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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유구(遺構)조사

2. 유구(遺構)조사

크라스키노 사원지의 유구는 발해 사원지와 관련시켜 논의해야 할 것이다. (文明大, 1997, 「발해의 불교건축과 기와」 『한국불교미술사』 한·언, pp. 280~286)
이 사원지의 구도는 1983년도 발굴한 금당지위에 중문지, 서 건물지(종루), 회랑지, 대석축, 제2건물지, 고구려계 유구와 B팀이 조사한 방형(方形) 건물지(經樓)와 기와요지 2기 등이다.
(1) 중문지(中門址)
금당지에서 남북 중심선상 11구역인 대석축 중심에 사각형(四角形 二方形)에 가까운 건물지가 발굴되었다. 바닥은 작은 자갈돌을 전면적으로 깔았는데 현 적심석의 상태로 보아 2간일 가능성도 있다.
와층이 전면적으로 겹으로 깔렸는데 연화문 숫막새기와들이 상당히 보이고 있다. 몇 가지 형식이 보이고 있어서 번와가 몇 번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 서건물지(西建物址=鐘樓)
중문지 서쪽 대석축의 남면에 면해 계속 이어지는 와층이 있는데 이것은 9구역에서 ┏ 자로 꺾어져 8구역까지 내려가다가 끊어졌는데 이것은 7, 8, 9 구역과 5, 6구역에 까지 걸친 석축담 기와를 얹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거대한 건물(승방지)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좀더 심도있는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8, 5구역의 기와층은 없어졌지만 후대의 교란으로 보이므로 좀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한 것 같다. 5구역에서 나온 금동불수와 5, 3구역의 치미편, 8구역의 용두형 귀면와 등은 이 건물의 성격을 잘 알게 해준다.
또한 8과 9구역에 있는 ┌ 자 기와층이 별도의 건물일 가능성도 있는데 방형건물로 추정된다. 그것은 석축이 끊어진 곳에서 기와층도 끊어져 있고 이곳에서 철종(鐵鍾)편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만약 이것이 석축담 기와와 다른 또 하나의 건물이었다면 종루(鍾樓)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3) 서회랑지(西回廊址)
1998년 7월에 완전히 드러난 유구이다. 금당 서쪽이 1, 3 구역에 걸쳐 긴 석열이 놓여있고 금당의 전후열과 연장되는 지점에 석열이 약간 나와 있어서 회랑지로 판단된다.
(4) 대석축(大石築)
중문지 좌우로 대석축이 이어지는데 석축은 돌을 좌우로 쌓으면서 흙을 다져 쌓는 기법인데 성벽의 축조기법과 동일한 것이다. 이 석축은 중건 때 사원의 경계 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작은 성벽형 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석축 남면을 따라 이어진 긴 기와열은 담 위에 얹었던 기와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대건물일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석축의 남면에도 계속 유구의 흔적이 나오므로 발굴을 좀 더 확대하면 1차 사원유구가 나타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2차 발굴 때 중문지 동으로 긴 석축이 출토되었으므로 전면에 걸쳐 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5) 제2건물지
5구역 일대에 1차 건물지가 불탄 후 2차 중건 시에 새로 건축한 건물로 생각되는데 탄층과 연관시켜 좀 더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6) 고구려 계 배수유구
고구려 계 커다란 평와를 겹쳐 물받이 배수로 형을 구축한 것인데 이 기와는 고구려기와인지 이를 계승한 발해초기의 기와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7세기 말 8세기 전반기 경의 고구려 계 기와로 추정된다. 따라서 매우 귀중한 유구로서 그 성격에 대해서도 앞으로 좀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옆에 적심석이 출토 되었는데 이 물받이 유구와 관련되는 고구려 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7) 우물
1998년 7월, 2차 조사 시에 발굴된 것이다. (자세한 유물에 대한 설명은 본 책 제3장 러시아측발굴보고서에서 언급됨)
서쪽 3, 5구역의 서쪽 성벽에 면해서 우물1기가 있는데 외형은 4각형이지만 둥근 원형의 우물을 돌로 쌓은 것이다. 직경이 1m, 현 길이 2m의 아담한 우물인데, 이 안에서는 발해 토기가 출토되었다.
(8) 기와요지
역시 2차 조사 때 발굴된 것인데 돌로 외형을 쌓은 기와요지로, 1차 발굴 때 발굴된 동편 와요지와 상대되는 것이다. 유구는 2기가 나란히 출현한 것이다.
(9) 석등지
금당지 앞 중심축에 기초 적심석으로 생각되는 유구가 출토되었는데 석등자리나 기단유지로 생각된다. 이것으로 보아 금당, 석등, 중문지로 연결되고 중심축을 이루는 사원지 유구로 생각된다.
(10) 금당지
1983년도에 러시아 발굴팀이 발굴한 건물로 정면5칸, 측면4칸이며 정면의 심심간(心心間)은 8m 20cm, 측면의 심심간은 7m 40cm의 큰 건물인데 사원지 중심부의 금당지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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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遺構)조사 자료번호 : kr.d_0001_0010_004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