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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서울주재러시아공사관 서리공사가 1893년 3월 25일자 №24로 러시아외무부 대표서리에게 보고한 문서의 사본

Копия с донесения Управляющего Императорской Миссией в Сеуле Г. Управляющему Министерством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от 25 марта 1893 года, за № 24
  • 구분
    보고서
  • 저필자
    서울주재 러시아 서리공사
  • 수신자
    러시아 외무부 대표서리
  • 발송일
    1893년 3월 25일(1893년 3월 25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43,оп.761,д.273,лл.256-258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국제문제)/종교
  • 세부분류
    정치세력/동학/유교/기독교/외국인
  • 주제어
    동학, 유교, 집권세력
  • 색인어
    동학, 최제우, 유생, 선교사,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 형태사항
    6  , 타이핑  , 러시아어 
1893년도의
№97주 001
번역주 001)
1893년도 전체문서의 일련번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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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893년)주 002
번역주 002)
관련사안 문서번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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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어짐.
(서울)
 
이번 달 3월 11일 문서번호 №18로 각하께 보고 드린, 비밀단체인 동학도 수만 명이 조선에서 외국인을 추방해야한다는 청원을 국왕에게 제출하기 위해 전라도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이곳에 횡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3월 17일과 18일 제가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50명가량의 무리가 궁궐 문 앞에서 국왕에게 청원하기 위해 몰려있다고 합니다. 청원내용은 청원서의 표제에서 확실히 알 수 있듯이 1862년주 003
번역주 003)
1864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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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된 비밀단체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의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청원과 관련하여 3월 20일 정부의 공식회보들을 통해 조선 국가령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명령은 비밀단체들을 명확히 상기시키면서 이들의 결성이 물질적 이익추구와 백성들의 교육에 대한 정부감독의 소홀에서 발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학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은 현 이씨 왕조의 일관된 정책이었음을 주장하고, 백성들을 진실 되게 훈육하는데 배려가 부족했던 잘못을 무엇보다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국왕은 정부의 상급학술기관들을 꾸짖었습니다. 또한 국왕은 이들에게 백성들에게 유교원리를 보급시키기 위한 학문지침서 작성을 요구하였고, 이 지침서를 어기는 사람은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한다고 위협하였습니다. 이 명령서에서 흥미로운 점은 국왕이 이교에 경도된 백성들을 바로잡기 위한 학문지침서 작성에 있어 왕실 성씨를 가진 유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시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명령서에는 유생들의 동학단체에의 참여를, 예를 들어 유명한 간계 꾼이자 음모자인 국왕의 아버지인 대원군일지라도, 가능성조차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명령서가 발표되자 동학도들은 서울에서 사라진 듯합니다. 한편 국왕에게 백성들을 훈육하는데 게을리 했다는 이유로 질책 받았던 서울의 학술기관들은, 3월 22일 동학지도자들을 처벌해야한다고 국왕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국왕은 3월 23일 학술기관들의 업무는 백성훈육을 포함하는 것이고 스스로는 이 일에 정진해야 하며, 거짓된 가르침을 추종하는 자들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덧붙이자면, 3월 20일 밤에 주요 미국선교사들 중 한 선교사의 집 대문에 선교사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익명의 격문이 붙었습니다. 이 격문은 유교의 가르침을 찬양하고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한 격문은 젊은 유생들에게 선교사들에 의해 출판되는 책을 불태우고 자신들의 삶 즉, 조선유생으로서의 권리와 특권을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3월 23일 바로 그 집 대문에 보다 더 강도 높게 선교사들을 비난하는 또 다른 격문이 붙었습니다. 그 격문에 의하면 비록 조선정부가 약하여 외국강탈자들과 조약체결을 허용하였을지라도, 이 조약들에는 선교사가 조선에 거주하는 것과 선교를 허용하는 조항이 없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이는 온전히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에 거주하는 선교사들을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격문 작성자는 선교사들의 생활방식, 안락을 추구하는 그들의 집착, 자신들의 추종자를 만들기 위한 간계한 술책(영어와 중국어로 행해지는 교육은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프로테스탄트이고 가톨릭은 그렇지 않습니다)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만일 기독교인들이 선교하는 것처럼 실제로 지옥이 존재한다면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지옥에 갈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세간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3월 7일(4월 10일) 그들에 대해 징벌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여 준 이 격문을 읽은 조선인들은 이 격문들이 동학도들이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동학은 스스로 종파임을 표명하며 매우 조잡하지만 자신들의 신앙행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학교도들은 예를 들면 닭고기와 개고기를 먹지 않고, 병과 불행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적을 태워 그 재를 물과 함께 마십니다. 이렇게 볼 때 격문의 작성자들은 전통적 유교지상주의자라는 것과 어느 정도 기독교 교리를 접하였으며 더 나아가 선교사의 사생활까지도 접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선교사를 반대하는 어떤 조선인이 사적인 복수심으로 이 격문들을 작성하였다는 설명이 비록 상당히 인정할 만하다 할지라도, 격문들이 선교사의 집 대문에 붙여진 것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동학도들과 서울의 유생들이 국왕에게 청원한 청원서들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고, 이 청원서들과 관련하여 발표된 국왕의 명령들은 대략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면이 있기에 정확히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기독교가 유교를 이단으로 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작년 여름 저는 기독교 전도자들과 기독교 가르침을 강하게 비난하며 백성들에게 호소하는 익명의 문서를 입수하였습니다. 제 프랑스인 동료는 외무부에 이 문서에 대해 알렸는데, 간부들은 제 동료에게 그러한 것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고, 이러한 문서의 유포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처럼 선교사들의 활동이 계속 왕성해진다면 이들에 대항하는 유생들의 선동이 시작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유생들은 기독교를, 한편으로는 자신들 교리의 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백성들에 대한 영향력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교는 그 발생지인 중국보다 조선에서 더욱 강하게 뿌리박혀 있으며 조선은 전 국가체계가 유교원리에 의해 기초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국왕이 정확성을 기하지 않고도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1865년 대원군의 섭정 시에 선포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모든 조선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국왕의 명령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존재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청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머지않은 시일에 선교사들의 폭동과 무질서가 일어나는 것은 자명하며,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조선정부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 번역주 001)
    1893년도 전체문서의 일련번호임바로가기
  •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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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주 003)
    1864년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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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재러시아공사관 서리공사가 1893년 3월 25일자 №24로 러시아외무부 대표서리에게 보고한 문서의 사본 자료번호 : kifr.d_0004_006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