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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벽화

널방_서벽_상세_묘주부부출행도(상단)_귀부인1

  • 저필자
    김진순(부산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
수산리 벽화고분 널방 서벽 상단의 출행도에 그려진 인물들 가운데 묘주 부인 바로 뒤에 묘사된 첫 번째 귀부인의 상세도이다. 이 귀부인도 묘주부인과 마찬가지로 볼과 이마에 붉은 연지를 찍고 우아하게 틀어 올린 올림머리를 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 행렬을 따르고 있다. 이 귀부인은 행렬의 선두에 묘사된 묘주부부, 묘주아들, 묘주부인 보다 더 작게 그려졌는데, 여기에는 이들 간의 미묘한 신분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귀부인은 그 크기로 판단할 때 이들 셋 보다는 신분적 위치가 낮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누구일까? 묘주부인의 최측근에 있던 시녀인가? 답에 대한 유추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 귀부인이 묘주 부인 바로 뒤에 등장한다는 점과 그 차림새가 묘주부인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시녀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묘주의 또 다른 부인으로 추측된다. 당시 고구려 사회는 일부다처제였기 때문에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었으며, 실제로 무덤 벽화에도 여러 명의 아내와 함께 앉아있는 묘주부부초상의 예가 여럿이 있어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먼저 이 귀부인의 복식을 살펴보면, 저고리가 묘주부인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흑색의 저고리에는 목깃과 앞섶, 소매부리, 도련에 붉은 실로 화려하게 수놓인 비단 천을 활용하여 널찍하게 선을 대고, 다시 목깃과 소매부리에 붉은 색의 선을 대어 극도의 화려함을 추구하였다. 평민이나 시종들의 저고리가 한 겹의 민무늬 선만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치마는 묘주부인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묘주부인과 달리 주름 폭이 아주 좁은 민무늬 천으로 제작된 치마이다. 아무래도 정실인 첫 번째 부인과는 복장에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저고리 착의법은 옷섶을 오른쪽으로 여며 입는 우임(右袵 : 왼쪽 옷섶을 오른쪽 가슴으로 여며서 입는 방식) 방식이다. 고구려의 전통적인 착의법은 좌임(左袵 : 오른쪽 옷섶을 왼쪽 가슴으로 여며서 입는 방식)이었으나 한족의 우임방식이 고구려로 전래됨에 따라 좌임과 함께 우임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주부부가 나란히 쓰고 있던 산개(傘蓋 : 고대에 귀족들이 나들이 할 때 태양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오늘날의 양산과 같은 것임)는 보이지 않는다.
이 귀부인의 손도 묘주부인과 마찬가지로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아 잡은 공수(拱手) 형태로, 통이 넓은 소매 자락 밖으로 두 손을 살포시 포개고 있다. 인물의 적절한 비례, 화려한 치장, 유려한 옷 주름 선 등에서 고구려 화공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이 귀부인상도 고구려 귀족부인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차림새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회화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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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방_서벽_상세_묘주부부출행도(상단)_귀부인1 자료번호 : kk.d_0004_0040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