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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관(禮官)이 아뢰기를, 조공 사신에게 지급하는 상이 너무 많으니 차례로 감하여 옛날대로 지급할 것을 주청하니 황제가 승락하였다는 설명

  • 국가
    살마아한(撒馬兒罕)
경태(景泰)주 001
각주 001)
景泰: 明朝 제7대 황제 景泰帝 朱祁鈺의 年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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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1456)에 말과 낙타·옥석(玉石)을 공물로 바쳤다. 예관(禮官)주 002
각주 002)
禮官: 禮部의 신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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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뢰기를, “구제(舊制)에서는 지급하는 상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 정사(正使)와 부사(副使)에게는 응당 1등과 2등의 상물(賞物)을 지급하는데 옛날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3등[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채단(綵緞) 4표리와 비단 3필 및 직금저사의(織金紵絲衣)주 003
각주 003)
織金紵絲衣: 금실로 무늬를 넣은 모시로 만든 옷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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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벌을 지급해야 합니다.주 004
각주 004)
『英宗實錄』 卷264 景泰 7년 3월 甲申條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禮部奏; 撒馬兒罕等地面使臣[馬]黑麻捨力班等來朝貢馬·駝方物. 考之舊例, 各分登第給賞, 其一等二等賞例太重, 今難與. 宜令正·副使如舊時三等例, 每人綵緞四表裏, 絹三匹, 各織金紵絲衣一襲 ……” 이 實錄의 기사에 의거하여 張文德은 이 구절은 ‘三等’을 위로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 正使와 副使에게는 1등과 2등의 賞物을 지급할 것을 옛날과 같이 3등의 例에 따라야 합니다. 일인당 綵緞 4표리와 비단 3필 및 직금저사의 한 벌을 지급해야 합니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張文德, 2000: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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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행하는 진무(鎭撫)주 005
각주 005)
鎭撫: 衛所에 설치되는 世官으로 衛에 설치되면 衛鎭撫, 所에 설치되면 所鎭撫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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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舍人) 이하는 [등급에 따라] 차례로 감하십시오. 진헌(進獻)하는 아노골마(阿魯骨馬)주 006
각주 006)
阿魯骨馬: 阿魯骨은 몽골어 alag의 音譯으로서 ‘반점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알록달록’의 알록의 語源이기도 하다. 따라서 阿魯骨馬는 우리말로 바꾸면 ‘얼룩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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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필마다 채단 4표리·비단 8필을 [지급하고], 낙타 1마리마다 3표리·비단 10필을 [지급하며], 달달마(達達馬)는 등급을 나누지 말고 1필에 저사(紵絲)주 007
각주 007)
紵絲: 단자라고도 불리는 絹을 말한다. 보통 가늘고 강한 經絲와 질긴 緯絲를 엮어 만들었으며, 淸代 海關에서는 Satin이라고 번역해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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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필·비단 8필·절초견(折鈔絹) 1필을 [지급하고], 중등의 말은 동일하게 지급하고, 하등의 말은 또한 차례로 차등하여 감하십시오”라 하니, [경태제는] 승낙하였다. 또 아뢰기를, “진공(進貢)하는 옥석(玉石) 가운데 쓸 만한 것은 24덩어리 68근이고, 나머지 5,900여 근은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마땅히 그들 스스로 팔아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견결(堅決)하게 진헌(進獻)하고자 하니, 청컨대 5근마다 비단 1필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 하니, 이 또한 승낙하였다. 얼마 후 사신이 돌아갈 때 국왕 복살인(卜撒因) 주 008
각주 008)
卜撒因(1427~1469; 재위 1451~1469): 아랍어 Abū Sa ’id의 音譯이다. 티무르의 셋째 아들 米蘭沙의 손자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비록 전쟁과 반란이 속출했지만, 티무르 제국 통치에서 두 번째에 해당되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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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문기(文綺)·기물(器物)을 하사해주었다. 천순(天順)주 009
각주 009)
天順: 明朝의 제8대 황제 英宗의 두 번째 年號로서 1457~1464년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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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1457)에 도지휘(都指揮)주 010
각주 010)
都指揮: 명나라의 지방 군정장관인 都指揮使(正二品)를 말한다. 명조 초기 전국 각지에 衛所를 설치하면서 위소를 관할하는 都指揮使司(略稱으로는 都司)를 설치했는데, 都指揮使는 이 기관을 관장하는 지방 최고의 군사 장관이다. 전국에 13개의 都指揮使司와 3개의 行都指揮使司를 요충지에 설치되었는데, 후에 都指揮使司의 수가 16개로 증가했다. 都指揮使는 중앙의 五軍都督府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都指揮同知와 都指揮僉事의 보좌를 받아 지방의 군정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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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馬雲) 등에게 명하여 서역으로 출사(出使)하도록 하고, 칙서를 내려 그 쇄노단(鎖魯檀)주 011
각주 011)
鎖魯檀: 아랍어 Sultan의 音譯으로서, 여러 漢文 史書에는 ‘算端’, ‘速檀’, ‘蘇爾坦’, ‘素勒坦’, ‘速魯檀’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다. 현재는 ‘蘇丹’으로 음역되어 통용되고 있다. 원래는 ‘힘’ 또는 ‘권력’을 가리키던 단어였는데,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서 ‘군주’ 혹은 ‘통치자’란 뜻으로 확대된 것이다. 9세기 압바스 왕조의 突厥 禁衛軍 長官이 이 칭호를 갖고 있었는데, 11세기 아프가니스탄의 통치자 무함마드(재위 998~1030)가 압바스 왕조로부터 이 칭호를 하사받았다. 이로부터 국가의 통치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이슬람 국가에서 군주의 호칭으로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된다. 즉 13세기 말 터키인이 건국한 오스만 제국에서 그 통치자를 술탄이라 했고, 13~16세기 초와 1914~1922년의 이집트, 오만 등 국가의 역대 통치자들도 이 호칭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新疆에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차가타이 칸국의 역대 왕 중에서도 일부가 이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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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살(毋撒) 주 012
각주 012)
毋撒: Musa의 音譯이다. 張文德은 毋撒을 전년도의 國王 卜撒因과 동일 인물로 보았다. 아울러 別失八里傳의 卜賽因과 黑婁王 母賽도 동일 인물로 간주하였다(張文德, 2001: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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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장려해서 채폐를 하사하고, 조공 사신을 호송해서 갔다 돌아오도록 하였다.주 013
각주 013)
이에 관한 내용은 『英宗實錄』 卷281 天順 원년 9월 戊辰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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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노단이란 군장(君長)의 칭호로서 몽고(蒙古)의 가한(可汗)주 014
각주 014)
可汗: 大汗이라고도 칭하는데, 汗으로 줄여 칭하기도 한다. 원래는 王朝, 神靈, 上天을 의미한다. 3세기 鮮卑 部落에서 처음 출현한 말로서 중국의 天子와 유사한 뜻이다. 고대 북아시아 유목민족인 鮮卑, 回紇, 柔然, 高車, 突厥, 吐谷渾, 鐵勒, 女眞 등이 건립한 汗國에서 그 君主나 정치 首領을 모두 可汗이라 칭하였다. 처음에 이 칭호는 部落의 部衆이 首領에 대한 尊稱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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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다. [천순] 7년(1463)에 다시 지휘 첨승(詹昇) 등에게 명하여 그 나라에 출사하도록 하였다.주 015
각주 015)
이에 관한 내용은 『英宗實錄』 卷349 天順 7년 2월 辛未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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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景泰: 明朝 제7대 황제 景泰帝 朱祁鈺의 年號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禮官: 禮部의 신하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織金紵絲衣: 금실로 무늬를 넣은 모시로 만든 옷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英宗實錄』 卷264 景泰 7년 3월 甲申條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禮部奏; 撒馬兒罕等地面使臣[馬]黑麻捨力班等來朝貢馬·駝方物. 考之舊例, 各分登第給賞, 其一等二等賞例太重, 今難與. 宜令正·副使如舊時三等例, 每人綵緞四表裏, 絹三匹, 各織金紵絲衣一襲 ……” 이 實錄의 기사에 의거하여 張文德은 이 구절은 ‘三等’을 위로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 正使와 副使에게는 1등과 2등의 賞物을 지급할 것을 옛날과 같이 3등의 例에 따라야 합니다. 일인당 綵緞 4표리와 비단 3필 및 직금저사의 한 벌을 지급해야 합니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張文德, 2000: 94). 바로가기
  • 각주 005)
    鎭撫: 衛所에 설치되는 世官으로 衛에 설치되면 衛鎭撫, 所에 설치되면 所鎭撫라고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6)
    阿魯骨馬: 阿魯骨은 몽골어 alag의 音譯으로서 ‘반점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알록달록’의 알록의 語源이기도 하다. 따라서 阿魯骨馬는 우리말로 바꾸면 ‘얼룩말’에 해당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7)
    紵絲: 단자라고도 불리는 絹을 말한다. 보통 가늘고 강한 經絲와 질긴 緯絲를 엮어 만들었으며, 淸代 海關에서는 Satin이라고 번역해서 불렀다. 바로가기
  • 각주 008)
    卜撒因(1427~1469; 재위 1451~1469): 아랍어 Abū Sa ’id의 音譯이다. 티무르의 셋째 아들 米蘭沙의 손자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비록 전쟁과 반란이 속출했지만, 티무르 제국 통치에서 두 번째에 해당되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9)
    天順: 明朝의 제8대 황제 英宗의 두 번째 年號로서 1457~1464년까지 사용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10)
    都指揮: 명나라의 지방 군정장관인 都指揮使(正二品)를 말한다. 명조 초기 전국 각지에 衛所를 설치하면서 위소를 관할하는 都指揮使司(略稱으로는 都司)를 설치했는데, 都指揮使는 이 기관을 관장하는 지방 최고의 군사 장관이다. 전국에 13개의 都指揮使司와 3개의 行都指揮使司를 요충지에 설치되었는데, 후에 都指揮使司의 수가 16개로 증가했다. 都指揮使는 중앙의 五軍都督府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都指揮同知와 都指揮僉事의 보좌를 받아 지방의 군정을 수행했다. 바로가기
  • 각주 011)
    鎖魯檀: 아랍어 Sultan의 音譯으로서, 여러 漢文 史書에는 ‘算端’, ‘速檀’, ‘蘇爾坦’, ‘素勒坦’, ‘速魯檀’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다. 현재는 ‘蘇丹’으로 음역되어 통용되고 있다. 원래는 ‘힘’ 또는 ‘권력’을 가리키던 단어였는데,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서 ‘군주’ 혹은 ‘통치자’란 뜻으로 확대된 것이다. 9세기 압바스 왕조의 突厥 禁衛軍 長官이 이 칭호를 갖고 있었는데, 11세기 아프가니스탄의 통치자 무함마드(재위 998~1030)가 압바스 왕조로부터 이 칭호를 하사받았다. 이로부터 국가의 통치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이슬람 국가에서 군주의 호칭으로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된다. 즉 13세기 말 터키인이 건국한 오스만 제국에서 그 통치자를 술탄이라 했고, 13~16세기 초와 1914~1922년의 이집트, 오만 등 국가의 역대 통치자들도 이 호칭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新疆에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차가타이 칸국의 역대 왕 중에서도 일부가 이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12)
    毋撒: Musa의 音譯이다. 張文德은 毋撒을 전년도의 國王 卜撒因과 동일 인물로 보았다. 아울러 別失八里傳의 卜賽因과 黑婁王 母賽도 동일 인물로 간주하였다(張文德, 2001: 27~28). 바로가기
  • 각주 013)
    이에 관한 내용은 『英宗實錄』 卷281 天順 원년 9월 戊辰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14)
    可汗: 大汗이라고도 칭하는데, 汗으로 줄여 칭하기도 한다. 원래는 王朝, 神靈, 上天을 의미한다. 3세기 鮮卑 部落에서 처음 출현한 말로서 중국의 天子와 유사한 뜻이다. 고대 북아시아 유목민족인 鮮卑, 回紇, 柔然, 高車, 突厥, 吐谷渾, 鐵勒, 女眞 등이 건립한 汗國에서 그 君主나 정치 首領을 모두 可汗이라 칭하였다. 처음에 이 칭호는 部落의 部衆이 首領에 대한 尊稱으로 사용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15)
    이에 관한 내용은 『英宗實錄』 卷349 天順 7년 2월 辛未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복살인(卜撒因), 마운(馬雲), 무살(毋撒), 첨승(詹昇)
지명
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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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관(禮官)이 아뢰기를, 조공 사신에게 지급하는 상이 너무 많으니 차례로 감하여 옛날대로 지급할 것을 주청하니 황제가 승락하였다는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0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