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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합라봉의 즉위와 당의 남조와의 경계 평정

  • 국가
    남조(南詔)
[천보] 7년(748), 귀의가 죽고, 합라봉이 즉위하여 왕의 작위를 이어받고, 그 아들 봉가이를 양과주자사(陽瓜州刺史)로 삼았다.주 001
각주 001)
陽瓜州刺史 鳳迦異: 鳳迦異가 唐 조정과 관계된 기록으로는 본문에서 말한 天寶 7載 陽瓜州刺史로의 임명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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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안녕성(安寧城) 주 002
각주 002)
安寧城: 지금의 雲南 安寧市에 있었던 것으로, 南詔시 설치되어 拓東節度에 예속되어 있었다. 大理시에는 善闡府에 속하였다가 元代 安寧州로 개편되었다. 지금의 雲南 洱源縣의 북쪽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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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다섯 개의 염정(鹽井)이 있어서, 사람들이 소금을 구워 팔아 자급하고 있었다. 현종이 조를 내려 특진 하리광(何履光) 주 003
각주 003)
何履光: 唐代 珠崖郡 출신으로 玄宗과 肅宗시에 都督, 特進, 左武衛大將軍, 嶺南節度使 등을 지냈다. 玄宗 天寶年間에 十道兵을 이끌고 南詔를 평정하였는데, 당시 海南島 출신으로 고위 관직을 거쳐 사서에 입전된 유일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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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남조와의 경계 지역을 평정하게 하였다. [하리광은] 안녕성 및 염정을 취하고 다시 마원(馬援)의 동주(銅柱)를 세우고 돌아왔다.주 004
각주 004)
馬援의 銅柱: 馬援은 後漢초의 명장으로, 수차에 걸쳐 南蠻 交趾지역을 정벌하여 승리함으로써 이 지역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정벌시 邊界에 銅柱를 세웠는데, 이는 훗날 남방의 경계로서 상징되었다.『水經注』卷36 ‘溫水’조에서 인용된 작자미상의『林邑記』에 따르면 ‘建武 19년(43, 후한 광무제) 馬援이 상림현의 남쪽 경계에 두 개의 동주를 세워 西屠國과 한의 남쪽 강역을 구분하였다(馬援樹兩銅柱于象林南界, 與西屠國分漢之南疆也)’고 했고 또 同書 同條에서 인용된 兪益期의 ‘牋文’에서는 ‘馬文淵(마원) 임읍의 江岸 북쪽에 동주 두 개를 세웠다(馬文淵立銅柱于林邑岸北)’고 하였고『後漢書』卷24 「馬援傳」에 대한 唐 章懷太子의 주석에서 인용된 작자미상의『廣州記』에서는 ‘마원이 교지에 도착하여 동주를 세우고 한의 한계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也)’고 하였으니 동주는 마원이 한의 강역을 표시하기 위해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에 세운 기념물임을 알 수 있다. 즉 何履光이 마원의 故事를 본받아 동주와 유사한 기념물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런데『後漢書』「本紀」나 「馬援傳」의 본문에서는 정작 마원이 동주를 세웠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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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陽瓜州刺史 鳳迦異: 鳳迦異가 唐 조정과 관계된 기록으로는 본문에서 말한 天寶 7載 陽瓜州刺史로의 임명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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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安寧城: 지금의 雲南 安寧市에 있었던 것으로, 南詔시 설치되어 拓東節度에 예속되어 있었다. 大理시에는 善闡府에 속하였다가 元代 安寧州로 개편되었다. 지금의 雲南 洱源縣의 북쪽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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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何履光: 唐代 珠崖郡 출신으로 玄宗과 肅宗시에 都督, 特進, 左武衛大將軍, 嶺南節度使 등을 지냈다. 玄宗 天寶年間에 十道兵을 이끌고 南詔를 평정하였는데, 당시 海南島 출신으로 고위 관직을 거쳐 사서에 입전된 유일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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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馬援의 銅柱: 馬援은 後漢초의 명장으로, 수차에 걸쳐 南蠻 交趾지역을 정벌하여 승리함으로써 이 지역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정벌시 邊界에 銅柱를 세웠는데, 이는 훗날 남방의 경계로서 상징되었다.『水經注』卷36 ‘溫水’조에서 인용된 작자미상의『林邑記』에 따르면 ‘建武 19년(43, 후한 광무제) 馬援이 상림현의 남쪽 경계에 두 개의 동주를 세워 西屠國과 한의 남쪽 강역을 구분하였다(馬援樹兩銅柱于象林南界, 與西屠國分漢之南疆也)’고 했고 또 同書 同條에서 인용된 兪益期의 ‘牋文’에서는 ‘馬文淵(마원) 임읍의 江岸 북쪽에 동주 두 개를 세웠다(馬文淵立銅柱于林邑岸北)’고 하였고『後漢書』卷24 「馬援傳」에 대한 唐 章懷太子의 주석에서 인용된 작자미상의『廣州記』에서는 ‘마원이 교지에 도착하여 동주를 세우고 한의 한계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也)’고 하였으니 동주는 마원이 한의 강역을 표시하기 위해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에 세운 기념물임을 알 수 있다. 즉 何履光이 마원의 故事를 본받아 동주와 유사한 기념물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런데『後漢書』「本紀」나 「馬援傳」의 본문에서는 정작 마원이 동주를 세웠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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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귀의, 합라봉, 봉가이, 현종, 하리광(何履光), 하리광, 마원(馬援)
지명
안녕성(安寧城), 남조, 안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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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라봉의 즉위와 당의 남조와의 경계 평정 자료번호 : jo.k_0017_0222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