 있는데, 그 전체 높이는 1.1 ~ 1.2m이다. 제2단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적 문화층이 퇴적되고 성벽의 보수가 불가피해지자, 성벽의 바깥쪽은 版築으로 만들고, 또한 그 윗면에는 자갈을 섞은 흙으로 덮었다. [주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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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Voldin·Gelman·Ivliev·Nikitin, 淸水信行譯, 2003, 「クラスキノ土城 4年間の調査集成」, 『靑山史學』21, 靑山學院大學文學部史學硏究室, 55~56쪽.


그런데 성벽은 일정 길이를 단위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문의 옹성 설치 부분을 정밀 조사할 때 설치부에서 3 ~ 4m 정도 남쪽에 있는 石壁의 표면에서 폭 10 ~ 20cm 정도의 세로로 난 틈(세로줄눈, 縱目地)이 있었다. 이곳을 경계로 하여 북쪽과 남쪽 성벽에 사용된 돌의 크기는 차이가 있었다. 동문 남쪽의 치(雉) 부근 성벽 본체에서도 축조 시 시공 단위로 생각되는 세로줄눈이 검출되었다. 이것은 성벽을 구축하는 集團 또는 技術者의 차이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로 해석되고 있다. [주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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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村晃一, 2003, 「クラスキノ土城の調査とその意義」, 『‘해동성국-발해’ 특별전 기념 국제학술대회 발해 고고학의 최신 성과』, 서울대학교 박물관 주최, 서울대학교 박물관 강당, 2003년 8월 22일, 11쪽. 상경성 외성의 경우에도 성벽의 구축법이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田村晃一, 2005, 「渤海上京龍泉府址の考古學的檢討」, 田村晃一 編, 『東アジアの都城と渤海』東洋文庫論叢 64, 東洋文庫, 117쪽), 여기서도 서로 다른 축조 집단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


러시아 발굴단이 조사한 城 북서부의 성벽에서도 돌의 종류와 석축의 전체 형상이 다르므로, 石壁 각각의 부분이 별개의 집단에 의해 쌓여져 있었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성벽을 축조할 때 일정 길이별로 별개의 施工單位에 의해 크라스키노성이 축조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주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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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團, 2003, 「2002年度ロシア·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槪要報告」, 『靑山史學』21, 靑山學院大學文學部史學研究室, 30쪽.

이와 같은 성벽 축조 시 일정 길이를 특정 집단이 맡는 방식은 V장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고구려 平壤城과 신라의 城에서도 시행되었다.

(2) 방어 시설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평지에 있는 도성에는 산성과 마찬가지로 각루, 치, 옹성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발해의 도성은 이와 다른 점이 있다. 둘레 길이가 16,000m에 달하는 발해 상경성을 비롯하여, 팔련성, 서고성 등의 발해 평지 도성들은 모두 옹성, 치, 각루 따위의 시설이 없다. [주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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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무, 1994, 「고구려도성과 발해도성에 대한 비교연구」, 『발해사연구』5, 연변대학출판사, 40쪽. 한편 발해 건국지인 구국의 평지성으로 비정되는 오동성에는 치와 옹성이 있다.


그러나 도성 이외에 일반 평지성 중에는 각루, 치, 옹성이 있는 경우가 있고, [주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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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 혹은 치, 각루가 설치된 평지성은 구국 범위 내에 6개 중 4개이고, 중경현덕부관할 범위 내에는 23개 중 2개이고, 동경용원부 관할 범위 내에는 7개 중 2개이다. 이것은 발해의 평지성은 옹성과 치, 각루 등을 설치하던 데로부터 점차 설치하지 않는 데로 변화하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특히 훈춘 경내의 발해 시기에만 사용한 평지성에는 옹성과 치, 각루를 설치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방학봉, 1996, 『발해건축연구』, 연변대학출판사, 135~137쪽).

크라스키노성에도 이러한 시설이 발견되었다.

· 雉
크라스키노성에는 현재까지 치(馬面이라고도 함)가 동문 남쪽에서 한 곳만이 발견되었다. 이 치는 성벽 바깥으로 동서가 약 2.4m, 남북이 약 3.0m의 크기로 돌출되어 있고, 바닥면으로부터의 잔존 높이가 약 1.1m임이 확인되었다. 치와 만나는 성벽 본체는 기준점에서 -3.7m이고 치는 -3.4m로서 30cm의 레벨차가 있기 때문에 두 구조물의 구축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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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村晃一 外, 2002, 「2001年度ロシア·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查槪要報告」, 『靑山史學』20, 靑山學院大學文學部史學硏究室, 19~20쪽.

그러나 치에 시용된 돌의 재질은 본체 성벽과 마찬가지로 모두 赤色의 挂藻質 泥岩이고, 그 크기는 面이 15 ~ 30cm×30 ~ 50cm정도이다. [주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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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團, 2003, 「2002年度ロシア·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槪要報告」, 앞의 책, 12쪽.

현재의 규모로 미루어 치는 1 ~ 2명 정도만이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다.
크라스키노성의 치는 그 형태상으로 보아 고구려의 그것에 가깝다. 고구려 國內城 北面의 치는 동서 10m, 남북 6.8m, 높이 2m로 폭이 넓게 돌출해 있고, 大城山城의 雉는 65개 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길이 12m, 폭 10.3m로 역시 성 바깥으로 돌출하고 있다. [주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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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村晃一, 2003, 「クラスキノ土城の調査とその意義』, 앞의 책, 12쪽.


그리고 치가 있는 성벽 부근에서는 축조 시기상 적어도 세 번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최초로 성벽 본체가 축조되는 시기가 있고, 다음에 성벽 본체에 치를 설치하는 시기가 있고, 그 후 성벽 본체, 치가 거의 매몰된 단계에서 자갈무리가 형성되었다. 유물은 홍수층과 자갈무리 사이에 있기 때문에, 유물의 연대는 바로 치 설치 이후가 된다. [주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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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團, 2003, 「2002年度ロシア·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槪要報告」, 앞의 책, 18, 31쪽.


크라스키노성 동쪽 성벽에서 새로이 치가 발견됨에 따라, 다른 곳에서도 유사한 시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문 아래의 치와 유사한 위치인 남문 동쪽, 그리고 서문 남쪽에도 성문을 보호하는 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확한 위치는 동문과 그 남쪽 치와의 거리, 폭 등을 고려하고, 최종적으로는 고고조사 발굴을 통하여 확인해야 할 것이다.

· 角樓
성 남서 부분은 남벽과 서벽이 큰 반원 형태를 이루며 축조되어 있다. 그 중간 부분은 성벽의 폭이 넓고, 북서 방향과 남동 방향으로 향하면서 그 폭이 점차 좁아져 가는 형태를 볼 수가 있다. 2002년 일본 측의 조사 보고에서도 이 남서 지구의 성벽에 주목하고, 이곳에 또다른 ‘馬面’ 이 구축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주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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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團, 2003, 「2002年度ロシア·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槪要報告」, 위의 책, 8쪽.


그러나 이곳은 마면, 즉 치라기 보다는 ‘각루’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동문의 치와 같이 성문을 보호하는 기능보다는 이 부분의 성벽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더 필요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성문이 잘 보이지 않고 거리도 멀다.
위와 같은 추정이 합당하다면, 남서벽의 반대편에 있는 남벽 - 동벽 모서 리에도 ‘각루’ 와 같은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서문과 북문을 잇는 선 북쪽은 官廳이나 기타 중요 시설이 배치되어 있었을 터이지만, 성벽에는 성문이나 기타 시설이 없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시설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크라스키노성의 성벽과 그 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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