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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진덕문(陳德文)이 각지의 풍속을 채집하여 시가(詩歌)를 만들어 바친 일과 영락(永樂) 연간에 와서야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는 글

  • 국가
    합렬(哈烈)
성조가 즉위하여 관원을 보내어 새서와 채폐를 가지고 가서 그 왕에게 하사하였으나, 여전히 보명(報命)주 001
각주 001)
報命: 원래는 復命이라고도 하여, 命을 받고 임무를 완수한 뒤 돌아와 보고하는 것을 뜻한다. 다만 여기서는 문맥상 ‘命에 答報하다’는 의미로서, 본문의 내용은 朝貢을 하라는 명에 따르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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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았다. 영락 5년(1407)에 부안 등이 돌아왔다. 진덕문은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각국의 추장에게 입조하여 공물을 바칠 것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길이 멀다는 이유로 [중국에] 이르지 않았는데, 또한 이해에 비로소 돌아왔다. 진덕문보창(保昌) 주 002
각주 002)
保昌: 오늘날의 廣東 南雄縣에 해당한다. 北宋 시기에 湞昌을 南雄州로 하였는데, 다시 仁宗을 避諱하여 保昌으로 지명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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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으로 각 지방의 풍속을 채집하여 시가(詩歌)를 만들어 바치니, 영락제가 가상히 여기고 첨도어사(僉都御史)주 003
각주 003)
僉都御史: 都察院의 正四品 官職名으로 右僉都御史, 左僉都御史를 일컬으며, 그 위로는 正三品의 左·右副都御史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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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발탁하였다. 이듬해(1408)에 다시 부안을 파견하여 새서와 폐백을 가지고 합렬에 가도록 하니, 그 추장 사합노파도아(沙哈魯把都兒) 주 004
각주 004)
沙哈魯把都兒: 샤루흐 바하두르(Shahruh Bahadur)의 음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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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신을 보내어 부안을 따라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다. [영락] 7년(1409)에 경사에 이르렀으며, 다시 [부안에게] 명하여 하사품을 가지고 그 사신과 함께 동행하여 보답하도록 하였다. 이듬해(1410) 그 추장이 사신을 보내어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

  • 각주 001)
    報命: 원래는 復命이라고도 하여, 命을 받고 임무를 완수한 뒤 돌아와 보고하는 것을 뜻한다. 다만 여기서는 문맥상 ‘命에 答報하다’는 의미로서, 본문의 내용은 朝貢을 하라는 명에 따르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2)
    保昌: 오늘날의 廣東 南雄縣에 해당한다. 北宋 시기에 湞昌을 南雄州로 하였는데, 다시 仁宗을 避諱하여 保昌으로 지명을 바꾸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僉都御史: 都察院의 正四品 官職名으로 右僉都御史, 左僉都御史를 일컬으며, 그 위로는 正三品의 左·右副都御史가 있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沙哈魯把都兒: 샤루흐 바하두르(Shahruh Bahadur)의 음역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성조, 부안, 진덕문, 진덕문, 영락제, 부안, 사합노파도아(沙哈魯把都兒), 부안
지명
중국, 보창(保昌), 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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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문(陳德文)이 각지의 풍속을 채집하여 시가(詩歌)를 만들어 바친 일과 영락(永樂) 연간에 와서야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는 글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10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