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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방_서벽_묘주부부출행도(상단)

 
  • 저필자김진순(부산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
수산리 벽화고분 널방 서벽 상단에 그려진 묘주부부출행도이다. 묘주부부를 포함하여 모두 10명의 인물이 출행의 대열을 이루고 있다. 묘주 앞에는 3명의 곡예사가 곡예를 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우선 행렬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열의 선두에는 의관을 정제한 묘주가 앞장서고 있다. 그 뒤로 산개를 들고 있는 시종이 바짝 따르고 있으며, 다시 그 뒤를 건장한 남자가 따라가고 있다. 곱게 치장한 묘주 부인은 이 남자 뒤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귀부인 뒤에도 역시 시녀가 산개를 씌워주고 있다. 그 뒤를 세 명의 여인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무리를 지어 나란히 따르고 있다. 행렬의 마지막은 두 명의 시녀로 끝을 맺는다.
이 인물들은 모두 누구일까? 묘주와 묘주 부부는 이 행렬의 주인공으로, 산개(傘蓋 : 고대에 귀족들이 나들이 할 때 태양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오늘날의 양산과 같은 것임)를 쓰고 있는 남녀가 바로 묘주와 그의 사랑하는 부인이다. 그렇다면 묘주와 부인 사이에 서있는 이 남자는 과연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이 젊은이는 화려한 점박이 대구고(大口袴: 통이 넓은 바지로, 고구려의 귀족남성들이 착용하였던 복장임)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 신분임이 틀림없다. 얼핏 보기에는 묘주의 가장 총애 받는 시종으로 묘주를 가까이 시중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게 여기기에는 인물이 너무 크게 그려졌다. 이 사람은 바로 묘주부부의 아들일 것이다.
고구려벽화에 등장하는 고대 인물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신분의 계급에 따른 인물 크기의 차이이다. 이 출행도에도 다양한 크기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장 크게 그려진 사람은 행렬의 핵심인물인 묘주이며 그 부인과 아들은 이보다 조금 작게 그려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인물의 중요도 즉 신분의 높낮이에 따라 서로 차이를 보인다. 산개를 들고 있는 시종들은 어리고 직급이 낮기 때문에 마치 소인국의 사람처럼 작게 처리되었으며, 이에 비해 같은 시종이라 하더라도 행렬의 맨 뒤에 묘사된 시녀들은 기혼의 여성들로 귀부인들을 모시기 때문에 보다 크게 그려졌다. 그리고 귀부인 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인 가운데 앞의 두 명은 화려한 의복이나 그 크기로 보아 묘주의 또 다른 부인들 즉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인일 것이다. 마지막 여인은 이 두 여인들보다 조금 더 작게 그려지고 덜 화려하게 치장하였는데, 아마도 아들의 부인, 즉 며느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처럼 행렬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크기와 간격을 달리함으로써 그 신분을 짐작케 한 것은 매우 영리한 인물처리법이다. 고구려 화공의 너무나도 재치 있는 인물묘사법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인물들 상단 좌우에 묘사된 황색의 기다란 방형(方形) 칸은 원래 인물에 관한 사항을 적어놓는 곳인데, 빈 칸으로 남겨져있다. 일종의 방제(旁題:신주아래에 쓴, 제사를 받드는 사람의 이름)를 적는 곳으로 활용되었던 이러한 방형 칸은 앞선 시기의 덕흥리 벽화고분에서 발견된다. 특히 덕흥리 벽화고분에서는 인물과 관련된 사항 뿐 아니라 벽화 장면과 관련된 설명도 기입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이 수산리 벽화고분에까지 계승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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