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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邕管의 폐지

  • 국가
    서원만(西原蠻)
얼마 되지 않아서, 옹관(邕管)이 폐지되었는데, 사람들이 잘 했다고 하지 않았다. 감찰어사(監察御使) 두주사(杜周士)안남(安南)에 사(使)로 갔는데, 옹주(邕州)를 지나게 되었다. [옹주]자사 이원종(李元宗)이 그 상황을 아뢰었는데, 주사(周士)가 오관(五管)에 종사하여 쌓인 햇수가 30년인지라, 그 또한 그 불편함을 알았다. [용관경략사(容管經略使)] 엄공소(嚴公素) 주 001
각주 001)
『舊唐書』卷16 「穆宗本紀」에 따르면, 容管經略使留後였던 嚴公素는 長慶 元年(821) 十二月에 容州刺史이자 容管經略使에 임명되었다(『舊唐書』卷16: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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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람을 보내, 그 상주문을 훔치게 하니, [두]주사가 분이 나서 죽었다. [엄]공소[이]원종이 제멋대로 나양현(羅陽縣) 주 002
각주 002)
羅陽縣: 南齊代에 博羅縣을 쪼개서 설치하였으며, 南海郡에 속하였다. 治所는 오늘날의 廣東省 博羅縣 西北部에 두었다. 南朝 梁·陳代 사이에 廢했다. 唐初에 다시 두어, 循州에 속하게 하였다.『新唐書』卷43上 「地理」7上〈嶺南道〉에 따르면, 貞觀 1年(627)에 폐지하여 博羅縣에 편입시켰다고 한다(『新唐書』卷43上: 1097). 본문에서 縣이라고 하였지만, 당시에 현이 설치되어 있었다기보다는, 옛 나양현 땅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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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도(黃少度)에게 돌려주었다고 탄핵하자, 원종이 두려워서 병사 1백을 거느린 채 인장을 가지고 [황]소도에게 의탁하였다.주 003
각주 003)
『新唐書』卷8 「穆宗本紀」에서는 長慶 2年(822) 五月 壬寅에 邕州刺史 李元宗이 이반하여 黃洞蠻에게로 달아났다고 적었다(『新唐書』卷8: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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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穆宗)이 감찰어사 경료(敬僚)를 보내 살피게 하였다. 경료는 일찍이 용주의 종사(從事)를 지냈기 때문에 공소와 친하였다. 원종의 죄를 끝까지 추궁하였는데, 어미가 늙었다는 이유로 환주(驩州)에 유배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르지 못하다고 여겼다.

  • 각주 001)
    『舊唐書』卷16 「穆宗本紀」에 따르면, 容管經略使留後였던 嚴公素는 長慶 元年(821) 十二月에 容州刺史이자 容管經略使에 임명되었다(『舊唐書』卷16: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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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羅陽縣: 南齊代에 博羅縣을 쪼개서 설치하였으며, 南海郡에 속하였다. 治所는 오늘날의 廣東省 博羅縣 西北部에 두었다. 南朝 梁·陳代 사이에 廢했다. 唐初에 다시 두어, 循州에 속하게 하였다.『新唐書』卷43上 「地理」7上〈嶺南道〉에 따르면, 貞觀 1年(627)에 폐지하여 博羅縣에 편입시켰다고 한다(『新唐書』卷43上: 1097). 본문에서 縣이라고 하였지만, 당시에 현이 설치되어 있었다기보다는, 옛 나양현 땅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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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新唐書』卷8 「穆宗本紀」에서는 長慶 2年(822) 五月 壬寅에 邕州刺史 李元宗이 이반하여 黃洞蠻에게로 달아났다고 적었다(『新唐書』卷8: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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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두주사(杜周士), 이원종(李元宗), 주사(周士), 엄공소(嚴公素), [두]주사, [엄]공소, [이]원종, 황소도(黃少度), 원종, [황]소도, 목종(穆宗), 경료(敬僚), 경료, 공소, 원종
지명
옹관(邕管), 안남(安南), 옹주(邕州), 나양현(羅陽縣), 용주, 환주(驩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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邕管의 폐지 자료번호 : jo.k_0017_0222_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