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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점성국(占城國)의 위치

  • 국가
    점성(占城)
점성국(占城國) 주 001
각주 001)
占城國: 참족(Cham 占族)이 현재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 건립했던 옛 국가 참파(Cahampa)로서 중국 문헌에는 林邑, 環王, 占婆, 占波 등으로 기록되었다. 占城은 梵文 Campapura(占婆補羅)와 Campanagara(占婆那喝羅)의 簡譯이다. 즉 ‘pura’나 ‘nagara’는 범어로 ‘邑’, ‘城’의 뜻으로 점파 국왕의 처소를 가리킨 것인데 9세기 이후 중국과 베트남에서 참파국의 통상적인 칭호가 되었다(『新唐書』 卷222 「열전」147: “王所居曰占城, 別居曰齊國·曰蓬皮勢”). 송대 참파의 수도는 인드라푸라(Indrapura)였는데, 북쪽 베트남 黎왕조의 침공을 받은 뒤 훨씬 남쪽인 비자야(Vijaya 闍槃)로 옮겼다(유인선, 2002: 115쪽 참조). 『宋會要輯稿』의 「蕃夷」4-61 〈占城〉은 『宋史』 「외국전」 〈占城〉의 내용을 거의 모두를 포함할 뿐 아니라 훨씬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서 저본과 비교, 참고할 수 있다(이하 〈점성전〉에서 『宋會要』는 별도의 명시가 없는 한, 「蕃夷」4-61 〈占城〉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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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남쪽에 있다. 동(東)으로는 바다주 002
각주 002)
송대 참파 영역이 현재 베트남의 중남부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동쪽의 바다는 남중국해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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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까지, 서(西)로는 운남(雲南)에 닿으며, 남(南)으로는 진랍국(眞臘國) 주 003
각주 003)
眞臘: 현재 캄보디아에 있던 나라에 대한 중국에서의 명칭이다. 진한대에는 扶南의 속국으로 있다가 『隋書』에 처음 진랍으로 칭했는데 캄보디아 지명 씨엠립(Siem Reap)의 음역이며, 『唐書』에서는 크메르의 음역으로 吉蔑 또는 閣蔑로 칭했다. 송대의 명칭은 眞臘 또는 占臘이며 일명 眞里富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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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접하고, 북(北)으로는 환주(驩州) 주 004
각주 004)
驩州: 현재 베트남의 응에 안(Nghệ An, 乂安)지방의 빈(Vinh)에 해당한다. 隋 開皇 18년(598)에 이곳에 驩州를 설치한 뒤 日南郡, 德州 등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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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경계를 이룬다. 범선으로 항해해 남쪽으로 가면 삼불제(三佛齊) 주 005
각주 005)
三佛齊: 7세기 중엽 수마트라 팔렘방(Palembang)을 중심으로 흥기했던 해상국가로 최전성기에는 말레이반도와 순다 열도 대부분 지역까지 포함했다. 당대 중국 문헌에는 범어 스리비자야(Sri Vijaya)의 음역인 室利佛逝로 기록되다가 10세기 초부터 三佛齊로 명칭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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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5일이 걸리는 거리이다. 육로로 가면 빈타라국(賓陀羅國) 주 006
각주 006)
賓陀羅國: 현재 베트남의 중부 도시 판랑(Phan Rang)을 가리킨다. 당시 명칭인 Panduranga의 중국 음역으로서, 좀더 일반적인 중국 명칭인 賓瞳龍, 賓同隴, 賓頭狼 등의 변형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周去非의 『嶺外代答』 〈占城〉조에는 “其屬有賓膧朧國賓陀陵國”이라 하여 점성에 속한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근대 학자들 대부분은, 이것이 판두랑가에 대한 중국의 두 가지 지명 때문에 비롯된 周去非의 착오로 보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P. Dupont, 1949; Paul Pelliot, 1903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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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이르는 데는 1개월이 걸리는데 그 나라는 점성(占城)에 예속(隷屬)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마일국(麻逸國) 주 007
각주 007)
麻逸國: 고대 지명이자 국명으로 Mait에 대한 음역으로 摩逸國이라고도 했다. 현재 필리핀 군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정확한 지점은 Mindoro섬, 또는 Luzon섬 특히 Manila라는 의견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馬端臨의 『文獻通考』 卷332 〈潮婆〉조의 기록에는 “또 摩逸國이 있는데, 太平興國 7년(982) 보화를 싣고 廣州 해안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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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2일 거리이며 포단국(蒲端國) 주 008
각주 008)
蒲端國: 현재 필리핀 민다나오의 북동부 Agusan 계곡에 있는 Butuan시를 나타내는 지명이라는 의견(Geoff Wade, 2005)과 필리핀 파나이(Panay)섬 서남단 부근(사위락, 2005)이라는 의견이 있다. 『宋史』 「眞宗本紀」에는 咸平 6년(1003)에 “포단국이 홍앵무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남송 趙汝适의 『諸蕃志』 「蒲甘國」조에서 蒲端의 사신파견을 蒲甘으로 誤記했고, 후인들도 이 때문에 포단국의 옛 지점이 오늘날 Myanmar 중부라고 오인하기도 한다. 『宋會要』에도 포단국 설명이 있고, 이에 대한 영문번역 William Henry Scott, 1989를 참조할 수 있다(Geoff Wad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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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는 7일 여정의 거리이다. 북쪽으로 광주(廣州) 주 009
각주 009)
廣州: 삼국시대 吳 黄武 5년(226), 交州를 나누어 처음 설치했다. 이때 관할 영역은 현재 광동·광서 양성의 대부분 지역이었고 남조 후에는 점차 축소되었다. 수당 대에는 치소를 曲江, 南海 등 현으로 옮기고 주 이름도 番州, 南海郡, 淸海軍 등으로 바꾸었다. 오대에 南漢의 국도로서 興王府로 개칭되었다. 북송 開寶 4년(971)에 다시 광주로 바뀌고 현재 광주시인 南海, 番禺 두 개 현을 두었다. 端拱 연간 이후에 廣南東路의 치소가 되었다. 남송 祥興 원년(1278)에 翔龍府로 승격되었다가 같은 해인 至元 15년에 원조에서 廣州路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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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가는 데 바람을 타고 가면 반 달이 걸린다. 동북으로 양절(兩浙) 주 010
각주 010)
兩浙: 북송시기의 지방행정구인 兩浙路. 至道 3년(997)에 설치, 14개 주를 포함했다. 남송 建炎 연간, 南渡 이후 양절로를 양절서로와 양절동로로 나누었다. 그 범위는 기본적으로 당대의 兩浙道를 계승하여 대체로 오늘날 절강성 전체, 강소성의 鎭江, 蘇州, 無錫, 常州 지구, 上海市, 福建省 閩東 지구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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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는 데는 1개월이 걸린다. 서북으로는 교주(交州) 주 011
각주 011)
交州: 전111년 漢이 남 비엣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7개 군 중 하나인 交阯郡이 후한대에 交州로 개칭되고, 수나라 때 폐지하였다가 唐 高祖 武德 5년(622) 다시 설치하였다. 현재 홍강 델타의 중앙에서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治所는 交阯縣으로 지금의 베트남 하노이市 서북쪽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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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이틀에 갈 수 있고 육지 길로 가면 반 달 걸리는 거리이다. 그 국토는 동서(東西)가 7백리 남북(南北)이 3천리이다. 남쪽 지방은 시비주(施備州),주 012
각주 012)
施備州: 스리 비자야(Sri Vijaya)의 음역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明實錄』 「태종실록」 卷60, 참파와 관련해 “尸毘奈港口”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분명 참파 수도가 있던 차 반(Cha Ban, 闍槃)의 항구 스리 비나야(Sri Vinaya, Sri Banoy)의 음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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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지방은 상원주(上源州),주 013
각주 013)
上源州: 본문의 설명대로 참파의 서부 지역의 지명이나 그 발음이 아니라 의미의 번역이니 참파의 내륙 쪽 고지대를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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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지방은 오리주(烏里州) 주 014
각주 014)
烏里州: 송대 초기 참파국 수도가 있던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2세기 미선(Mi-so’n)유적의 碑銘에서 확인되는 참파의 지명 울릭(Ulik 혹은 Ralīk)의 중국 음역일 것이다(Wade, 200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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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부르며,주 015
각주 015)
남북으로 긴 참파의 국토는 일반적으로 남부, 중부, 북부 3개 구역으로 구분한다. 남부는 현재 베트남의 판랑(Phan Rang)을 중심지로 하는 판두랑가(Panduranga) 지역인데 중국 문헌에 賓童龍 등으로 기록되었다. 중부는 비자야(Vijaya) 지역인데 그 중심 도시도 비자야로, 1000년경 이후 참파의 新都가 되었다. 중국 기록에 佛逝, 佛誓, 闍槃이 이 곳이다. 북부는 현재 다낭(DaNang) 즉 Indrapura 지역이며 9~10세기 참파의 수도이었다. 유명한 미선유적이 발굴된 지역이다(馬司培羅, 1973: 11). 저본에서 남, 서, 북의 구분은 판랑 지역 즉 남송대 참파의 중심지를 옮긴 남쪽 지역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부인 비자야 지방을 남으로 보고 내륙 서부를 따로 구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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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리는 크고 작은 주(州)가 38개이나 3만 호(戶)가 채 못 된다. 그 나라는 성곽(城郭)이 없고 1백여 개의 촌(村)이 있는데,주 016
각주 016)
송 희녕 9년(1076)에 중국에 온 참파의 사자가 신종에게 상언한 바에 따르면, 송조 시대 참파에는 105개 촌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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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락의 호수(戶數)는 3백, 5백에서 혹은 7백에 이르기도 하며, 또한 현(縣)·진(鎭)의 명칭주 017
각주 017)
Georges Maspero는 비문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위에서 말한 광역의 구역 아래에 pramana와 vijaya로 구별되는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전자는 행정구역의 명칭이며 후자는 봉건 采地일 것이라고 설명한다(馬司培羅, 197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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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

  • 각주 001)
    占城國: 참족(Cham 占族)이 현재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 건립했던 옛 국가 참파(Cahampa)로서 중국 문헌에는 林邑, 環王, 占婆, 占波 등으로 기록되었다. 占城은 梵文 Campapura(占婆補羅)와 Campanagara(占婆那喝羅)의 簡譯이다. 즉 ‘pura’나 ‘nagara’는 범어로 ‘邑’, ‘城’의 뜻으로 점파 국왕의 처소를 가리킨 것인데 9세기 이후 중국과 베트남에서 참파국의 통상적인 칭호가 되었다(『新唐書』 卷222 「열전」147: “王所居曰占城, 別居曰齊國·曰蓬皮勢”). 송대 참파의 수도는 인드라푸라(Indrapura)였는데, 북쪽 베트남 黎왕조의 침공을 받은 뒤 훨씬 남쪽인 비자야(Vijaya 闍槃)로 옮겼다(유인선, 2002: 115쪽 참조). 『宋會要輯稿』의 「蕃夷」4-61 〈占城〉은 『宋史』 「외국전」 〈占城〉의 내용을 거의 모두를 포함할 뿐 아니라 훨씬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어서 저본과 비교, 참고할 수 있다(이하 〈점성전〉에서 『宋會要』는 별도의 명시가 없는 한, 「蕃夷」4-61 〈占城〉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송대 참파 영역이 현재 베트남의 중남부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동쪽의 바다는 남중국해로 볼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眞臘: 현재 캄보디아에 있던 나라에 대한 중국에서의 명칭이다. 진한대에는 扶南의 속국으로 있다가 『隋書』에 처음 진랍으로 칭했는데 캄보디아 지명 씨엠립(Siem Reap)의 음역이며, 『唐書』에서는 크메르의 음역으로 吉蔑 또는 閣蔑로 칭했다. 송대의 명칭은 眞臘 또는 占臘이며 일명 眞里富라고도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驩州: 현재 베트남의 응에 안(Nghệ An, 乂安)지방의 빈(Vinh)에 해당한다. 隋 開皇 18년(598)에 이곳에 驩州를 설치한 뒤 日南郡, 德州 등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三佛齊: 7세기 중엽 수마트라 팔렘방(Palembang)을 중심으로 흥기했던 해상국가로 최전성기에는 말레이반도와 순다 열도 대부분 지역까지 포함했다. 당대 중국 문헌에는 범어 스리비자야(Sri Vijaya)의 음역인 室利佛逝로 기록되다가 10세기 초부터 三佛齊로 명칭이 바뀌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賓陀羅國: 현재 베트남의 중부 도시 판랑(Phan Rang)을 가리킨다. 당시 명칭인 Panduranga의 중국 음역으로서, 좀더 일반적인 중국 명칭인 賓瞳龍, 賓同隴, 賓頭狼 등의 변형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周去非의 『嶺外代答』 〈占城〉조에는 “其屬有賓膧朧國賓陀陵國”이라 하여 점성에 속한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근대 학자들 대부분은, 이것이 판두랑가에 대한 중국의 두 가지 지명 때문에 비롯된 周去非의 착오로 보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P. Dupont, 1949; Paul Pelliot, 1903 등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7)
    麻逸國: 고대 지명이자 국명으로 Mait에 대한 음역으로 摩逸國이라고도 했다. 현재 필리핀 군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정확한 지점은 Mindoro섬, 또는 Luzon섬 특히 Manila라는 의견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馬端臨의 『文獻通考』 卷332 〈潮婆〉조의 기록에는 “또 摩逸國이 있는데, 太平興國 7년(982) 보화를 싣고 廣州 해안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8)
    蒲端國: 현재 필리핀 민다나오의 북동부 Agusan 계곡에 있는 Butuan시를 나타내는 지명이라는 의견(Geoff Wade, 2005)과 필리핀 파나이(Panay)섬 서남단 부근(사위락, 2005)이라는 의견이 있다. 『宋史』 「眞宗本紀」에는 咸平 6년(1003)에 “포단국이 홍앵무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남송 趙汝适의 『諸蕃志』 「蒲甘國」조에서 蒲端의 사신파견을 蒲甘으로 誤記했고, 후인들도 이 때문에 포단국의 옛 지점이 오늘날 Myanmar 중부라고 오인하기도 한다. 『宋會要』에도 포단국 설명이 있고, 이에 대한 영문번역 William Henry Scott, 1989를 참조할 수 있다(Geoff Wade, 2005). 바로가기
  • 각주 009)
    廣州: 삼국시대 吳 黄武 5년(226), 交州를 나누어 처음 설치했다. 이때 관할 영역은 현재 광동·광서 양성의 대부분 지역이었고 남조 후에는 점차 축소되었다. 수당 대에는 치소를 曲江, 南海 등 현으로 옮기고 주 이름도 番州, 南海郡, 淸海軍 등으로 바꾸었다. 오대에 南漢의 국도로서 興王府로 개칭되었다. 북송 開寶 4년(971)에 다시 광주로 바뀌고 현재 광주시인 南海, 番禺 두 개 현을 두었다. 端拱 연간 이후에 廣南東路의 치소가 되었다. 남송 祥興 원년(1278)에 翔龍府로 승격되었다가 같은 해인 至元 15년에 원조에서 廣州路로 고쳤다. 바로가기
  • 각주 010)
    兩浙: 북송시기의 지방행정구인 兩浙路. 至道 3년(997)에 설치, 14개 주를 포함했다. 남송 建炎 연간, 南渡 이후 양절로를 양절서로와 양절동로로 나누었다. 그 범위는 기본적으로 당대의 兩浙道를 계승하여 대체로 오늘날 절강성 전체, 강소성의 鎭江, 蘇州, 無錫, 常州 지구, 上海市, 福建省 閩東 지구를 포함한다. 바로가기
  • 각주 011)
    交州: 전111년 漢이 남 비엣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7개 군 중 하나인 交阯郡이 후한대에 交州로 개칭되고, 수나라 때 폐지하였다가 唐 高祖 武德 5년(622) 다시 설치하였다. 현재 홍강 델타의 중앙에서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治所는 交阯縣으로 지금의 베트남 하노이市 서북쪽에 해당한다. 바로가기
  • 각주 012)
    施備州: 스리 비자야(Sri Vijaya)의 음역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明實錄』 「태종실록」 卷60, 참파와 관련해 “尸毘奈港口”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분명 참파 수도가 있던 차 반(Cha Ban, 闍槃)의 항구 스리 비나야(Sri Vinaya, Sri Banoy)의 음역이다. 바로가기
  • 각주 013)
    上源州: 본문의 설명대로 참파의 서부 지역의 지명이나 그 발음이 아니라 의미의 번역이니 참파의 내륙 쪽 고지대를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14)
    烏里州: 송대 초기 참파국 수도가 있던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2세기 미선(Mi-so’n)유적의 碑銘에서 확인되는 참파의 지명 울릭(Ulik 혹은 Ralīk)의 중국 음역일 것이다(Wade, 2005: 4). 바로가기
  • 각주 015)
    남북으로 긴 참파의 국토는 일반적으로 남부, 중부, 북부 3개 구역으로 구분한다. 남부는 현재 베트남의 판랑(Phan Rang)을 중심지로 하는 판두랑가(Panduranga) 지역인데 중국 문헌에 賓童龍 등으로 기록되었다. 중부는 비자야(Vijaya) 지역인데 그 중심 도시도 비자야로, 1000년경 이후 참파의 新都가 되었다. 중국 기록에 佛逝, 佛誓, 闍槃이 이 곳이다. 북부는 현재 다낭(DaNang) 즉 Indrapura 지역이며 9~10세기 참파의 수도이었다. 유명한 미선유적이 발굴된 지역이다(馬司培羅, 1973: 11). 저본에서 남, 서, 북의 구분은 판랑 지역 즉 남송대 참파의 중심지를 옮긴 남쪽 지역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부인 비자야 지방을 남으로 보고 내륙 서부를 따로 구분한 것 같다. 바로가기
  • 각주 016)
    송 희녕 9년(1076)에 중국에 온 참파의 사자가 신종에게 상언한 바에 따르면, 송조 시대 참파에는 105개 촌락이 있었다. 바로가기
  • 각주 017)
    Georges Maspero는 비문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위에서 말한 광역의 구역 아래에 pramana와 vijaya로 구별되는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전자는 행정구역의 명칭이며 후자는 봉건 采地일 것이라고 설명한다(馬司培羅, 1973: 12). 바로가기

색인어
지명
점성국(占城國), 중국, 운남(雲南), 진랍국(眞臘國), 환주(驩州), 삼불제(三佛齊), 빈타라국(賓陀羅國), 점성(占城), 마일국(麻逸國), 포단국(蒲端國), 광주(廣州), 양절(兩浙), 교주(交州), 시비주(施備州), 상원주(上源州), 오리주(烏里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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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국(占城國)의 위치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