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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랄소(實喇蘇)는 영락 연간 합리(哈里) 등과 합께 입조하여 공물을 바친 이래 계속되었으며, 선부(宣府) 행궁에서 황제를 알현한 등의 글

  • 국가
    실랄사(失剌思)
실랄사(失剌思) 주 001
각주 001)
失剌思: 石羅子라고도 하며, 지금의 이란 西南部에 위치한 設拉子(Shiraz) 일대에 해당한다. 기후는 온화하다. 이 때문에 이곳은 포도와 棉花 및 白米가 많이 산출된다. 페르시아 역사에서 失剌思가 처음 등장한 것은 2세기의 문헌에서인데, 薩珊 왕조 시기에 해당한다. 6세기에 아랍인이 페르시아를 침입하여 薩珊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이슬람교가 페르시아에 들어왔다. 또 하나의 큰 도시인 伊斯塔克爾(Istakhr)의 몰락과 함께 失剌思는 빠르게 이슬람교의 중심 도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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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마아한 가까이에 있다. 영락 11년(1413)에 사신을 보내어 합렬·엄적간·합실합아 등 8개국과 함께 백아아흔태(白阿兒忻台)를 따라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자, 이달·진성 등에게 명하여 칙서를 가지고 그 사신과 함께 가서 위로토록 하였다. [영락] 13년(1415) 겨울에 그 추장 역불랄금(亦不剌金) 주 002
각주 002)
亦不剌金: 이브라힘(Ibrahim)의 音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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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신을 보내어 이달 등을 따라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는데, 천자는 바야흐로 북방으로 순행(巡幸) 중이었다. 이듬해(1416) 여름에 이르러 비로소 하직인사를 하니, 다시 진성에게 명하여 중관 노안(魯安)과 함께 칙서와 백금·채단·사라·포백을 가지고 가서 그 추장에게 하사토록 하였다.주 003
각주 003)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77 永樂 14년 6월 己卯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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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17년(1419)에 사신을 보내어 역사불한(亦思弗罕) 주 004
각주 004)
亦思弗罕: 이스파한(Isfahan)의 音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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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여러 부(部)와 함께 사자·문표·명마(名馬)를 바치고주 005
각주 005)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210 永樂 17년 3월 丁未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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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직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다시 노안 등에게 명하여 호송토록 하고, 그 추장에게 융금(絨錦)주 006
각주 006)
絨錦: 부드럽고 가는 털이 있는 견직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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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사라·옥계요(玉繫腰)주 007
각주 007)
玉繫腰: 옥으로 만든 腰帶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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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磁器) 등의 물품을 하사토록 하였다.주 008
각주 008)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212 永樂 17년 5월 己巳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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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거가(車駕)주 009
각주 009)
車駕: 황제가 타는 수레로서 황제를 뜻한다. 여기서는 永樂帝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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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해마다 북정(北征)주 100
각주 100)
北征: 永樂帝가 고비사막을 넘어 蒙古에 親征한 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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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군마(軍馬)가 부족하자, 관원을 보내어 채폐와 자기를 많이 가지고 가서 실랄사살마아한 등 여러 나라와 교역하도록 하였다. 그 추장은 곧 사신을 보내어 말을 공물로 바치고, [영락] 21년(1423) 8월에 선부(宣府) 주 011
각주 011)
宣府: 현재의 河北 宣化縣이다. 洪武 26년(1393)에 蒙古에 대한 방어를 위하여 宣府의 左·右·前 三衛를 설치하여 山西行都司에 예속토록 하였는데, 近畿의 방위상의 要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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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행궁(行宮)주 012
각주 012)
行宮: 京城 밖으로 帝王이 행차 시에 거주하는 宮室을 뜻하는데, 帝王이 出京 후 임시로 거주하는 官署 혹은 住宅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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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두터이 하사품을 내리고 경사(京師)로 돌아가도록 하니, 이들은 드디어 오랫동안 내지(內地)에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인종(仁宗)이 황위(皇位)를 계승하고, 그들을 돌아가도록 재촉하니 비로소 하직인사를 하고 떠났다.

  • 각주 001)
    失剌思: 石羅子라고도 하며, 지금의 이란 西南部에 위치한 設拉子(Shiraz) 일대에 해당한다. 기후는 온화하다. 이 때문에 이곳은 포도와 棉花 및 白米가 많이 산출된다. 페르시아 역사에서 失剌思가 처음 등장한 것은 2세기의 문헌에서인데, 薩珊 왕조 시기에 해당한다. 6세기에 아랍인이 페르시아를 침입하여 薩珊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이슬람교가 페르시아에 들어왔다. 또 하나의 큰 도시인 伊斯塔克爾(Istakhr)의 몰락과 함께 失剌思는 빠르게 이슬람교의 중심 도시로 발전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亦不剌金: 이브라힘(Ibrahim)의 音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77 永樂 14년 6월 己卯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4)
    亦思弗罕: 이스파한(Isfahan)의 音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210 永樂 17년 3월 丁未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6)
    絨錦: 부드럽고 가는 털이 있는 견직물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7)
    玉繫腰: 옥으로 만든 腰帶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8)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212 永樂 17년 5월 己巳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9)
    車駕: 황제가 타는 수레로서 황제를 뜻한다. 여기서는 永樂帝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100)
    北征: 永樂帝가 고비사막을 넘어 蒙古에 親征한 일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11)
    宣府: 현재의 河北 宣化縣이다. 洪武 26년(1393)에 蒙古에 대한 방어를 위하여 宣府의 左·右·前 三衛를 설치하여 山西行都司에 예속토록 하였는데, 近畿의 방위상의 要地였다. 바로가기
  • 각주 012)
    行宮: 京城 밖으로 帝王이 행차 시에 거주하는 宮室을 뜻하는데, 帝王이 出京 후 임시로 거주하는 官署 혹은 住宅을 가리키기도 한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백아아흔태(白阿兒忻台), 이달, 진성, 역불랄금(亦不剌金), 이달, 진성, 노안(魯安), 노안, 인종(仁宗)
지명
실랄사(失剌思), 살마아한, 합렬, 엄적간, 합실합아, 역사불한(亦思弗罕), 실랄사, 살마아한, 선부(宣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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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랄소(實喇蘇)는 영락 연간 합리(哈里) 등과 합께 입조하여 공물을 바친 이래 계속되었으며, 선부(宣府) 행궁에서 황제를 알현한 등의 글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1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