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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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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Ⅴ. 결론

 

주거지 내 2004년도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발굴 구역 4)는 하부 거주 지층의 주거지 8에 대한 연구를 완전히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지난 수년간의 결과들을 참고로 우리는 이 지역 당시 성터 주민의 높은 인구밀도를 추정할 수 있다. 이 유적지 지평의 다른 주거지와 마찬가지로 주거지로서 사용이 끝날 경우 주거지들은 쓰레기 구덩이로 변해버렸고 그 덕분에 많은 양의 인공 세공품과 자연 환경 파생물들이 수집되었다. 자연환경 파생물들은 많은 수의 동물뼈들, 생선뼈들, 민물과 해양의 조개껍질들, 탄화한 목재 파편들과 인공재배와 야생 식물의 씨앗 등이 수집되었다.
우물터 발굴은 이 지역 우물터가 1998년 발굴된 크라스키노 성터 우물과 유사한 양식에 의거해 건축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마도 우물 건설 중에 발해에 원래 널리 퍼져 있는 우물 구축 전통(형태, 크기, 우물 수갱의 단면도에 보이는 하부 사각 수갱 구조의 방향 지향성 등)에 따라 건축되었으며 이 외에도 우물 건축을 위해서 유사한 건축자재들-나무와 돌들이 이용되었던 것 같다. 발해 우물터의 건축 양식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전통들이 고구려적인 양식과 상응하고 있어 이에 대한 특별한 연구도 가치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로부터 석재 기반들이 유래된 기단 위 건물지에 관해서, 그리고 그 건물의 용도에 관해서는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기엔 시기상조이다. 기단(또한 성터 내부)위에서의 발굴과정 중에 수집된 유물들은 전체적으로 크게 고르바트카 지역에 이전에 거주했던 3 단계 시대 구분에 상응한다. 가장 이른 시기는 초기 철기 시대 크라우놉스키 문화 시대인데 수집된 크라우놉스키 문화의 각종 세공 유적들은 실제적으로 발해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사료된다.
다음 단계는 성터의 건축시에 기단을 반드시 이용해야 했던 발해 시기이다. 발해의 인공세공품들은 굉장히 다양하나 건축물의 이용과 관련한 총체적인 정보를 아직까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기단발굴을 통해 수집된 발해 토기는 양적으로는 많지 않으며 성터 내부 지역 발굴 연구 과정에서 확인된 부분과 완전 일치한다. 세번째 시기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고르바트카 성터로 이주해온 한국인들과 그 들에게 속했던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당시 이 지역 거주 구 한국인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아직 발견이 안되고 있다. 구 한국인들은 기단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사용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발굴 5의 발해 층은 훼손이 되어 있는데 가장 심한 경우가 화로의 흔적이다. 아마도 이 화로의 혼적은 대장간의 화로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다.
비록 기단이 구 한국인들과 그 후 20세기 슬라브인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석조 건물 구조(석재 기반)는 보존되어있다. 그 때문에 발굴 결과를 평가하면서 향후 발굴이 고르바트카 성터의 중기와 후기 단계에서 발해인들의 건축양식에 대하여 새로운 자료를 틀림없이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론으로 삼고 싶다. 전체적으로 2004년도 고르바트카 성터 발굴은 이 고대 성터 거주인 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많이 보완해 주었다. 일리스타야 강 연안의 다른 발해 성터의 크기를 크게 상회하는 고르바트카 성터의 면적(10 헥타)에 주목하면 고대에 고르바트카 성터가 발해 시기에 행정 중심지였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향후 충분히 연구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발해의 중앙 정부와 변경 지역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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