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臘의 지리적 위치와 습속
진랍(眞臘)은 한편으로는 길멸(吉蔑)주 001이라고도 하는데, 본디 부남(扶南)의 속국이었다.주 002경사(京師)로부터 2만 7백 리 떨어져 있다. 동쪽은 차거(車渠)와 조금 떨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표(驃)
주 003
각주 003)
와 이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바다에 면해 있다. 북쪽으로는 도명(道明)과 붙어 있고,주 004동북으로는 환주(驩州)에 닥쳐 있다. 그 왕 찰리이금나(刹利伊金那)는 정관(貞觀) 초에 부남을 병합하여 그 땅을 점유하였다.주 005[건물의] 출입구는 모두 동쪽을 향해 내고, 앉는 자리는 동쪽을 상석(上席)으로 여긴다. 손님이 오면, 가루로 만든 빈랑과(檳榔果)와 용뇌(龍腦)주 006향합(香蛤)주 007을 내어놓는다. 술은 마시지 않는데, 술 마시는 것을 음란하게 여긴다. [술을 마셔도] 처(妻)와 방안에서 마시며, 존속(尊屬)과는 [술자리를] 피한다. 전투용 코끼리가 5천 마리 있는데, [그 중] 뛰어난 놈은 고기를 먹여 기른다.주 008
참반(參半) 및 표국(驃國)과는 대대로 수호(修好)를 맺어 왔으나, 환왕(環王)의 건타원(乾陀洹)
주 009과는 여러 차례 서로 공격하였다. [당 고조] 무덕(武德) 연간(618~626)부터 [측천무후] 성력(聖曆) 연간(698~700)에 이르기까지 모두 네 차례 내조하였다. [당 중종] 신룡(神龍) 연간(705~706) 이후로는 [남북] 두 반(半)으로 나뉘었는데, 북쪽은 산과 언덕이 많아 육진랍반(陸眞臘半)이라 불렀고, 남쪽은 바다로 이어져 못과 늪이 넉넉하므로 수진랍반(水眞臘半)이라고 불렀다.주 010수진랍(水眞臘)은 땅이 800리이고, 왕은 파라제발성(婆羅提拔城)에 거주하였다. 육진랍(陸眞臘)은 문단(文單)이라고도 하고 파루(婆鏤)라고도 하였는데, 땅은 700리이고, 왕의 칭호를 ‘차굴(笡屈)’이라 하였다. [현종] 개원(開元) 연간 및 천보(天寶) 연간(713~755)에 왕자(王子)가 자신에게 속한 사람 26명을 거느리고 내조하자, [당에서는] 과의도위(果毅都尉)주 011에 임명하였다. [대종(代宗)] 대력(大曆) 연간(766~779)에 부왕(副王) 파미(婆彌)와 그의 처가 내조하여 길들인 코끼리 열한 마리를 바치자, [당에서는] 파미를 시전중감(試殿中監)주 012으로 발탁하고 빈한(賓漢)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 때는 덕종(德宗)이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데, 진기한 새와 짐승을 모두 풀어주었다. 만이(蠻夷)가 바친 길들인 코끼리도 원중(苑中)에서 기르고 있었다. 원단(元旦) 조회 시에 조정에 두었던 것이 모두 32마리였는데, 모두 형산(荊山)
주 013의 남쪽 기슭에 놓아주었다. [헌종] 원화(元和) 연간에 이르러서는 수진랍(水眞臘) 또한 사자를 보내 입공하였다.주 014
驃: 驃國 혹은 驃族(Pyu)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표국에 관하여 본문 중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Pyu족은 티베트-버마(Tibeto-Burman) 계통이며, 버마인들에게 이라와디강 유역의 비옥한 평원 지대를 내주면서 사라져버린 민족이라고 한다. 버마인들과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버마인들과 마찬가지로 북쪽에서 천사해온 민족이었다. 정리하자면, 이라와디강 유역의 선주민은 몬족이었으며, 퓨족이 북쪽으로부터 도착하여 이들을 몰아내고, 뒤이어 버마인들이 다시 퓨의 지역을 차지한 것이다. 기원후 1~2세기경부터 이라와디강의 중상류 지역에 살기 시작하였으며, 7세기경 이라와디강 중류 프롬(Prome) 부근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다가(Vikmrama 왕조, 수도는 Sri Kshetra), 남쪽 몬족의 공격을 받아 북부로 밀려 올라갔다. 이들은 정교한 관개 시설을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고, 이라와디강의 뱃길을 따라 북으로는 운남, 남으로는 해안에 면한 몬족과 통하거나 서쪽으로 아라칸(Arakan)을 넘어 인도와의 교역도 발전시켰다고 한다. 성곽 내에 거주하며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던 ‘도시민’이었다(최병욱, 2006: 135~137).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驃: 驃國 혹은 驃族(Pyu)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표국에 관하여 본문 중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Pyu족은 티베트-버마(Tibeto-Burman) 계통이며, 버마인들에게 이라와디강 유역의 비옥한 평원 지대를 내주면서 사라져버린 민족이라고 한다. 버마인들과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버마인들과 마찬가지로 북쪽에서 천사해온 민족이었다. 정리하자면, 이라와디강 유역의 선주민은 몬족이었으며, 퓨족이 북쪽으로부터 도착하여 이들을 몰아내고, 뒤이어 버마인들이 다시 퓨의 지역을 차지한 것이다. 기원후 1~2세기경부터 이라와디강의 중상류 지역에 살기 시작하였으며, 7세기경 이라와디강 중류 프롬(Prome) 부근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다가(Vikmrama 왕조, 수도는 Sri Kshetra), 남쪽 몬족의 공격을 받아 북부로 밀려 올라갔다. 이들은 정교한 관개 시설을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고, 이라와디강의 뱃길을 따라 북으로는 운남, 남으로는 해안에 면한 몬족과 통하거나 서쪽으로 아라칸(Arakan)을 넘어 인도와의 교역도 발전시켰다고 한다. 성곽 내에 거주하며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던 ‘도시민’이었다(최병욱, 2006: 135~137).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 각주 011)
- 각주 012)
- 각주 013)
- 각주 014)
색인어
- 이름
- 찰리이금나(刹利伊金那), 건타원(乾陀洹), 당 고조, 측천무후, 당 중종, 현종, 대종(代宗), 파미(婆彌), 파미, 빈한(賓漢), 덕종(德宗), 헌종
- 지명
- 진랍(眞臘), 부남(扶南), 차거(車渠), 표(驃), 도명(道明), 환주(驩州), 부남, 참반(參半), 표국(驃國), 파라제발성(婆羅提拔城), 당, 당, 형산(荊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