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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조사 결과의 종합

Ⅴ. 조사 결과의 종합

크라스키노 성지내의 건물지 조사는 1994년 7월에서 8월에 걸쳐 약 4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지 1동과 주변에 있는 기와 가마 1기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크라스키노 성지 내 건물지의 조사는 해외발굴이란 어려운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단위 유적으로 존재하지만 유적의 규모도 매우 작고, 이미 조사된 유적에 부수되었던 건물지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이 지역의 발해문화에 대한 또 다른 접근 수단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보인다. 여기에서는 조사내용을 요약 정리하면서 유적의 성격과 이를 통한 발해문화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시도하여 보고자 한다.
1994년 조사된 건물지는 크라스키노 성터 내에 위치한 것으로 보다 규모 있는 건물지에 부속된 형태로 있던 것이다. 크라스키노 성터는 둘레 약 1,400m 정도의 중급 규모의 것으로 평지성으로 조성된 것이며, 북쪽을 제외한 동·서·남쪽에 문지가 마련되어 있다. 성체는 평지성이기에 협축으로 조성되었는데, 순수토성인지 혹은 석성 및 토석 혼축성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성문에는 옹성이 돌려져 있고, 성내는 거의 평탄대지로 드넓게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중요성이 적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현황으로 미루어 이 성터가 발해 16주 중의 하나였던 염주의 치소였다고 보는 점에 큰 의문을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편, 92년 러시아 연구소에서 조사한 사원지는 크라스키노 성터 내 북단의 성벽 가까이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번에 조사한 건물지의 북서쪽에 해당되며 약 2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것이다. 성내에서 보면 가장 북단에 해당되는 곳이고, 지형상으로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사원지의 유구는 초석만 확인되면서 각종 유물도 수습되었는데, 건물의 구조로 미루어 불교 사원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금번에 조사된 건물지는 이 사원지의 정면인 동쪽에 직각형태로 배치되어 있으면서, 동일한 층위상에 소규모의 전각 형상을 갖추고 남아 있던 것이다.
조사된 건물지는 건평 18.5평방미터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방형 단칸 건물이다. 잔존된 유구는 하층의 건물 벽체 기단부 뿐으로,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웠고, 기둥사이에 80-90cm 정도 너비의 반담형태 벽체를 구성하였다는 것, 그리고 북쪽, 즉 사원지 방향으로 출입문이 시설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으나 건물의 상부구조를 복원할 수 있는 유구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조사된 이 단칸의 소형 건물지는 앞서 조사된 사원지와 어우러져 있던 시설이란 점은 분명하다.
건물지의 유구 내용은 건물의 하단인 기단뿐이지만, 단칸에 출입시설이 마련된 점은 알 수 있다. 나아가 다행스럽게도 건물의 상부 지붕을 장식하였던 각종의 기와와 치미, 그리고 연꽃 봉오리 장식이 남아 있는데, 잔존 분포 정형에서 지붕의 형상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게 한다. 즉 건물지의 조사과정에서 수습된 유물은 건물을 장식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는 치미 2개체분, 연꽃봉오리 장식 1개체분, 그리고 6종의 숫막새기와 다수, 곱새기와 등과 함께 암·수키와가 있다. 이외에 청동제 뒤꽂이를 비롯하여 철못 및 약간의 생활용기 등도 있지만, 층위상에 문제가 있는 청동제품 외에 나머지는 대체로 건물의 잔해인 기와편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나 전체 구성에서 건물부재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으로 건물은 생활가옥보다는 종교시설과 같은 특수시설이었을 것으로 우선 볼 수 있다.
즉 건물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크게 건축부재에 해당하는 유물과 생활유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물이 건축부재에 해당하는 것이고, 삼채편과 토기편, 철제 솥 등이 일부 확인된다. 따라서 건축부재와 관련된 유물을 중심으로 출토유물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크라스키노 건물지에서 조사된 유물은 크게 건물 장식부재와 축조부재로 구분할 수 있다. 건물 장식부재는 수막새, 암키와, 수키와, 귀면와, 곱새기와 등의 기와류와 치미, 연꽃봉오리 장식으로 구분되며, 건물 축조부재로는 원판형의 토제품과 철정류의 철제품으로 구분된다.
발해기와에는 수키와와 암키와, 막새기와 등의 일반 기와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나, 치미나 귀면와와 같이 장식성이 강한 기와도 꽤 많이 확인된다. 특히 치미와 같은 장식기와는 용마루나 처마의 끝, 그리고 귀마루 등 장식이 두드러진 부분을 더 화려하게 치장하는 효과를 냈다.
기와류에서 주목되는 것은 수막새로, 건물지 서북쪽의 와적층에서 산포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여기에서 출토된 것은 모두 6종류로 구분되는데, 대부분 연화문이 시문되어 있다. 5엽 연화문 수막새① ②, 6엽 연화문 수막새, 6엽 복판 연화문 수막새, 4엽 연화문 수막새① ②이다. 출토유물의 현황을 세부적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표 1] 크라스키노 건물지 출토 수막새 분류표
구분5엽 연화문①5엽 연화문②6엽 연화문6엽 복판연화문4엽 연화문①4엽 연화문②
소성경질경질경질·연질경질경질경질·연질
연판복판 심엽형복판 심엽형심엽형복판 유엽형단판 유엽형복판 삼각형
자방1+511+811+41
간판유엽형마름모꼴꽃봉오리꽃봉오리원형반원형 돌대
수량24편4편13편5편6편6편
비율41%7%23%9%10%10%
위의 표에 정리된 바와 같이 출토된 수막새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5엽 연화문 수막새①이다. 이와 같은 심엽형의 연판을 갖춘 막새편은 발해유적에서 주로 출토되는 것으로, 연판의 수량은 4엽에서 7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6엽이 가장 일반적이다. 다만 이 건물지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5엽의 연화문 수막새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상경성에서 출토된 녹유수막새와 동경성 일대에서 출토된 수막새 가운데 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수막새는 심엽형의 연꽃무늬 연판이 겹꽃잎 형태로 표현된 점과, 입체적 양감이 강조되지 않은 문양의 구성 등에 있어서는 발해유적에서 출토되는 일반적인 기와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6엽 연화문 수막새의 경우 5엽 연화문 수막새와 마찬가지로 나지막하게 돌출된 선으로 문양대를 구성함으로써 입체적인 양감이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다만 심엽형의 연판 방향이 주연부쪽으로 넓게 제작되었다는 점과 간판의 형태가 꽃봉오리와 가지로 표현된 점 등에서는 5엽 연화문 수막새에 비하여 사실적인 문양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기존의 발해유적에서 출토된 막새 중에서 이와 유사한 것이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자료의 제한성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며, 발해 막새 문양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4엽 연화문 수막새도 매우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연판의 수량에 의해서 분류된 2종류의 4엽 연화문 수막새에서는 유사성을 보이는 문양의 특징은 많지 않다. 다만 5엽·6엽 연화문 수막새에 비하여 양감 있는 문양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즉 5엽·6엽 연화문 수막새가 비교적 사실적인 문양구성에 입체적인 양감이 강조되지 않은 반면에, 4엽 연화문 수막새는 추상적인 문양구성에 입체적인 양감이 매우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일부 반구상의 돌출된 연자의 구성에서는 유사점이 확인되기도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발해의 막새는 제작 방식이나 구조와 무늬에서 다양성을 보이고 있는데, 제작기법상에서는 고구려 막새와 유사한 점이 많다. 즉 폭이 좁고 돌출한 주연부와 중앙의 자방에 배치되는 연자가 반구상으로 돌출된 것이 중심을 이루는 점 등에서 제작수법이 상통한다. 특히 4엽 연화문 수막새②의 경우 굵은 선처리와 문양구성은 고구려양식의 막새와 발해 막새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암막새는 별도로 구분되기보다는 암키와의 분류에서 함께 검토되어도 될 것으로 판단된다. 즉 발해유적에서 출토된 암막새의 특징으로 주목되는 것은 아래로 늘어진 드림새가 없다는 점이다. 확인되는 문양도 암키와의 앞면에 손누름문양을 내거나, 위아래로 짧은 사선의 문양대를 새기고 그 중앙에 동그라미무늬를 찍어 넣은 형식의 2종류가 있다.
크라스키노 건물지 출토 발해 기와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발해기와의 무늬는 현란한 수식이 배제된 도안과 입체적인 양감을 강조하지 않은 구조가 특징으로서 간결한 선의 미가 돋보인다. 이러한 예는 기존에 알려진 발해의 기와에 대한 검토에서도 알 수 있는 것으로, 문양구성도 매우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크라스키노 건물지에서는 6종류에 달하는 막새기와가 출토됨으로써 발해유적 출토 막새기와 연구에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건물의 장식부재로는 치미편과 연꽃봉오리 장식이 있다. 특히 치미편 등의 건물 부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수습 유물중에 치미는 2개체분이 수습되었고, 출토위치도 건물지의 좌우로 구분된다. 조사된 건물지의 하부 구조는 단칸 방형의 규모를 갖춘 것이지만 이 치미의 존재로 보면 지붕은 일단 사모형보다는 팔작형으로 화려하게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라스키노 건물지에서와 같이 정·측면 1칸의 건물 지붕 양단에 치미가 배치되어 있는 건물의 형식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돈황막고굴 제380굴 서벽 남측의 문수도가 주목된다. 이 벽화는 隋末唐初로 편년되는 것으로, 문수와 結摩가 발을 감아올린 승방 안에 앉아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구도가 간결하고 건물과 인물이 대담한 묘선으로 그려져 있는 수말당초의 대표적인 벽화이다. 이 벽화에서 용마루 좌우 끝부분에 치미를 부착한 모습이 확인된다. 이 밖에 五代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는 돈황막고굴 제 61굴 서벽에는 大建安寺와 釋迦經變相圖에서도 이러한 예가 확인되는데, 대부분의 건물 양측면에는 치미가 있고 용마루 중앙에는 연봉상륜장식이 놓여져 있는 특징을 보인다.
크라스키노 건물지 출토 치미편과 유사한 형태적 특징을 보이는 유물 가운데, 발해유적에서 출토된 자료로는 상경용천부 9절터 출토 치미편이 있다. 따라서 이 건물은 크라스키노 성터 내의 사원부지에 포함되어 있는 부속건물로서, 수행처나 소형의 예배처와 같은 전각건물로 추정된다.
한편, 건물의 지붕을 장식하였던 유물 중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이 연꽃봉오리 장식이다. 이 연꽃봉오리는 연봉 이외에 좌대까지 갖추고 있어 그 높이는 101cm 정도로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건물 지붕 꼭대기의 좌우에 치미 2개가 배치되었다면 연꽃봉오리 장식은 치미의 사이인 용마루 한가운데에 올려졌던 것으로 볼 수 있어, 건물 지붕 꼭대기는 좌우에 치미를 두고 가운데에 높은 연꽃 봉오리를 장식한 화려한 형태로 복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꽃 봉오리 장식의 용도는 주로 전각건물의 용마루에 시설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운강석굴과 돈황석굴사원 등에서 일부 그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운강석굴에서 확인된 전각 내 연꽃 봉오리 장식의 사용 예는 운강석굴 제6굴 동벽중층남측 불감내 불좌상 하단부의 전각과 제9굴 전실 북벽제2층서측 불감내 교각보살상 측면의 전각, 그리고 제9굴 전실 서벽 하단부의 전각에서 확인된다. 이 제 6·9굴은 5-13굴, 1·2굴과 더불어, 운강석굴 제2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465년부터 490년 경(490-494)까지 25년여 동안 개착된 석굴 들이다. 이 석굴의 전각을 보면 정·측면 1칸의 건물 지붕 양 측면에 치미가 각각 1개씩 배치되어 있고, 용마루의 중앙에는 연꽃 봉오리 장식이 확인된다.
이 밖에 五代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는 돈황막고굴 제 61굴 서벽에는 大建安寺와 釋迦經變相圖에서도 이러한 예가 확인되는데, 대부분의 건물 용마루 중앙에는 연봉상륜장식이 놓여져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베제크릭 제4호굴 벽화의 2주제와 제7주제도의 측면에서 확인되는 전각의 용마루 중앙부분에서도 연봉상륜장식이 있는데, 이 벽화는 베제크릭 석굴사원의 제3기(위구르 고창지배시대, 五代, 宋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대에서부터 송대에 이르기까지 불교건축에서 정·측면 1칸의 건물에 치미와 연봉상륜장식이 시설된 예는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당시 불교건축에 있어서 매우 성행하던 양식의 하나로 판단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므로 주목된다. 크라스키노 건물지에서 확인된 연봉 상륜장식도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사원건축에 사용되었던 부재로 판단되며, 앞으로 이와 관련된 자료의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조사된 건물지의 구조는 규모가 작지만 방형의 단칸 건물이란 점, 그리고 건물의 정상부에 연꽃 봉오리가 마치 탑의 상륜처럼 치장되고, 좌우에 치미를 둔 다소 복잡한 구조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이러한 형상은 자칫 목탑이었던 것으로 판단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수행처인 전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우선 건물의 기단부에 남겨진 두터운 반담형태의 벽체, 그리고 출입문이 북쪽인 사원지로 향하게끔 시설된 점, 무엇보다도 주 건물인 사원지의 정면에서 비껴서 직각으로 배치된 점에서 우선 추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건물지의 존재는 중국 운강석굴 사원이나 돈황의 막고굴 불교 유적에서 비슷한 존재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방증하는 것이다.
한편, 건물지 외에 또 다른 유구인 기와가마는 비록 완벽하게 조사된 것은 아니지만 그 대체적 윤곽은 확인된 것이다. 기와는 사질성 지반토를 파고 지하식으로 조성한 것으로 연소실과 소성실, 그리고 연통부로 구성되어 있고, 연소실은 원형으로, 소성실은 마름모꼴로 만들었는데, 가마의 벽체는 점토에 짚 혹은 갈대를 섞어 구축한 것이다. 그러면서 연소실과 소성실을 연결하는 화구부에는 좌우에 석재를 세워 구축한 것으로 규모는 전체길이 450cm 정도의 것이다.
이 기와가마는 소성실에 번조중이었던 기와가 채워져 있고, 일부가 소성 중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사용 중에 폐기된 것임을 알게 하며, 나아가 건물지와의 관계는 층위상으로 보아 일단 건물지와 동시대의 것이거나 약간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이 기와가마는 이미 조사되어 있는 사원지나 조사된 건물지에 사용될 기와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가마 내에 남겨진 기와가 건물지에서 수습된 기와와 같다는 점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조사된 건물지와 기와 가마의 사용시기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건물지 유구를 비교할 마땅한 자료도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습된 유물도 정확하게 대비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다만 건물에 사용된 기와의 경우 암막새는 지두문에 의해 장식된 전형적 발해기와라는 점, 숫막새도 발해의 상경성이나 93년 조사된 사원지 출토품과 대비되는 것들로 그것이 발해시기의 것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보다 정확한 편년을 위해서는 정확한 비교자료가 필요하나 아직은 해결이 어렵다.
그런데 조사된 건물지나 기와 가마가 크라스키노 성지라는 유적지 내에 있고, 존재 형상으로 미루어 이 평지성이 조성되면서 함께 시설된 것이란 점, 특히 조사 건물지의 주건물인 사원지가 성내에서 가장 중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점은 평지성의 조성 혹은 이 성의 기능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 사원지를 비롯한 조사 건물지 및 기와 가마의 사용시기로 보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조사지역이 위치한 곳은 발해의 동경이었던 중국의 훈춘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발해가 동경에 도읍하였던 시기에 그 중요성이 적지 않았던 곳으로 볼 수 있으며, 당시에 조성된 유적이 적지 않게 남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이 지역에서 아직 발해유적에 대한 기초현황마저 파악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그동안 간헐적으로 진행되었던 러시아 연구소의 발해유적에 대한 조사결과와 93년에 이루어진 일련의 조사결과는 이 지역 발해역사 이해에 작은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금번에 조사된 유적도 발해의 역사 문화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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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의 종합 자료번호 : kr.d_0001_002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