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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4등관 코로스토베츠의 비밀 서신

Секретное письмо Д. С. С. Коростовца
  • 구분
    보고서
  • 저필자
    코로스토베츠
  • 번역·감수
    김선안, 이원용, 조재곤, 하원호
  • 발송일
    1909년 10월 14일(1909년 10월 14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1279,лл.44-47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외교정책/국제관계/외국인/이민(국외거주)
  • 주제어
    러시아 극동 정책, 만주 문제, 안중근, 이토
  • 색인어
    코로스토베츠, 이토, 연발권총, 안중근, 코콥초프, 관성자 역, 채가구 역, 호르바트, 만주, 철도
  • 형태사항
    8  , 타이핑  , 러시아어 
하얼빈, 1909년 10월 14일.
 
어제 제 눈 앞에서 일어난 하얼빈 역에서의 이토 공작 피살이 아직도 생생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귀하께 이 비극적 사건의 몇 가지 상세한 내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10월 13일 아침 일본 내빈들이 탄 열차가 도착하자 곧바로 재무대신은 역에서 자기가 타고 있던 열차 차량에서 내려 자신과 함께 온 재무부 관리들과 간부 몇 명의 수행을 받아 이토 공작의 차량으로 향했습니다. 차량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20분가량 머문 후 대신은 공작과 함께 플랫폼으로 나왔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각 부국 국장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곧이어 상서 코콥초프는 일본 총영사 및 수행원 몇 명을 거느린 이토 공작과 함께 자아무르 관구 부대에서 마중나온 의장대를 사열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대신과 공작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토 공작은 플랫폼 끝으로 다가가 외국 영사관원들 및 이곳에 있던 러시아 영사관들과 인사를 나눈 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습니다. 그가 다섯 걸음을 채 못 갔을 때 의장대 뒤에 서 있던 일본 거류민 무리에서 젊은이가 빠져 나와 전령병들과 의장대 뒤쪽에 있던 군인들 사이로 재빠르게 걸어가더니 이토 공작을 향해 연발권총 세 발을 쏘았습니다. 이 발사자는 근처에 서 있던 장교들에게 목과 손을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들어 세 발을 더 쏘았습니다. 이 세 발로 황궁 대신 모리, 남만주 철도 개발 책임자 다나카,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 카와카미가 총상을 입었고, 이 중 카와카미는 중상입니다. 살해자는 마지막 세 발을 쏘면서 “한국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토 공작은 “총상을 입은 사람이 더 있는가”라고 겨우 묻고는 휘청거리더니 상서 코콥초프에게 몸을 기댔다가 국경 수비대 장교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서 피를 흘리며 차량으로 옮겨졌습니다. 사격 순간에 공작과 나란히 걷고 있었던 상서 코콥초프는 운 좋게도 화를 면했습니다. 재무대신 바로 뒤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살해자가 러시아인들은 맞히지 않으려 애쓰면서 아마도 냉정하게 조준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젠 고인이 된 공작이 차량 안으로 옮겨져 우리 장교들에 의해 옷이 벗겨졌을 때, 막 도착한 러시아와 일본 의사들은 폐와 간장에 심각한 부상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브라우닝’ 연발권총에서 발사된 총탄들에 손상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우리 장교들의 말에 따르면, 공작은 진찰 받는 동안 통증으로 매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는 20분이 지나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 검사 밀러의 심문을 받은 살해자는 자신의 이름은 안가이주 001
각주 001)
안중근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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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한국 사람이고 30세에다가 원산 근방 출신의 가톨릭 신자로, 한국의 원흉이자 특히 자신의 친지들을 사형시킨 이토 공작을 살해할 목적으로 부산-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하얼빈에 도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에게 공범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해 둘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당국은 사람들의 역 출입을 제한하길 원했었고 그래서 유럽인들과 청국인들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해 두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의 경우엔 일본 영사의 희망에 따라 아무 제지 없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과 매우 흡사한 외모를 가진 살해범은 그래서 손쉽게 참석자들의 의심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토의 비극적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길 희망했던 그의 수행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열차 출발에 앞서 재무대신, 철도 관리자, 도시 관리국 등에서 보낸 조화 몇 개가 차량 안으로 들여보내졌고, 상서 코콥초프는 다시 한번 차량 안으로 들어가 고인의 흔적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부상당한 수행원들을 방문했습니다.
대놓고 공감하는 성격을 지닌 일본 사람들을 전송하는 동안 청국인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토 공작을 마중하러 역에 나와 있던 청국 관리들은 살해가 일어난 직후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이토 공작을 태우고 하얼빈으로 왔다가 일본인들의 처리에 맡겨졌던 열차는 살해 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신이 위대하시다면”주 002
각주 002)
“Коль славен наш Господ”. 당시 비공식적으로 쓰이던 러시아 국가(國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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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노래 소리가 울리는 역을 떠났습니다.
슬픈 사건이 더욱이 러시아 영토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일본인들에 대한 특별 배려로 저는 상서 코콥초프에게 이토 공작의 유해를 우리 노선의 종착역인 관성자주 003
각주 003)
현 하얼빈 관성구(寬城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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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호송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철도 관리자 호르바트 장군과 관성자 주재 영사 라브로프(Лавров)가 저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공작의 수행원들은 우리의 출장 목적을 알고 나자 검은 색 비단으로 덮인 고인의 시신이 누워 있는 차량 안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이 순간을 이용해 일본인들에게 상서 코콥초프와 저의 이름으로 깊은 애도와 일본 국민에 대한 진실한 연민의 정을 전했습니다. 탁월한 일본 활동가의 갑작스런 그리고 그토록 끔찍한 최후가 러시아인들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의 남쪽 지선에 있는 모든 역들에는 영구 열차가 지나갈 때 경례를 하기 위해 자아무르 관구 부대에서 차출된 의장대가 나와 있었습니다. 채가구 역에서 저희는, 전날 그곳에서 조선인 두 명이 의심스러운 행동 때문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체포 당시 그들은 연발권총을 소지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토 공작이 죽었다고 알려 주자 그들은 공작 살해를 기도하는 수많은 조직에 속해 있음을 우리 당국에 자백했습니다. 심리에서 드러났듯 살해범은 실제로, 거명된 인물들이 포함된 이 조직의 일원이었으며, 채가구 역에 전날 도착했던 것입니다.
오후 5시 경 관성자 역에 도착한 직후 공작의 시신은 이미 출발 준비를 하고 있던 특별 열차의 차량으로 옮겨졌습니다.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다른 차량에 탔습니다. 이송식은 청국, 러시아, 일본의 지방 정부와 3개국 의장대가 참석한 가운데 장엄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저와 호르바트 장군, 라브로프 영사는 이송식이 진행되는 동안 플랫폼에 있었습니다. 식이 끝나자 남만철도협회 회장 나카무라와 의전관 후루야가 저와 호르바트 장군에게 와서 우리가 일본에 닥친 슬픔에 공감해 준 데 대해 뜨겁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제국 정부에 감사의 말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토 공작의 유해를 실은 일본 열차는 극동으로 향했고, 우리 열차는 그날 밤 하얼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의 모든 결과와 사건이 러·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헤아리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이토 공작이 확실한 친러 지지자였고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얼빈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자기를 만나러 출장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러시아와 일본의 상호 신뢰와 우호를 강화하기 위해 일할 것이며,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이토 공작은 상서 코콥초프와의 짧은 회담에서 그런 취지의 말을 했고, 그에게 일본으로 오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일련의 모든 상황을 볼 때, 일본의 이 덕망 있는 위정자는 외유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것은 그의 동행인들도 확인해 준 바입니다. 비록 그들은 고인의 계획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인정했지만 말입니다. 이토 공작의 비극적 최후는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이 추측이 어느 정도 옳은지 검증할 가능성을 우리에게서 앗아갔습니다.
결과가 보여주었듯, 우리가 경비나 경고 조치를 취함에 있어 충분히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고 자책할 것은 없습니다. 완벽한 악행은 숙명적인 우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입장에서 편치 않은 그 범죄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이토 공작이 러시아 대신을 맞이하기 위해 만주 깊숙이 들어왔다가 도착한 지 몇 분 후 우리가 보는 앞에서,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 영토 내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이것은 당연히 우리에게 불리하게 해석될 수도 있고, 러·일 관계에 대한 냉소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본과 청국이 악의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이 불쾌한 인상을 지우고, 우리가 일본인들이 겪은 고통스런 민족적 상실에 진심으로 동감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단번에 알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봅니다. 이를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제가 10월 14일자 전보로 귀하께 상신한 바와 같이, 장례식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특사를 파견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튿날 발송한 전문에서 감히 저는, 황제의 고귀한 신임을 얻고 있으며 그런 임무에 필수적인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상서 코콥초프를 지목한 바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살해를 목격하였고, 그 자신도 죽음의 위험에 처했었던 우리 대신의 파견은 일본 국민의 예민한 감수성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진정성 면에서 설득력을 가질 것이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연민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 행보가 시의적으로도 적절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만주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의 반목 혹은 냉담의 아주 작은 징후도 셈에 넣고 있는 청국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일·청 관계에 주목해 보면, 청국 사람들은 이토 공작의 죽음에 기뻐해야 합니다. 이토 공작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밀접한 우호 관계를 주창한 변함없는 친러주의자로서, 그들에겐 증오스런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기대하고 있던 공작의 도착 및 그와 재무대신과의 만남이 청국 정부에 일종의 불안감을 야기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청국 정부는 두 사람의 만남으로 어떤 형태가 되었든 자신에게는 불쾌할 정책적 연합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북경에서는 사건을 주시하도록 위임을 받고 묵덴주 004
각주 004)
지금의 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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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하얼빈으로 특사까지 파견되었습니다. 이토 공작이 오기 이틀 전 이곳에 있는 도대(道臺)주 005
각주 005)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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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저를 방문해서 외무대신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천명했습니다. 즉, 일본인들이 하얼빈에서 관성자에 이르는 우리 철도의 남부 지역을 팔라고 제안할 것이라는 소문과 관련해, 청국은 자기네의 우선권과 첫 번째 고객의 권리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위 관리 랸-둔-얀은 일본 측으로부터 만주와 관련된 어떤 제안이 들어오든 청국에 그것을 통보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 정부의 바람을 재무대신에게 전해 주겠다고 대답하고는, 청국인들의 이중적 행동과 러시아에 대한 진정성 없는 태도를 볼 때 우리도 그들에게 일본의 제안을 알려 주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우리 정부는 청국에도 일본에도 철도를 팔 의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토 공작의 죽음으로 청국인들의 주의가 일시적으로 흐트러졌지만, 북경에서는 여전히 우리와 일본이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여러 측면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상서 코콥초프의 도쿄 출장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와 일본이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청국 정부의 경계를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 안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청국을 활용하려면 청국인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심어 주지 않는 것이 아직은 우리에게 더 유리할 것 같습니다.

  • 각주 001)
    안중근을 가리킴. 바로가기
  • 각주 002)
    “Коль славен наш Господ”. 당시 비공식적으로 쓰이던 러시아 국가(國歌). 바로가기
  • 각주 003)
    현 하얼빈 관성구(寬城區) 지역. 바로가기
  • 각주 004)
    지금의 심양. 바로가기
  • 각주 005)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책임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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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관 코로스토베츠의 비밀 서신 자료번호 : kifr.d_0004_01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