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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한국주재 러시아공사관에서 이즈볼스키에게 보낸 보고서

  • 구분
    보고서
  • 수신자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
  • 발송일
    1908년 1월 20일(1908년 1월 20일)
  • 수신일
    1908년 2월 18일(1908년 02월 18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30,лл.207-210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사회운동
  • 세부분류
    의병/독립운동
  • 주제어
    의병투쟁, 항일투쟁
  • 색인어
    무장봉기, 이강년, 허위, 민긍호, 운산독, 단천, 운천리, 양평, 양주, 북청, 후치령, 순천, 괴성, 삼수, 통천, 청진, 장호원, 장단, 홍천, 포천, 일진회
  • 형태사항
    6  , 타이핑  , 러시아어 
1908.2.18.수신.
1908년 2월 23일 №298을 부여함.
서울, 1908.1.20.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 각하께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각하주 001
번역주 001)
1908.1.20. 서울에서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А.П. Извольский)에게 보낸 보고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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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8일 №59로 각하께 보낸 저의 보고서에 언급한, 죄를 짓고 행정당국에 자수하는 폭도들은 죄를 면제받게 될 것이라는 한국황제의 칙령이 공포된 직후에 이러한 사실이 어느 정도 공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미 올 1월 1일(14일)주 002
번역주 002)
1일(14일)에서 1일은 러시아 구력이고 괄호안의 날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신력임. 이하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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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564명이 투항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군인과 경찰들이 일부의 경우에 힘으로 전혀 죄 없는 평화로운 주민들을 행정당국으로 끌고 가서 그들이 무장봉기자들이었고 지금 항복하고 있다라고 발표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편 경찰과 헌병의 무장봉기자들과의 소규모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 측의 소식에 의하면 군부대는 1월 4일(17일) 강원도 홍천에서 40명의 무장봉기 무리와 충돌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교전 결과로 31명의 한국인이 사망하였고 12정의 화승총을 획득하였고 1명의 일본군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함경남도 지역에서는 일본군과 폭도들 간에 얼마간의 치열한 교전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교전중의 하나는 1월 10일(23일) 운산독 근처에서 발생했는데 5시간 계속되었고 무장봉기자들이 후퇴함으로써 종료되었습니다. 일본 기마병 1명과 3마리의 말이 죽었고 3명의 군인과 말 1마리가 부상당했습니다. 무장봉기자들의 손실은 명확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1명의 사망자와 화승총 20정을 남겼습니다. 단천에서 가까운 운승리에서는 다른 교전이 있었는데 비록 단지 2시간 정도 지속되었지만 매우 치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장봉기자들은 또 다시 그렇게 5명의 사망자와 전날에 그들이 포로로 잡은 일진회 회원 4명을 남긴 채 후퇴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후퇴자들에 대한 추격대를 보냈고 산의 회귀선에서 그들과 맞닥뜨렸습니다. 200명의 폭도들은 자신들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면서 일본인들에게 맹렬히 저항하였고 5시간의 전투가 있은 후에야 일본인들은 그들의 위치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10명의 사망한 무장봉기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두 전투에서 어떠한 손실도 입지 않았습니다.
1월 13일(26일) 경기도 양평지역에서 무장폭도들에 의하여 몇 개의 전신주가 베어졌으나 3일이 지나 복구되었습니다.
일본군대는 1월 17일(30일) 전라남도 순천 근처에서 400명의 폭도들과 맞닥뜨렸습니다. 이 전투에서 30명의 한국인이 사망하였으며 30마리의 암소를 획득하였고 일본군은 단지 1명의 부상자를 내었습니다.
1월 18일(31일) 일본 기병순찰대가 충청북도의 장호원에서 60명의 무장봉기자들과 부딪혔는데 그들 중 20명을 살해했으며, 1명이 포로로 잡혔고 20명이 부상당했으며 약간의 화약을 획득했습니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경찰보고에 따르면 라이플총으로 무장한 약 30명의 폭도들이 근교에 나타나 일진회 회원 3명을 살해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 곳에서 약간의 방화를 하였습니다.
한국의 소식들 또한 1월 말경에 새로운 유형의 한인 사냥꾼들(빨치산)이 함경북도 북청주 003
번역주 003)
북청은 함경남도에 있으나 본 보고서에는 함경북도라고 쓰고 있기에 그대로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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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에 있는 후치령 고갯길에서 일본 기병대와 교전을 벌였고 많은 일본인이 사망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함경북도에 있는 도시들인 괴성, 삼수, 통천(Тон-чон)주 004
번역주 004)
괴성은 평안북도, 통천은 강원도에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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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청진 지역에서 많은 한인 빨치산들이 나타났으며 그들은 일본인들과 일진회 회원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역시 한국 소식통으로 완전히 사적인 정보에 근거한 것인데 현재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폭도들은 3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여기로부터 서북쪽으로 서울-의주 철도선을 따라서 서울에서 40 베르스타주 005
번역주 005)
과거 러시아의 거리단위로 1베르스타는 1,067m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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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있는 도시인 장단 근처에 있는데, 일본에서 교육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진 이강년이라는 사람의 지도하에 있습니다. 두 번째 진영의 우두머리는 과거 중추원(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Совет) 회원이었던 것이 확실한 허위주 006
번역주 006)
한자로는 許蔿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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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수도의 북동쪽으로 35베르스타 거리에 있는 도시인 포천에 있습니다. 세 번째 진영은 위에 언급한 진영들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서울에서 25[원문이 명확치 않음]베르스타 거리에 있는 도시인 양주 지역에, 과거 진위대 특무장교였던 민긍호주 007
번역주 007)
한자로는 閔肯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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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지휘 하에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 진영 각각을 구성하는 무장봉기자들의 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비록 계속해서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문들에 의하면 그들 각각 진영이 4천에서 5천명이라고 말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기는 어려운데, 특히 모든 이들 무리는 항상 재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데, 이를테면 이 무리들은 어떠한 정규군 부대가 도착했을 경우 대부분 즉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모든 이런 소식들 간의 차이와 종종 있는 모순됨은 서로간의 상반된 확언들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완전한 평온은 여전히 멀었다는 점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경기도의 지도 약도를 이곳에 동봉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도에 본 보고서에 언급한 몇몇 장소를 표시하였는데 그곳은 소문에 의하면 현재 무장봉기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각하께 깊은 존경과 진정한 충성심으로 영광을 표합니다.
한국,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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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1.20. 서울에서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А.П. Извольский)에게 보낸 보고서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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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14일)에서 1일은 러시아 구력이고 괄호안의 날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신력임. 이하 상동바로가기
  • 번역주 003)
    북청은 함경남도에 있으나 본 보고서에는 함경북도라고 쓰고 있기에 그대로 번역함 바로가기
  • 번역주 004)
    괴성은 평안북도, 통천은 강원도에 위치함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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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러시아의 거리단위로 1베르스타는 1,067m 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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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재 러시아공사관에서 이즈볼스키에게 보낸 보고서 자료번호 : kifr.d_0004_028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