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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IV

상서 베조브라조프가 작성한, ‘극동의 전략적 정세 해명을 위한 병력 추산’이라는 제하의 세 번째 간략 보고서는 올 해 7월 19일 여순항에서 그가 제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이 간략 보고서 작성자는 윤허를 얻어 우리 극동의 군사적 상황과 관련된, 총참모부와 본부에 보관된 모든 비밀문서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문서들을 아주 상세하게 분석해야만 한다고 인정했습니다. 분석 결과는 나중에 따로 제출될 것입니다.
 
상술한 간략 보고서에서 상서 베조브라조프는 다음과 같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1) 현재 우리에게는 남만주로 집결시킬 수 있는 군대가 전혀 없습니다.
2) 한편 우리 군대는 개주역주 018
번역주 018)
이 역은 영구까지 지선이 이어지게 될 대석교 대석교(大石橋) (Ташичао)역 보다 40베르스타 남쪽에 있으며 묵덴과 여순항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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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행군 대열로 도로를 따라 6-7일 이내에 남만주에 집결해야만 합니다.
3) 남만주에 집결하게 될 우리의 군대의 활동 목적은 적이 영구에 상륙하려고 할 때 2차 상륙부대 수송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적을 바다 쪽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이미 25-31일 내에 공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4) 상술한 목적 수행을 위해 극동에 5만 명의 군대를 다시 추가 파견해야만 합니다(이 간략 보고서의 첨부문에는 6만 7천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철도 노선을 따라 배치되는 관동의 개별 부대를 제외하고 새로 구성되는 모든 부대는 1902년 3월 26일 청국과의 조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남만주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군대의 집결 지역에 대한 작성자의 관점에서 파악한, 2년 동안 일어난 변화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1901년 ‘상황 평가’라는 간략 보고서에서 그는 길림으로 전위부대를 전진시키고 하얼빈으로 우리 군대를 집결시키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극동에 체류하여 압록강 방어막 구축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디면서, 현재 작성자는 자신의 초기의 생각과는 반대로 남쪽으로 4백-5백 베르스타 떨어진 곳으로 우리 군대의 집결지를 옮겨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성자의 계획에서 압록강 방어막 구축, 우리 군대의 남만주 집결, 1차 상륙부대 수송 열차에 대한 전투의 조직, 그리고 이들 계획 수행을 위한 방법으로서 현재 극동에 있는 병력에 5만 명을 더 추가한다는 계획들은 서로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어야만 합니다.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이 간략보고서주 019
번역주 019)
이 보고서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별도로 제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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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상세히 검토해보면 이 글에 나타난 모든 잘못된 계산과 옳지 못한 생각들이 해명됩니다. 이런 것들은 이 글이 갖는, 그 어떤 진지한 성격도 삭감시키고 있습니다.
이 간략 보고서에 대한 논평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전시에 일본과 러시아가 기동시킬 수 있는 병력이, 일본은 2배 증가되었고, 우리는 거의 두 배 축소되었습니다.
우리 군의 이동 기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도 부정확하게 산출되어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이동 예상 거리는 매우 현저하게 잘못 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 군대가 집결할 때 아무르 강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청국 철도 수송력의 강화는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함대의 병력은 전혀 계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압록강 하구뿐 아니라 영구에서도 전 군의 상륙 작전을 할 수도 있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지휘부의 행동 방식이 미리부터 규정되고 있습니다. 또 만주에 집결한 우리의 군대에서 1군단 전체는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 군단의 병력은 양동작전에 투입되어 연해주에 남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 군의 최상의 행동 방법은 모든 군대가 집결할 때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방법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추산 결과, 극동에 필요한 포병, 기병 그리고 원군을 포함하여 3개 사단으로 구성된 군단으로 우리 군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간주합니다. 또 위협받는 지역에서 개별 지역으로 적시에 이동할 수 있도록 군대를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배치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관동에 1만 3천-1만 4천명, 개주역으로 신속하게 집결하기 위해 남만주 도로를 따라 3만 6천명.” 
 
작성자는 일본군이 영구에 상륙할 경우에 대비한 우리 군의 행동 계획을 아주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서 베조브라조프는 우리 함대가 완전히 활동을 중지한다 라는 가정 하에, 일본의 1차 수송열차는 선전포고 후 이미 16일째에 2만 7천 명의 병력을 싣고, 22일째에는 5만 5천 명의 병력을 싣고 개주에 도착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작성자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는 이 군대에 대항하여 그들의 공세를 중지시켜야만 합니다. 또 2차 수송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결정적인 공세로 전환하여 1차 수송열차를 바다로 던져버려야만 합니다.
간략 보고서의 작성자는 새로 조직된 3만 1천 명의 군사, 3천-4천 명의 국경 경비대, 자바이칼 지역에 동원된 예비 부대를 동원해 공세로 전환할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제1시베리아 군단의 병력은 양동 작전에 투입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략 보고서 작성 당시, 거의 완전하게 만주에 배치되어 있던 제2 시베리아 군단의 병력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작성자는 공세로 전환할 때 우리의 탁월한 전투부대인 제1, 2 시베리아 군단 대신 국경 경비대와 자바이칼 지역의 예비 부대를 투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경 경비대는 조직력이 없으며 군수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비 부대는 공세로 전환할 때 서둘러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계산에 의하면 2차 일본인 수송열차는 이미 25일째와 31일째에 영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즉 우리는 동원령 발령 후 1차 수송열차의 군대를 25째 이전에 바다로 던져버려야 합니다. 예비부대의 선두부대가 이미 18일째쯤이면 자바이칼 지역에서 개주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은 완전한 오판입니다.주 020
번역주 020)
31일째 쯤 단 1천 2백 명의 군사와 12문의 대포만이 개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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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간략 보고서의 작성자는 이미 극동에 존재하는 물자, 즉 우리의 함대와 제1, 2 시베리아 군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작성자가 새로 구성해야 한다는 병력만으로 동원령 선포 후 1달 만에 공세로 전환하여 적을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간략 보고서에 대한 분석으로 폐하의 주의를 어지럽힌 까닭은, 모든 광범위한 사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인 국가 방위 사업에 준비가 안 되고 책임감이 없는 인물들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략에서의 환상은 군대의 패배와 패전으로 응징 받는다는 것을 전쟁의 경험은 가차 없이, 그리고 철저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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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보고서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별도로 제출하겠습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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