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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외교문서

고사카 외상 방한에 대한 신문기사 보고

  • 발신자
    주일공사 대리
  • 수신자
    외무부장관
  • 날짜
    1960년 9월 9일
  • 문서종류
    공한
  • 문서번호
    TM-09107
  • 형태사항
    한국어 
供覽 9月 12日 政務次官
事務次官
No.TM-09107
DATE. 091230
TO. 외무부장관 귀하 (사본: 방교국장)
 9월 9일 요미우리 및 산께이 신문 조간은 고사가 외상의 방한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특파원 기사를 계재하고 있아옵기 보고하나이다.
- 기 -
1. 요미우리 신문 (하마부찌 특파원발)--
 고사가 외상 방한에 관하여 당지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는바 역시 이번 방문은 시기상조였다는 것이 한국 측의 관측인 것 같다.
 8일 국회에서 정책토의가 시작되였는바 구파의 외무부장관 후보라고 지목되고 있는 나용균 의원 등은 대일외교에 대하여 “고사가 외상의 방문은 한국 민의 대일감정을 무시한 경솔한 조치였으며 국내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당에 고사가 외상을 초청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대일외교가 급하였든 것이 아니였고 또한 아직 국교도 없는 일본 외상 숙사에 일장기를 계양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대하여 장 총리는 “지금까지 일본 에 대하여 취하여온 배타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그런데 외상 자신이 내방하였다는 사실은 일본 이 과거를 참회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방문하고 싶다는데 이를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숙사에 일장기를 게양한 것은 일본 대표단이 유숙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답변하였으며 정일형 외무부장관도 “금후는 국민감정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일을 추진하겠다.”라고 답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3자적 입장에 있는 “이활” 무역협회장도 “성과가 있었다고 하면 한국 이 무역의 확대와 균형의 원측을 제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사가 외상은 고려한다고 말하였으나 구체적 언질은 주지않었다. 조금 더 성의를 표시하여도 좋왔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2. 산께이 신문 (스가 특파원발)
 친선사절단에 대한 논평은 8일부터 겨우 나오기 시작하였다.
 고사가 사절단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 장 내각의 중요 각료가 사임하고 장 내각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명박히 폭로하였기 때문에 고사가 방문은 7일에는 완전히 잊어버려진 격이 있었다. 그러나 8일에는 고사가 외상 방한에 관하여 2개의 견해가 나오고 있다.
 고사가 방문이 유익하였다는 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친선이 확인되였다는 데에서 나오고 있는바 일본 대표부 의 설치를 한국 측이 거부하고 예비회담 의 장소를 동경 으로 결정한 것은 장 내각이 대일외교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랑할 만한 성과를 올린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민주당 구파동지회, 구파계 무소속 및 실업계에서는 고사가 방한은 한국 측의 이익보다는 손실을 더 많이 가져왔다가 평하고 있다. 일인 어부의 석방을 결정하고 평화선문제를 한일 본회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등의 것은 총선거를 앞에 둔 “이께다” 내각에게 크다란 선물을 준 것이라고 생각되는 반면 한국 측은 고사가 방한에 있어서 구체적으로는 아무것도 일본 으로부터 얻지 못하였다고 지적되고 있다.
주일공사 대리

색인어
이름
정일형, 이활
지명
한국, 한국, 일본, 일본, 일본, 한국, 한국, 동경, 한국, 한국, 일본
관서
일본 대표부
단체
민주당 구파동지회
기타
예비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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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카 외상 방한에 대한 신문기사 보고 자료번호 : kj.d_0008_0050_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