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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봉리(封離) 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영창(永昌) , 익주(益州) 등의 이들도 반란에 응하였으나 이후 양송(楊竦)이 격파하여 항복을 받아냄

  • 국가
    공도이(邛都夷)
안제(安帝) 원초(元初) 3년(116) 군 요외의 대양(大羊) 등 8종족 31,000호, 167,620구가 덕의(德義)를 숭모하여 내속하였다. 이때 군현에서 부(賦)의 징수가 번거롭고 잦았다. 5년(118) 권이(卷夷) 대우(大牛) 종족의 봉리(封離) 등이 반란을 일으켜 수구(遂久) 주 001
각주 001)
遂久: 越雟郡의 屬縣으로 唐代 靡州界에 위치하였다. 楊守敬은 현재 雲南省 中甸縣 즉 상그릴라경내 金沙江 북부라고 비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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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을 살해하였다. 이듬해 영창, 익주촉군의 이(夷)들이 모두 반란에 응하여 그 무리가 마침내 십여 만이 되어, 20여 현을 파괴하고 장리(長吏)를 죽이고 성읍을 불지르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니, 해골이 쌓여 천 리를 가도 인적이 없었다. 익주자사 장교(張喬) 주 002
각주 002)
張喬는 이후 安帝 元初 6년(119) 益州刺史로서 越雟夷를, 順帝 永和 3년(138)에는 交阯刺史로서 日南叛蠻을 토벌하였다(『後漢書』 권5, 「安帝紀」; 권6 「質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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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조를 내려 능히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토벌하도록 하였다. 장교는 종사(從事) 양송(楊竦)에게 군사를 이끌고 접유(楪楡)에까지 이르러 공격하도록 하였으나, 적이 강성하여 감히 진격하지 못하였다. 먼저 조서(詔書)를 세 군에 고시하면서 몰래 무사를 징발하였는데, 현상금을 크게 하였다. 이어 진군하여 봉리(封離) 등과 전투를 벌여 크게 격파하여, 3만여 급을 참수하고 생구(生口) 1,500명과 재물 4,000여 만 전을 획득하였는데, 모두 군사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봉리 등은 당황하여 함께 모의하였던 거수(渠帥)를 참수하여 양송에게 바치면서 항복을 청하니, 양송은 후하게 위로하면서 받아들였다. 그 나머지 36종족도 모두 와서 항복하였다. 양송은 이어서 주를 올려 장리로서 만이(蠻夷)를 간교하게 수탈하였던 90인을 모두 감사일등(減死一等)에 처하였다. 주(州)에서의 논공행상이 보고되기도 전에 양송은 병이 들어 갑자기 죽으니, 장교는 심히 애통하고 서운해 하여, 돌에 명문을 새기고 그 모습을 그렸다. 천자는 장흡이 유풍이 있다고 하여 그 아들 단(湍)을 태수로 임명하였다. 이인(夷人)들은 기뻐하여 길에 나와 맞이하면서, “그대의 외모는 우리의 부군(府君)을 닮았구려.”라고 하였다. 후에 은 인심을 상당히 잃어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가 있었는데, 여러 이(夷)의 장로들이 서로 깨우쳐 말하기를, “마땅히 전 태수와의 연고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여 결국 안정될 수 있었다. 후에 순제(順帝) 환제(桓帝) 연간에 광한풍호(馮顥)가 태수가 되었는데, 정치와 교화에 더욱 남다른 업적이 많았다고 일컬어졌다.

  • 각주 001)
    遂久: 越雟郡의 屬縣으로 唐代 靡州界에 위치하였다. 楊守敬은 현재 雲南省 中甸縣 즉 상그릴라경내 金沙江 북부라고 비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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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張喬는 이후 安帝 元初 6년(119) 益州刺史로서 越雟夷를, 順帝 永和 3년(138)에는 交阯刺史로서 日南叛蠻을 토벌하였다(『後漢書』 권5, 「安帝紀」; 권6 「質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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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안제(安帝), 봉리(封離), 장교(張喬), 장교, 양송(楊竦), 봉리(封離), 봉리, 양송, 양송, 양송, 양송, 장교, 장흡, 단(湍), , 순제(順帝), 환제(桓帝), 풍호(馮顥)
지명
수구(遂久), 영창, 익주, 촉군, 익주, 접유(楪楡), 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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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리(封離) 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영창(永昌) , 익주(益州) 등의 이들도 반란에 응하였으나 이후 양송(楊竦)이 격파하여 항복을 받아냄 자료번호 : jo.k_0003_0116_009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