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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유적조사의 진행

(사진 5-9)

2. 유적조사의 진행 (사진 5-9)

금번의 발해유적 발굴조사는 1993년의 1차 발굴조사에 이은 2차의 조사이다. 조사지역은 1차 조사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해주 크라스키노 지역이지만, 1차의 조사가 무덤이었다면, 금번의 조사는 무덤이 아닌 생활유적이 그 대상이 되었다. 더불어 2차 조사는 1차 조사에 이어 크라스키노 지역의 발해유적에 대한 연차적 조사라는 큰 범주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1차 조사와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우선 발굴조사 기간은 1994년 7월 23일에서 8월 20일까지 25일의 일정으로 계획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7월 23일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동일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공항 도착, 24일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준비작업을 마친 후 25일 조사지역인 크라스키노 지역으로 향하여 조사지역에 대한 현지 답사 및 숙영준비 등을 진행하고 26일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다음달인 8월 16일까지 약 20여 일의 일정으로 진행하였다. 조사작업 종결 후, 현장을 정리하고 조사자료를 점검한 다음에 16일에 발굴조사현장을 철수하여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와 8월 20일에 귀국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조사 기간이 20여 일의 일정으로 계획되었지만 7월 하순과 8월 초순의 궂은 일기로 조사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었으므로, 실제 발굴조사가 진행된 기간은 약 2주간의 일정에 불과하다. 물론 직접 발굴조사에 임하기 전에 준비작업은 94년 5월부터 실시하였다.
발굴조사의 진행은 현지조사를 위한 출국에 앞서 준비작업부터 실시하였다. 그 일차적 작업은 조사단의 조직이었는데, 93년의 발굴조사가 한국에서 파견된 조사위원 및 조사원 8명이 독자적으로 발굴을 진행하면서 러시아의 발굴인부를 조달받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 고고학연구소에서 3명의 전문연구자가 함께 참여하면서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한다는 전제가 있고, 해외발굴에 부닥치는 경비 등의 제반문제로 말미암아 실제 발굴조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조사위원 및 조사원은 6명 정도의 범위에서 구성하였다. 더불어 조사에 필요한 도구들도 93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 보완하면서 무리없이 마련하여 6월에는 선적할 수 있게 되었다.
현지조사는 94년 7월 25일 조사대상지역이 위치한 크라스키노 지역에 도착하여 시작되었다. 도착 당일 숙영지의 마련과 함께 조사대상지역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현지에서의 조사는 약 3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것이기에 숙영지는 보다 안정적이고 편리한 구조가 필요하였으나 93년과 마찬가지로 텐트생활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마찬가지로 숙영지와 조사지역은 작은 강이 막혀 있어 보트로 도강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대상지역인 크라스키노 유적지는 93년의 정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93년도 1차조사가 5월 하순에 이루어져 숲이 덜 우거졌었다는 차이 외에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고, 크라스키노 성지를 비롯하여 주변의 수많은 무덤떼들도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유적의 답사는 93년 조사하였던 무덤을 살펴보았는데, 당시 조사 후 남겨두었던 유구는 흔적도 없이 파헤쳐져 사라진 상태였다. 배경을 알아보니 우리가 이미 조사 완료하였던 무덤을 러시아 연구소에서 남겨진 유구를 해체하면서 추가조사를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조사와 그들의 조사방식의 차이, 그리고 유구를 해석하고 인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해프닝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 5] 1994년 조사지역 전경 및 그리드 설치현황
[사진 6] 그리드 조사전경
원래 우리나라의 유적발굴조사는 가능한 유구의 형상을 훼손하지 않고 유적의 성격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인데 반해서, 러시아 고고학계는 유구자체의 보존보다는 오히려 학술정보의 수집에 보다 큰 목적을 두면서, 특히 봉분이 있는 무덤과 같은 유적은 층위확인을 위한 피트설치 방식보다는 상면부터 단계적으로 봉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조사하는 것이 관례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조사한 유적은 봉분의 형상을 그대로 남기면서 조사가 이루어졌기에 조사후 유구의 형상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고, 그것이 마치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것으로 인식한 그들이 추가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추가조사의 결과 우리가 조사하여 얻은 결론 이외에 새로운 자료는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됨에 조사된 유적자체만 사라졌다는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발굴조사 대상은 크라스키노 성지내의 북단쪽 평탄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평탄지이지만 약간의 굴곡이 있는 넓은 성내지역은 갈대 등의 잡초가 키 높이로 무성하게 자라 있었는데, 조사지역은 이미 제초작업이 이루어지고 1m 너비로 방격으로 그리드가 짜여진 상태로 있었다. 즉, 조사대상지역은 이미 러시아 연구원들에 의해 선정되었고, 표면의 정리 및 실측에 의한 방격 그리드구분 작성이란 작업까지 이루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조사대상지역의 초면으로는 과연 유적이 존재할까라는 의문, 그들이 무엇을 근거로 조사지역을 선정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없지 않았다.
물론 크라스키노 성지는 해변가에 위치한 둘레 약 1,400m 정도의 평지성으로 성의 평면은 방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방에 문지가 남아 있으면서 외형으로는 토성의 형태로 있는 것이다. 문지에는 옹성의 형상이 남아 있는가 하면 성체는 협축의 형상으로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더불어 성내는 거의 평탄지로 있지만 오랫동안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폐허지인 채 있지만, 90년대 초반에 성지 자체가 발해유적으로 인식되면서 성내의 일부 유적이 발굴조사되어 사원지로 추정되는 유구와 함께 불상 및 기와 등의 관련 유물이 수습되는가 하면, 와요지와 같은 생산시설도 확인된 것으로 미루어 성내는 비교적 다양한 유구가 밀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내의 조사대상지역은 조사의 여하에 따라 중요한 유구가 확인될 것이란 기대도 없지 않았다.
다만 조사대상 지역의 선정이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때문에 조사결과 마땅한 유적이 검출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발굴조사를 진행하기 전의 초보적 행위, 즉 기초조사를 바탕으로 유구를 추정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과정이 생략되는데 따른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대상지역이 우리의 관할권이 아닌 엄연한 러시아의 영내에 있고, 여기에 있는 유적의 조사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극동고고학연구소에서 이미 진행하면서 93년부터 우리와 더불어 공동조사를 진행한 곳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93년의 1차 조사 당시에도 극동고고학연구소의 안내 및 유구 선정을 받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다만 당시에는 조사대상이 봉분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무덤 유구였기에 유적의 존재여부를 의심 없이 그대로 발굴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94년에 러시아측에서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지역은 크라스키노 성지의 북벽에서 약 100m 정도 이격된 곳으로, 지형의 굴곡이 일부 확인되지만 거의 평탄한 지역이다. 조사지역의 동북쪽으로 러시아 측에서 이미 발굴 조사한 사원지가 약 20m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서북쪽으로 약 50m 정도 거리에는 최근에 조사한 와요지도 존재한다. 따라서 대상지역은 일단 유구의 분포범위에 포함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조사대상으로 선정된 범위는 동서간 약 15m, 남북간 약 15m이고, 지형은 동에서 서쪽으로 약간의 경사를 보이지만 거의 평탄지에 가까운 형태이다. 더불어 지반토는 크라스키노 지역이 해안가에 위치한 것과 관련된 듯한데 고운 사질토가 지반토를 이루고 있지만, 표면은 오랫동안 잡초가 퇴적되어 유기질로 변한 것이 두텁게 덮여 있었다. 러시아 측이 이곳을 발굴대상지역으로 선정한 이유는 표면에서 약간의 기와들이 수습되고, 더불어 인근에 기와 요지가 발견 조사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기와요지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지표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없었다.
발굴조사의 본격적 진행은 러시아측과 조사 방법의 협의부터 진행하였다. 이미 93년 1차 조사결과의 탐색에서 알 수 있듯이 발굴방법이나 유구의 검출방법, 그리고 조사의 진행과정에 적지 않은 이견을 노출할 수 있기에 조사의 효율을 위해서는 의견조율이 무엇보다 선행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발굴이나 작업진행에서 양쪽의 상보적 확인작업을 요구했고, 기록이나 실측도의 작성 등도 이중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요구로 협의는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우리가 조사를 전적으로 진행하고 관련자료 특히 출토된 유물이라든가 혹은 기록 및 실측자료를 우선적으로 러시아 측이 확보하는 조건 등을 제시함으로써 발굴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조사할 면적이 크지 않지만 조사기간이 2주 정도로 상당히 짧다는 점, 장비 및 조사인력이 열악한 환경에서 조사작업의 효율성 제고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발굴이란 특성상 주어진 환경에서 소기의 목적을 반드시 거두어야 할 필요도 있었기에 가능한 주어진 조건에서 발굴조사를 완료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현장조사의 진행은 7월 26일 개토제를 실시하고, 이미 설치되어 있는 그리드를 조정하면서 착수되었다. 본래 러시아 측의 조사 의도는 짜여진 그리드를 중심으로 표면토를 단계적으로 제거코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조사의 정밀성은 담보될 수 있지만 시간적 제약이 적지 않다는 한계가 있기에, 우리는 그리드를 조정하여 대상지역의 중앙에 동서남북으로 토층 둑을 남기면서 사분법으로 표면토를 제토하여 유구를 노출시키는 방식을 적용하였다. 따라서 일단 중앙을 기준으로 4개의 피트를 구획한 후, 각 피트별 노출상황을 점검하면서 단계적으로 제토하여 유적 검출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이후 유적 조사내용은 일정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이후 조사의 진행은 각 피트별로 표면토를 제거하면서 노출되는 상황에 따른 기록과 함께 본격적 유구의 검색작업이 이어진다.
〈7월〉
23일 김포출발, 블라디보스톡 도착, 에콰도르호텔 숙박, 발굴일정점검 및 계획
24일 아르세니에프 박물관 탐방. 러시아 조사단과 미팅, 발굴조사세부 협의
25일 블라디보스톡 출발, 슬라비앙카 경유 크라스키노 도착, 조사지역 답사
26일 조사지역 정비, 개토제 실시, 발굴 그리드 조정
27일 제 1, 2 피트 표면토 제거, 숫막새편 등 유물 노출
28일 제 3, 4피트 표면토 제거, 석재 노출, 와적층 노출
29일 3피트 노출 석재 실측, 일기불순 1시간 작업
30일 오전 비, 오후 3, 4피트 확장 표면토 제거작업
31일 일요일 휴무
〈8월〉
1일 3, 4피트 표토제거 완료, 와적층 노출 정리작업, 유물 수습, 실측 정리
2일 표면토 완전 제거, 와적층 및 석재층 정리
3일 와적층 제거작업, 유구 노출 및 정리작업
4일 와적층 제거작업, 토층 정리, 도면 작성
5일 와적층 제거완료, 유물수습, 유구 사진촬영, 유물실측
6일 토층 둑 제거, 측면의 와요지 노출작업실시, 유물 인수 및 실측작업
7일 유구의 실측, 유물의 복원 및 실측작업
8일 유물 수습 및 유구 정리완료, 추정요지 피트설치, 건물지 내부조사
9일 유구정리 완료 외변 담장석 확인
10일 전각지 조사 완료후 실측 및 정리
11일 오전 비, 오후에 기와가마 조사
12일 기와가마 현황 조사 완료
13일 유물의 복원 및 실측
14일 유물의 복원 및 실측조사
15일 현장정리 층위도 평판측량 유물정리
16일 발굴현장 철수, 블라디보스톡 도착
17일 잔여 유물 인계 및 휴식
18일 빠르티잔스크 및 세르게이예쁘까 박물관 견학
19일 발굴자료 러시아 연구소와 최종 비교 검토 및 휴식
20일 귀국
 
[사진 7] 작업광경 ①
[사진 8] 작업광경 ②
[사진 9] 작업광경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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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조사의 진행 자료번호 : kr.d_0001_002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