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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新唐書 卷222上·中·下 열전 第147上·中·下 남만

중국정사외국전

樂部

무릇 악(樂)이 30종이고, 악공(樂工)이 196인이다. 4부(部)로 나누는데, 첫째가 구자부(龜玆部)주 001
각주 001)
龜玆部: 前秦 建元 18年(382)에 苻堅의 大將 呂光이 龜茲國을 멸망시키고, 龜茲樂을 가지고 涼州로 귀환하였다. 呂光이 죽은 뒤에 龜茲樂은 分散되었다. 北魏가 中原을 평정하고, 다시 龜茲樂을 획득하였다. 隋代에 이르러서는,『西國龜茲』,『齊朝龜茲』,『土龜茲』等의 三部가 있었다. 隋 文帝 때인 581年에 영을 내려『七部樂』을 두었는데,『國伎』,『淸商伎』,『高麗伎』,『天竺伎』,『安國伎』,『龜茲伎』,『文康伎』가 그것이다. 開皇 연간에 龜茲樂이 朝野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當時 著名한 樂師로는 曹妙達, 王長通, 李士衡, 郭金樂, 安進貴 등이 있었는데, 龜茲의 弦樂과 管樂에 정통하였으며, 새로운 소리와 변성에도 능하였다. 隋 大業 연간에 煬帝가『九部樂』을 정하였는데,『淸樂』,『西涼』,『龜茲』,『天竺』,『康國』,『疏勒』,『安國』,『高麗』,『禮畢』등이 그것이다.『隋書』「音樂志」에서는 龜茲樂에는 7聲이 있다고 했는데, 宮聲 南呂聲 角聲 變征聲 征聲 羽聲 變宮聲이 그것이다. 龜茲의 음악과 춤은 唐代에도 영향력이 있었다. 귀자국은 丘茲, 鳩茲, 屈支, 歸茲 等으로도 불린다. 漢 西域 36國의 하나로, 西域都護府에 속했었다. 都城은 延城(新疆 癢車縣 東郊 皮朗舊城)이었다. 後漢 延光 2年(123)에는 西域長史府에 속하였다. 魏晉 시기에는 지금의 沙雅縣 北쪽 30km 羊達克沁廢城으로 천도하였다. 唐代에는 옛 도성으로 옮겼고, 이름을 伊羅盧城으로 바꾸었으며, 龜茲都督府의 치소가 되었다. 나중에 安西都護府의 치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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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둘째가 대고부(大鼓部), 셋째가 호부(胡部), 넷째가 군악부(軍樂部)이다. 구자부에는 갈고(羯鼓) 개고(揩鼓) 요고(腰鼓) 계루고(鷄婁鼓) 단적(短笛) 대소필률(大小觱篥) 박판(拍板)이 모두 여덟 개씩 있고, 또 장단소(長短簫) 횡적(橫笛) 방향(方響)주 002
각주 002)
方響: 磬類의 옛 타악기. 16매의 크기는 같으나 두께가 다른 장방형의 철편으로 조성되었으며, 두 줄로 나누어 시렁 위(架上)에 걸었다. 작은 쇠망치로 쳐서 연주하며, 음의 청탁이 다르다. 南朝 梁代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隋唐代 연회 중에 상용되던 악기이다. 樂聲에 따르면, 옛날에는 동경이라 칭하였으며, 철판금이라는 호칭도 있었다 한다. 명청대 이래 옛 제도를 이어 사용하였으며, 궁정의 아악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악성은『舊唐書』「音樂志」의 다음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梁代에 銅磬이 있었는데, 대체로 오늘날 方響의 종류이다. 방향은 철로 만드는데, 세로 8촌 가로 2촌에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지게 제작한다. 시렁(架)은 경과 같으나 業(악기 시렁 횡목 위의 큰 판)은 설치하지 않는다.”(樂聲, 2005: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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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발(大同鈸) 패(貝)가 모두 네 개씩 있다. 악공은 모두 88인인데, 네 열로 나눈다. 각각 무대[舞筳]주 003
각주 003)
舞筳: 춤을 출 때 땅에 펴는 자리 혹은 털로 짠 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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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네 귀퉁이에 속(屬)하여, 장단을 맞추어 연주하게 한다. 대고부(大鼓部)는 네 개의 북으로 1열을 만드는데, 모두 24인이다. 구자부의 앞에 배치한다. 호부(胡部)에는 쟁(箏) 대소공후(大小箜篌) 오현비파(五絃琵琶) 생(笙) 횡적(橫笛) 박판(拍板)이 모두 여덟 개씩 있고, 대소필률(大小觱篥)이 모두 네 개씩 있다. 악공은 72인인데, 네 열로 나누어 무대의 귀퉁이에 속하게 하고, 노래를 이끌게 한다. 군악부(軍樂部)에는 금뇨(金鐃)와 금탁(金鐸)이 모두 두 개씩이고, 강고(掆鼓)와 금정(金鉦)이 모두 네 개씩이다. 징과 북은 금으로 장식한 덮개를 씌우고, 가장자리에는 오색실로 만든 술을 단다. 악공 12인은 남조(南詔)의 복장을 하고, ‘벽사문무(闢四門舞)’의 무대(舞筳) 네 귀퉁이에 서서, 장단을 맞추어 절하는 동작이 음악에 잘 어우러지게 한다. 또 16인은 무늬가 있는 반소매 옷을 입는데, 강고(掆鼓)를 잡고 네 사람씩 열을 짓는다. 춤꾼들은 남조(南詔)의 옷을 입는데, 진홍색 치마저고리에 흑두낭(黑頭囊) 금요대 그리고 무늬가 있는 가죽신을 착용한다. 머리 장식은 이마에 넓은 띠를 두르고, 금과 보석 꽃으로 장식한 머리장식[金寶花鬘]을 쓴다. 저고리 위에 다시 무늬가 있는 반소매 옷을 걸친다. 꼬리가 긴 꿩의 깃을 잡고 춤을 추다가 부복(俯伏)하는 것은 입조하여 배알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요, 치마저고리에 조수(鳥獸)와 초목(草木)을, 그리고 여덟 가지 비단으로 잡스런 꽃무늬를 낸 것은 만물이 함께 따르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우보당(羽葆幢)을 사방으로 늘어뜨리는 것은 하늘이 덮지 않는 것이 없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방위를 바르게 하여 늘어서 자리하는 것은 땅이 이고 있지 않은 것이 없음을 본뜬 것이다. 4열로 나누어 서는 것은 사기(四氣)를 본뜬 것이요, 춤을 다섯 자(字)로 한 것은 오행을 본뜬 것이다. 춤출 때 꿩 깃을 잡는 것은 문덕(文德)을 본 뜬 것이요, 절고(節鼓)는 호령(號令)이 멀리 퍼지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탁(鐸)을 흔들어 울리는 것은 시를 채집하는 뜻을 밝히는 것이요, 구자(龜玆) 등의 악(樂)을 쓰는 것은 원이(遠夷)가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을 본뜬 것이다. 징과 북은 옛날에 군대를 떨쳐 일으키고 전승(戰勝)을 임금에게 보고할 때 쓰던 악(樂)이다. 황종(黃鐘)은 임금의 소리이고, 오행(五行)이 운행하는 것에 견준다면 토(土)가 되니, 토덕이 늘 성(盛)함을 밝히는 것이다. 황종이 ‘건(乾)’괘의 초구(初九) 효(爻)를 얻으면, 스스로 그 궁음(宮音)이 되니, 임종(林鐘) 4율(律)이 정성(正聲)주 004
각주 004)
正聲: 음률에 맞는 바른 성음. 음탕하지 않은 바른 음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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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써 공명한다. 대군(大君)이 남면(南面)하여 위에서 천통(天統)주 005
각주 005)
天統: 天道의 紀綱. 임금의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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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바로잡아 건도(乾道)가 밝은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임종(林鐘)이 ‘곤(坤)’괘의 초육(初六) 효를 얻으면, 그 방위가 서남(西南)이니, 서남이 아래에서 크게 감화(感化)하여 땅[坤]의 도리에 따르는 것이다. 태주(太蔟)가 ‘건(乾)’괘의 구이(九二) 효를 얻으면, 이것은 인통(人統)이 되니, 천지(天地)가 바르게 되어 삼재(三才)가 통(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서 태주(太蔟)로서 응하게 한 것이다. 삼재가 이미 통하고 나면, 남려(南呂)가 다시 우성(羽聲)으로써 응한다. 남려는 바로 [간지(干支)의] 유(酉)이고, [오행의] 서방(西方)과 금(金)에 해당한다. 우(羽)는 북방이고 수(水)이다. 금과 수가 흔연히 때에 호응하는 것이니, [남려가 우성으로써 응하는 것은] 서융(西戎)과 북적(北狄)이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한 연후에는 고세(姑洗)율의 각음(角音)으로써 끝을 맺는다. 고(姑)는 고(故)이며, 세(洗)는 탁(濯)이다. 이것은 남조(南詔)토번(吐蕃)에게 등을 돌리고 귀화(歸化)하여,주 006
각주 006)
南詔王 異牟尋과 劍南西川節度使 韋皋의 공작에 의해 이루어졌다. 794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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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씻고 일신(日新)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 각주 001)
    龜玆部: 前秦 建元 18年(382)에 苻堅의 大將 呂光이 龜茲國을 멸망시키고, 龜茲樂을 가지고 涼州로 귀환하였다. 呂光이 죽은 뒤에 龜茲樂은 分散되었다. 北魏가 中原을 평정하고, 다시 龜茲樂을 획득하였다. 隋代에 이르러서는,『西國龜茲』,『齊朝龜茲』,『土龜茲』等의 三部가 있었다. 隋 文帝 때인 581年에 영을 내려『七部樂』을 두었는데,『國伎』,『淸商伎』,『高麗伎』,『天竺伎』,『安國伎』,『龜茲伎』,『文康伎』가 그것이다. 開皇 연간에 龜茲樂이 朝野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當時 著名한 樂師로는 曹妙達, 王長通, 李士衡, 郭金樂, 安進貴 등이 있었는데, 龜茲의 弦樂과 管樂에 정통하였으며, 새로운 소리와 변성에도 능하였다. 隋 大業 연간에 煬帝가『九部樂』을 정하였는데,『淸樂』,『西涼』,『龜茲』,『天竺』,『康國』,『疏勒』,『安國』,『高麗』,『禮畢』등이 그것이다.『隋書』「音樂志」에서는 龜茲樂에는 7聲이 있다고 했는데, 宮聲 南呂聲 角聲 變征聲 征聲 羽聲 變宮聲이 그것이다. 龜茲의 음악과 춤은 唐代에도 영향력이 있었다. 귀자국은 丘茲, 鳩茲, 屈支, 歸茲 等으로도 불린다. 漢 西域 36國의 하나로, 西域都護府에 속했었다. 都城은 延城(新疆 癢車縣 東郊 皮朗舊城)이었다. 後漢 延光 2年(123)에는 西域長史府에 속하였다. 魏晉 시기에는 지금의 沙雅縣 北쪽 30km 羊達克沁廢城으로 천도하였다. 唐代에는 옛 도성으로 옮겼고, 이름을 伊羅盧城으로 바꾸었으며, 龜茲都督府의 치소가 되었다. 나중에 安西都護府의 치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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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方響: 磬類의 옛 타악기. 16매의 크기는 같으나 두께가 다른 장방형의 철편으로 조성되었으며, 두 줄로 나누어 시렁 위(架上)에 걸었다. 작은 쇠망치로 쳐서 연주하며, 음의 청탁이 다르다. 南朝 梁代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隋唐代 연회 중에 상용되던 악기이다. 樂聲에 따르면, 옛날에는 동경이라 칭하였으며, 철판금이라는 호칭도 있었다 한다. 명청대 이래 옛 제도를 이어 사용하였으며, 궁정의 아악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악성은『舊唐書』「音樂志」의 다음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梁代에 銅磬이 있었는데, 대체로 오늘날 方響의 종류이다. 방향은 철로 만드는데, 세로 8촌 가로 2촌에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지게 제작한다. 시렁(架)은 경과 같으나 業(악기 시렁 횡목 위의 큰 판)은 설치하지 않는다.”(樂聲, 2005: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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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舞筳: 춤을 출 때 땅에 펴는 자리 혹은 털로 짠 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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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正聲: 음률에 맞는 바른 성음. 음탕하지 않은 바른 음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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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天統: 天道의 紀綱. 임금의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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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南詔王 異牟尋과 劍南西川節度使 韋皋의 공작에 의해 이루어졌다. 794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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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지명
남조(南詔), 남조(南詔), 토번(吐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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