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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전각지

(도면 6-7, 도판 1-72)

1) 전각지 (도면 6-7, 도판 1-72)

건물지로 확인된 유구는 정·측면 1칸의 방형이다. 한쪽으로 입구도 마련되어 있지만 건물의 기초부인 하단 기단부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물의 구조 외에 수습된 유물에서 연꽃 봉오리 장식이 있는가 하면, 치미가 있고, 여러 가지의 숫막새 기와를 사용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일단 전각으로 추정된다.
조사된 건물지는 하단의 기단부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생토면을 정지하고, 사방에 초석을 두고, 초석간 벽체는 석축으로 쌓은 소위 반담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서 건물의 한변 벽체의 정중앙에 입구를 시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잔존된 건물지의 내용은 기단 및 초석 그리고 초석간의 벽체, 입구시설이 확인될 뿐이다.
기단은 이 지역 지반토가 사질성 토양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곳을 정지하고 사용하였음만 확인된다. 건물지의 중앙에 설치한 피트상에 나타난 내용에서 보면 별도의 시설이 있기 보다는 사질성의 퇴적토를 다짐하고 그 위에 건물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건물내부에서 확인되는 다짐층은 점토에 사립이 섞인 사질점토층으로 남았는데, 이는 건물외부인 구지표보다 점성이 강하며 사립도 거친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다짐의 범위는 동벽의 안쪽을 기준으로 30cm의 깊이부터 시작된다. 여기에 극히 부분적으로 토기편과 기와편이 섞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인위적 다짐층이란 것을 알 수 있지만 석재는 확인되지 않으며 다짐의 범위는 건물의 규모와 비슷한 너비 12m 정도이다.
우선 기단만 남아 있는 건물지는 문지가 있는 부분을 북단에 두고 장축을 계측하면 대체로 남북간으로 배치되면서 북을 기준으로 30° 가량 동쪽으로 기울어진 형상이다. 그리고 규모는 방형의 단칸건물인데 벽체가 두껍게 마련되어 있는 바, 외변을 기준으로 한변 430cm가 계측되고 내변을 258cm로 건물 벽체의 두께는 80-90cm로 이루어져 있어 전체는 약 18.5평방미터의 규모이다. 건물내부는 이보다 작은 6.7평방미터의 규모에 불과하다. 이로써 건물지는 정방형의 평면을 가진 정면 1칸, 측면 1칸의 구조로 정리할 수 있으며, 북벽의 중앙에 출입시설을 마련한 것이고, 출입시설은 너비 60cm의 규모로 있는데, 두꺼운 벽체의 내벽쪽에 출입문의 문기둥을 고였던 초석이 있다. 이외에 이 건물은 이전에 러시아 연구소에서 조사한 북쪽의 사원지 존재를 고려하면, 출입문은 사원지 방향으로 개설되어 있고, 건물의 배치도 사원지와 직각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건물지 유구의 잔존현황은 하단부의 기단에 불과하고, 이외는 건물지의 잔해인 석재와 기와뿐이다. 그런데 이들 잔존 유구·유물에 따르면 건물의 외형은 어느 정도 짐작될 수 있다. 우선 치미나 연꽃 봉오리 장식, 그리고 막새기와 등은 지붕을 장식하였던 것으로 건물이 훼손되면서 남겨진 것인데, 잔존 분포상에 어느 정도 정형성을 갖추고 있다. 연꽃봉오리 장식은 건물지의 북단 외곽에 산포된 형태로 있었다. 이들은 조각난 형태로 기와편의 아래층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는 바, 그 범위는 건물지 기단에서 약 2m 정도 간격을 두고 동서간으로 약 3.5m의 범위에 있었고, 연꽃잎마저 조각난 형태로 있었다. 한편, 치미편 들은 건물지의 서쪽 귀퉁이에 몰려 있었고, 일부는 동쪽의 귀퉁이에서도 발견된다. 이 외에 막새기와는 건물의 사방에 흩어진 형태로 있는데 막새기와의 경우 건물지의 동북변에서는 열을 이루면서 비교적 규칙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가장 많이 몰려 있기도 하다. 다만 연꽃봉오리 장식이라던가 치미 그리고 막새기와의 경우 건물지 내부에서는 거의 수습되지 않았다.
이로 보면 전각 건물은 단칸의 방형 건물이다. 기단부는 네 귀퉁이에 적심석을 시설한 다음에 고주 형태의 초석을 두고 우주를 세우면서 벽체 하단은 반담형태로 축석하여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서 출입시설은 주건물이 사원지 방향으로 개설하면서 더불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연꽃봉오리 장식이라던가 혹은 치미, 그리고 숫막새 기와 등을 보면, 비록 단칸 건물임에도 좌우에 각각 치미를 올리고, 지붕의 용마루 중앙에 연꽃 봉오리 장식을 마치 탑의 상륜처럼 올려 치장한 전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건물지의 세부 잔존상황을 우선 벽체부터 보겠다. 벽체는 기단의 네 귀퉁이에 초석 혹은 초석을 받치는 적심석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석재 1-4매씩 둔 다음에 이를 기준으로 벽체의 외변과 내변선을 이루도록 축석하고 그 안에 부정형한 석재를 채워 조성한 방식이다.
네 귀퉁이에 설치한 초석 혹은 적심석 형태의 석재는 서남쪽 귀퉁이의 경우 4매를 결구하여 한변 90-95cm의 범위를 장방형이 되게끔 하여 수평을 이루도록 시설되어 있다. 그리고 서북쪽 귀퉁이도 4매의 석재를 두어 장방형의 평면을 이루도록 하였는데, 동서간 115cm에 남북간 110cm의 수평면을 남기고 있다. 한편, 동북쪽 귀퉁이는 2매의 석재를 사용하여 장방형의 평면을 남기고 있는데, 80cm×35cm의 범위를 수평면으로 남기고 있다. 그러나 동남쪽 모서리는 한변 35cm×40cm 정도의 범위를 석재 1매를 사용하여 구축하였다. 이들 모서리에 시설된 것들은 얼핏 보면 기둥을 올렸던 초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러 개의 석재를 사용하여 단순히 기둥을 받쳤던 것보다는 또 다른 초석을 괴었던 적심석이 아닌가 추정된다.
한편, 이 귀퉁이의 적심석 형태의 석재 사이에 구축된 벽체는 적심석보다 좁게 들여서 구축하였다. 초석은 지형이 낮은 북서쪽 모서리 초석과 남서쪽 모서리 초석은 다른 초석보다 5cm 정도 낮게 시설하였으며, 토층의 현황에 의하면 이들은 외측벽을 보면 생토면 위에 바로 올려놓은 것이다.
건물의 벽체는 내외변의 경우 크고 넓은 긴 석재를 사용하여 면을 잡은 다음에 그 내부를 부정형한 석재를 사용하여 채운 형태이다. 사용된 석재의 경우 강돌과 판석이 대략 같은 비율로 섞여 있다.
동쪽 벽체는 하단의 경우 지형이 낮은 남쪽과 서쪽은 깊은 곳에서 시작하였는데 동쪽은 다른 벽체에 비해서 10cm 정도 넓게 축조되었다. 벽체는 외줄쌓기 형식으로 면을 잡은 다음에 가운데에 2-3열을 이루도록 작은 석재를 채워 넣은 방식으로 조성하였다. 내변은 1단만 남았는데, 사용된 석재의 규모가 일정하다. 그러나 외변은 2-3단의 높이로 남았고, 내변과는 달리 사용된 석재의 규모가 불규칙하다. 대체로 사용된 석재들은 내변의 경우 큰 것은 25cm의 길이를 가졌고, 작은 것은 10cm 정도의 것들이다. 반면에 외변은 길이 30cm 정도의 것을 사용하였으며, 가운데에 채운 것들은 큰 것은 길이 20cm 정도의 것이나 혹은 10cm 정도 내외의 것들을 채운 것이다.
[도면 6] 초기 노출된 유물과 유구
[도면 7] 건물지 현황도
서쪽의 벽은 북쪽의 대부분이 결실되고 남쪽부분만 어느 정도 원상을 남기고 있는데 역시 내외의 변은 열을 이루도록 축석한 다음에 내부에 1-2열의 잡석을 채워 넣고 있다. 내변은 현재 1-2단이 남았으며 사용된 석재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반면에 외면은 1단 혹은 2단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도 사용된 석재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규모는 길이 30cm에 너비 20cm 정도의 것들이다. 외면은 길이 50cm내외에 너비 25cm의 것들인데 두께는 5cm 정도로 얇은 판석재를 사용하였는가 하면, 길이 15cm 정도의 것도 있어 일정하지 않다. 가운데에 채워 넣은 석재는 지름 15cm 정도의 불규칙한 것들이다.
남쪽의 벽체도 내외변의 면을 맞추어 축석한 다음에 가운데에 2-3열로 부정형한 잡석을 채워 넣은 형상이다. 그런데 남벽으로 구분한 곳은 지형이 낮은 곳으로 이를 보강하기 위함인지 내면의 경우 바닥석이 건물지의 바닥면 석재보다 안으로 3cm-7cm 정도 턱이 지도록 안으로 들여서 축석하였다. 내면의 석축은 안으로 들여쌓은 석재를 포함하여 조사당시 2-3단이 남았으며, 사용된 석재의 규모는 일정하지 않다. 외면도 2-3단 정도 남아 있는데 석재 규모는 일정하지 않다. 길이 40cm에 너비 20cm 정도의 것들을 사용하였는데, 석재의 규모는 외면의 것도 비슷하고 가운데에 채운 것들은 그보다 작은 부정형한 것들이다.
북쪽의 벽체는 중앙에 문지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다. 이 문지는 거의 중앙부, 즉 변의 북서쪽 모서리에서 200cm의 간격을 두고 너비 60cm의 규모로 시설된 것이다. 문지로 추정되는 부분은 문기둥석을 받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벽체의 내변에 맞추어 남아 있기도 하다. 좌우에 있는 이들 기둥 받침석은 동쪽의 것은 부정형한 삼각형을 이루며 30cm× 25cm×10cm의 크기이며, 서쪽의 것은 부정형한 원형으로 지름 30cm 정도의 판석재 형태이다. 이외에 벽체의 시설방법은 다른 벽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문지가 있었기 때문인지 다른 벽체보다 약 20cm 정도 좁게 쌓았는데 내외면을 석축하여 면을 잡은 다음에 중앙은 부정형한 석재를 채워 넣은 방식인데 석재의 규모는 내면의 경우 길이 27cm, 너비 20cm 정도의 것과 길이 15cm에 너비 10cm로 일정하지 않다. 그리고 외면에 사용한 석재는 이보다 큰 길이 35cm, 너비 20cm, 혹은 지름 20cm내외의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에 채운 돌은 지름 20cm 혹은 10cm내외의 것들이다.
한편, 문지의 바깥과 그리고 건물지 남쪽 외변 등지에서는 보도석으로 볼 수 있는 석재들도 있다. 우선 문지의 외곽에는 너비 95cm의 범위로 부정형한 석재들이 깔려 있다. 이들은 출입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생토층에 박혀 있으며 대체로 강돌이 중심을 이루며 할석이 부분적으로 섞여 있는 것이다. 한겹만 부정형하게 깔린 형상인데 부분적으로 겹친 부분도 있다. 더불어 남쪽의 벽 바깥에도 벽체와 30cm의 간격을 두고 너비 85cm의 범위로 보도석 혹은 보강석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에 사용된 석재는 벽체에 사용된 것보다 작은 것들로 건물 외곽의 시설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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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지 자료번호 : kr.d_0001_0020_004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