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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축국(中天竺國)의 특성

 
  • 국가중천축국(中天竺國)
중천축국(中天竺國)대월지(大月支)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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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支: 곧 月氏. 옛 종족명이다. 일찍이 西域에 月氏國을 세웠다. 이 종족의 선조들은 본디 敦煌과 祁連 사이에서 유목하였다. 漢文帝 前元 3년(전177)에서 4년(전176)에 이르는 시기 匈奴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Sacae(Sakas) 족의 故地인 오늘날의 신강성 서부 이리하 유역 및 그 이서 지역 일대로 이주하였다. 서쪽으로 옮아간 월지를 大月氏라 칭하였다. 그리고 소수가 서쪽으로 천사하지 않고 지금의 祁連山으로 들어가서 羌人들과 雜居하였는데, 이들을 小月氏라 칭하였다. 대월지는 다시 오손의 공격을 받아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랴Amu-Dar’ya 강 유역으로 옮겨 정주하였다. 한무제 시기 장건이 방문하였던 월지는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월지였다.

의 동남 수천 리에 있으며, 땅은 사방 삼만 리이고, 일명 신독(身毒)이라고도 한다. 한대(漢代)에 장건(張騫)대하(大夏)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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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夏: 그리스인들이 중앙아시아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지역에 세운 Bactria.

에 사자로 갔다가, 공죽장(卭竹杖)과 촉포(蜀布)를 보았는데, 국인(國人)이 이르기를 신독에서 샀다고 하였다. 신독은 곧 천축이며, 대개 전하여 번역하는 데 음자가 다른 것이지 그 실체는 하나이다. 월지(月支)고부(高附)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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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附: 『後漢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대월지의 서남쪽에 있으며 역시 대국이다. 그 풍속은 天竺과 비슷하지만, 미약하고 복속시키기 쉽다. 장사하는 데에 능하며 내적으로는 재화가 풍부하다. 복속하는 것이 무상하여 천축과 罽賓과 安息 세 나라가 누구든지 강하면 그것을 취하고 약해지면 잃었다. 그러나 아직 월지에 복속한 적은 없다. 『漢書』는 五翎侯의 하나로 고부를 헤아렸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후일 안식에 복속하였는데, 월지가 안식을 격파하자 처음으로 고부를 획득하였다.”(『後漢書 外國傳 譯註』 上 「西域傳」, 2009 : 255). 高附(kâu-b’iu)’는 Kabul을 音寫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로부터 서쪽, 남쪽으로 서해(西海)에 이르기까지, 동쪽으로 반월(槃越)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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槃越: 『後漢書』에서는 ‘磐起國’이라 적었다. 베트남이나 미얀마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後漢書』卷88 「西域傳」 〈高附〉: 2921).

에 이르기까지, 늘어선 국(國)이 수십인데, 국마다 왕을 두고 그 이름은 비록 달라도, 모두 신독이다. 대에는 월지(月支)에 기속(羈屬)하였으며, 그 풍속은 땅에 정착하여 사는 것이 월지와 같고, 비습하여 덥고 뜨거우며, 민은 유약하여 전쟁을 두려워하여 월지보다 약하다. 국은 큰 강에 접하여 있는데, 강의 이름은 신도(新陶)이다. 그 근원은 곤륜(崐崘)에서 나며, 나뉘어 다섯 갈래의 강이 되는데, 총칭하여 항수(恒水)라고 한다. 그 물은 달고 맛이 좋다. 물 아래에서는 진염(眞鹽)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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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鹽: 池鹽과 같다. 염수호에서 채취한 염을 지칭한다.

이 나는데, 순백의 빛깔을 띄는 것이 수정(水精) 같다. 토산품으로 무소[犀], 코끼리[象], 담비[貂], 다람쥐[鼲], 바다거북[瑇瑁], 화제(火齊), 금(金), 은(銀), 철(鐵), 금색실로 짜서 만든 금루직성 가사[金縷織成], 금피계(金皮罽), 세마백첩(細摩白疊), 좋은 갖옷[好裘], 모직물[毾㲪]이 난다. 화제(火齊)는 모양이 운모(雲母)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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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母: [mica]. 화강암 중의 중요한 조암광물로서, 층상 규산염광물이다. 굳기는 2.5∼4, 비중은 2.75∼3.2, 황색, 갈색, 녹색을 띤다. 성분과 성질에 따라 백운모, 소다운모, 흑운모, 금운모, 홍운모, 진발다이트 등이 있는데, 각 운모의 종류에 따라 용도도 다르다. 돌비늘이라고도 한다. 층상구조를 가지며, 보통은 육각 판상의 결정형을 이룬다. 또한 鱗狀과 섬유상 그리고 柱狀을 이루는데, 어느 형태나 밑면에 완전한 쪼개짐이 있어서 아주 엷게 벗겨진다. 광물 중에서 가장 쪼개짐이 완전하며, 쪼개진 조각은 탄력이 강하다.

와 같고, 자금(紫金)과 같은 빛깔을 내며 광택이 난다. 그것을 쪼개면 얇기가 매미날개 같다. 포개어 놓으면, 엷고 가는 견직물이나 곡식을 여러 겹 모아둔 것처럼 보인다. 그 서쪽은 바다에서 대진(大秦) 및 안식(安息)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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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息: Arsacid. 朝代名. Parthia라고도 하는데, 이는 國家名이다. 이란 고원의 古代國家로 中國 史籍에서는 “安息”, “安息國”이라 칭한다. 224년 아르다시르1세(Ardashir I)의 사산조 페르시아왕국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 강역은 최대시에 북으로는 아랄해에 이르고, 남으로는 페르시아만, 동쪽으로는 大夏와 古印度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유프라테스(Euphrates)강에 이르러, 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 전 영역과 터키,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쟌,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아프간의 일부에 상당한다. 국가로 존재하였던 기간은 대체로 기원전 248년에서 기원후 224년 사이이다. 수도는 희랍어로 Hecatompylos라고 불렸고, 『漢書』에서는 ‘番兜’, 『後漢書』에서는 ‘和櫝’이라 칭하였다.

등과 교역하여, 대진의 진기한 물건이 많은데, 산호(珊瑚) 호박(琥珀) 금 옥벽 주기(珠璣) 낭간(琅玕)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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琅玕: 美玉의 일종.

울금(鬱金) 소합(蘇合)과 같은 것이다. 소합은 여러 향의 즙을 달여 만든 것으로 천연산물이 아니다.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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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설명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록나무과의 소합향나무(Liquidambar orientalis Miller)의 수지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으며 일본에서는 공정생약으로 수재되지 않았다. 소합향은 옛날 蘇合國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며 인도 서적에서는 咄魯瑟劍이라고 한다.

또 말하기를, 대진 사람들이 소합을 채취하여, 먼저 그 즙을 짜서 향고를 만든 다음에, 그 찌꺼기를 여러 나라 상인들에게 팔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 중국에 이르면, 그 향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 한다. 울금은 계빈국(罽賓國) [주100]
각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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罽賓國: Kapisa. 고대 중앙아시아의 국가 혹은 지역명. 옛 희랍인들은 카불(Kabul)강을 코벤(Kophen)이라 불렀는데, 罽賓은 그것의 음역이다. 중국에서 한대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罽賓은 언제나 카피사Kapisa 州에서 카불강 중하류 유역에 이르는 평원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언제부터인가는 카쉬미르 서부를 포함하였다. 기원전 4세기 계빈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 뒤 박트리아의 그리스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 사카족Saka의 일종이 힌두쿠시 산을 넘어 카불 강 유역을 점령하였는데, 그리스인을 대신하여 이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고, 修鮮城(或은 循鮮, 지금의 스리나쟈 부근)에 도읍하였으니, 곧 옛 迦畢試(Kapisa)城이다. 본디 알렉산더 대왕이 건축하여, 코카서스Caucasus의 알렉산더성이라 칭하였다. 이것이 곧 漢代의 罽賓이다. 이 나라는 農業이 발달하였고, 쌀이 많이 생산되었다. 도시 생활을 하였고, 상업과 수공업 또한 모두 번영하였다. 中國과 罽賓과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漢武帝 시기였다. 기원전 115년에 張騫이 烏孫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副使를 罽賓에 이르게 하였다. 당시 罽賓은 비단길 남로의 한 줄기 중요 지선상에 있었다. 계빈의 상인들은 늘 중국을 왕래하였다. 1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罽賓은 쿠샨왕조(Kushan Dynasty)에 정복되어 불교중심 국가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당시 계빈의 승려들이 중국에 가서 전교하는 경우가 많았고, 중국의 승려들 또한 계빈에 가서 불교 유적에 참배하거나 불경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약 4세기 중엽 사카Saka人(혹은 소구드인)으로 이름을 馨蘖라 하는 자가 카피사에서 다시 罽賓王朝를 세웠다. 이 왕조는 적어도 7세기 말까지 존속하였으며, 이것이 진대부터 당대까지의 罽賓이고, 迦畢試國으로 음역되는 나라이다. 中國의 唐 顯慶 3년(658)에 그 王 曷擷支가 당에 稱臣하였고, 唐은 그 땅에 修鮮都督府를 두었다. 약 8세기 초에 突厥의 首領 阿耶가 군대를 이끌고 罽賓王을 공격하여 죽이고 그 위를 빼앗았다. 이것이 곧 나중의 돌궐족 罽賓 王朝이며 곧 唐 玄宗 시기의 罽賓이다. 罽賓의 政治的 중심지는 간다라(犍陀羅, 지금의 Peshawar 一帶)로 옮겨졌다. 乾元 元年(758)까지 罽賓은 당에 사자를 보내 조공하였으나, 그 후에 끊겼다.

에서만 나는데, 꽃의 빛깔은 순노랑에 가늘며, 부용꽃 속에 연밥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국인(國人)들은 먼저 취한 것을 불사(佛寺)에 바치는데, 여러 날이 지나 향기가 다하면, 떨어 버린다. 상인들은 불사의 고용인들로부터 이를 수집하여, 다른 나라에 가져다 판다.

 

주 001
月支: 곧 月氏. 옛 종족명이다. 일찍이 西域에 月氏國을 세웠다. 이 종족의 선조들은 본디 敦煌과 祁連 사이에서 유목하였다. 漢文帝 前元 3년(전177)에서 4년(전176)에 이르는 시기 匈奴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Sacae(Sakas) 족의 故地인 오늘날의 신강성 서부 이리하 유역 및 그 이서 지역 일대로 이주하였다. 서쪽으로 옮아간 월지를 大月氏라 칭하였다. 그리고 소수가 서쪽으로 천사하지 않고 지금의 祁連山으로 들어가서 羌人들과 雜居하였는데, 이들을 小月氏라 칭하였다. 대월지는 다시 오손의 공격을 받아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랴Amu-Dar’ya 강 유역으로 옮겨 정주하였다. 한무제 시기 장건이 방문하였던 월지는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월지였다.
주 002
大夏: 그리스인들이 중앙아시아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지역에 세운 Bactria.
주 003
高附: 『後漢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대월지의 서남쪽에 있으며 역시 대국이다. 그 풍속은 天竺과 비슷하지만, 미약하고 복속시키기 쉽다. 장사하는 데에 능하며 내적으로는 재화가 풍부하다. 복속하는 것이 무상하여 천축과 罽賓과 安息 세 나라가 누구든지 강하면 그것을 취하고 약해지면 잃었다. 그러나 아직 월지에 복속한 적은 없다. 『漢書』는 五翎侯의 하나로 고부를 헤아렸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후일 안식에 복속하였는데, 월지가 안식을 격파하자 처음으로 고부를 획득하였다.”(『後漢書 外國傳 譯註』 上 「西域傳」, 2009 : 255). 高附(kâu-b’iu)’는 Kabul을 音寫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 004
槃越: 『後漢書』에서는 ‘磐起國’이라 적었다. 베트남이나 미얀마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後漢書』卷88 「西域傳」 〈高附〉: 2921).
주 005
眞鹽: 池鹽과 같다. 염수호에서 채취한 염을 지칭한다.
주 006
雲母: [mica]. 화강암 중의 중요한 조암광물로서, 층상 규산염광물이다. 굳기는 2.5∼4, 비중은 2.75∼3.2, 황색, 갈색, 녹색을 띤다. 성분과 성질에 따라 백운모, 소다운모, 흑운모, 금운모, 홍운모, 진발다이트 등이 있는데, 각 운모의 종류에 따라 용도도 다르다. 돌비늘이라고도 한다. 층상구조를 가지며, 보통은 육각 판상의 결정형을 이룬다. 또한 鱗狀과 섬유상 그리고 柱狀을 이루는데, 어느 형태나 밑면에 완전한 쪼개짐이 있어서 아주 엷게 벗겨진다. 광물 중에서 가장 쪼개짐이 완전하며, 쪼개진 조각은 탄력이 강하다.
주 007
安息: Arsacid. 朝代名. Parthia라고도 하는데, 이는 國家名이다. 이란 고원의 古代國家로 中國 史籍에서는 “安息”, “安息國”이라 칭한다. 224년 아르다시르1세(Ardashir I)의 사산조 페르시아왕국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 강역은 최대시에 북으로는 아랄해에 이르고, 남으로는 페르시아만, 동쪽으로는 大夏와 古印度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유프라테스(Euphrates)강에 이르러, 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 전 영역과 터키,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쟌,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아프간의 일부에 상당한다. 국가로 존재하였던 기간은 대체로 기원전 248년에서 기원후 224년 사이이다. 수도는 희랍어로 Hecatompylos라고 불렸고, 『漢書』에서는 ‘番兜’, 『後漢書』에서는 ‘和櫝’이라 칭하였다.
주 008
琅玕: 美玉의 일종.
주 009
다른 설명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록나무과의 소합향나무(Liquidambar orientalis Miller)의 수지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으며 일본에서는 공정생약으로 수재되지 않았다. 소합향은 옛날 蘇合國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며 인도 서적에서는 咄魯瑟劍이라고 한다.
주 100
罽賓國: Kapisa. 고대 중앙아시아의 국가 혹은 지역명. 옛 희랍인들은 카불(Kabul)강을 코벤(Kophen)이라 불렀는데, 罽賓은 그것의 음역이다. 중국에서 한대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罽賓은 언제나 카피사Kapisa 州에서 카불강 중하류 유역에 이르는 평원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언제부터인가는 카쉬미르 서부를 포함하였다. 기원전 4세기 계빈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 뒤 박트리아의 그리스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 사카족Saka의 일종이 힌두쿠시 산을 넘어 카불 강 유역을 점령하였는데, 그리스인을 대신하여 이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고, 修鮮城(或은 循鮮, 지금의 스리나쟈 부근)에 도읍하였으니, 곧 옛 迦畢試(Kapisa)城이다. 본디 알렉산더 대왕이 건축하여, 코카서스Caucasus의 알렉산더성이라 칭하였다. 이것이 곧 漢代의 罽賓이다. 이 나라는 農業이 발달하였고, 쌀이 많이 생산되었다. 도시 생활을 하였고, 상업과 수공업 또한 모두 번영하였다. 中國과 罽賓과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漢武帝 시기였다. 기원전 115년에 張騫이 烏孫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副使를 罽賓에 이르게 하였다. 당시 罽賓은 비단길 남로의 한 줄기 중요 지선상에 있었다. 계빈의 상인들은 늘 중국을 왕래하였다. 1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罽賓은 쿠샨왕조(Kushan Dynasty)에 정복되어 불교중심 국가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당시 계빈의 승려들이 중국에 가서 전교하는 경우가 많았고, 중국의 승려들 또한 계빈에 가서 불교 유적에 참배하거나 불경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약 4세기 중엽 사카Saka人(혹은 소구드인)으로 이름을 馨蘖라 하는 자가 카피사에서 다시 罽賓王朝를 세웠다. 이 왕조는 적어도 7세기 말까지 존속하였으며, 이것이 진대부터 당대까지의 罽賓이고, 迦畢試國으로 음역되는 나라이다. 中國의 唐 顯慶 3년(658)에 그 王 曷擷支가 당에 稱臣하였고, 唐은 그 땅에 修鮮都督府를 두었다. 약 8세기 초에 突厥의 首領 阿耶가 군대를 이끌고 罽賓王을 공격하여 죽이고 그 위를 빼앗았다. 이것이 곧 나중의 돌궐족 罽賓 王朝이며 곧 唐 玄宗 시기의 罽賓이다. 罽賓의 政治的 중심지는 간다라(犍陀羅, 지금의 Peshawar 一帶)로 옮겨졌다. 乾元 元年(758)까지 罽賓은 당에 사자를 보내 조공하였으나, 그 후에 끊겼다.
 
이름
장건(張騫)
지명
중천축국(中天竺國) , 대월지(大月支) , 신독(身毒) , 대하(大夏) , 신독 , 신독 , 천축 , 월지(月支) , 고부(高附) , 서해(西海) , 반월(槃越) , 신독 , , 월지(月支) , 월지 , 월지 , 신도(新陶) , 곤륜(崐崘) , 항수(恒水) , 중국 , 계빈국(罽賓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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