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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소륵국(疏勒國)에 대한 소개

  • 국가
    소륵국(疏勒國)
소륵국(疏勒國).주 001
각주 001)
疏勒(siwo-lək) : ‘䟽勒’이라고도 표기되며 漢代부터 唐代까지 Kashghar[喀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宣帝 神爵 2년(전60) 처음으로 西域都護에 예속했고, 後漢 초기에는 莎車․于闐 등에 속했다가 후에 다시 자립했다. 慧超의 『往五天竺國傳』에서 처음으로 ‘카쉬가르’라는 음을 나타낸 伽師祗離라는 표기가 보인다. 그러나 慧超는 이 도시를 佉沙라고도 표기했다. 카쉬가르라는 도시가 ‘카쉬’(Kash)로도 불렸던 것은 한문 자료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魏略』의 竭石, 法顯 『佛國記』의 竭叉 등), 투르판에서 출토된 중세 이란어 문서와 소그드 문헌에도 그 같은 용례가 확인된다. 桑山正進은 다양한 언어 문헌에 Kash의 용례를 조사한 결과, Kash가 Kashghar의 축약형이 아니라 원래의 명칭이 Kash였고 거기에 ghar라는 요소가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여, 종래 Bailey의 가설에 찬동했다. 그러나 kash와 ghar라는 개별 요소의 의미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는 실정이다(桑山正進, 1992 : 18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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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읍은 소륵성(疏勒城)이고 장안에서 9,350리 떨어져 있다. 호수는 1,510, 인구는 18,647, 병사는 2,000명이다. 소륵후(疏勒侯)·격호후(擊胡侯)·보국후·도위·좌장·우장·좌기군·우기군·좌역장·우역장 각각 1명씩 있다. 동쪽으로 2,210리 가면 도호의 치소에 이르고, 남쪽으로 560리 가면 사차에 이른다. 시장이 있고, 서쪽으로 대월지·대완·강거로 가는 대도에 접해 있다.

  • 각주 001)
    疏勒(siwo-lək) : ‘䟽勒’이라고도 표기되며 漢代부터 唐代까지 Kashghar[喀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宣帝 神爵 2년(전60) 처음으로 西域都護에 예속했고, 後漢 초기에는 莎車․于闐 등에 속했다가 후에 다시 자립했다. 慧超의 『往五天竺國傳』에서 처음으로 ‘카쉬가르’라는 음을 나타낸 伽師祗離라는 표기가 보인다. 그러나 慧超는 이 도시를 佉沙라고도 표기했다. 카쉬가르라는 도시가 ‘카쉬’(Kash)로도 불렸던 것은 한문 자료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魏略』의 竭石, 法顯 『佛國記』의 竭叉 등), 투르판에서 출토된 중세 이란어 문서와 소그드 문헌에도 그 같은 용례가 확인된다. 桑山正進은 다양한 언어 문헌에 Kash의 용례를 조사한 결과, Kash가 Kashghar의 축약형이 아니라 원래의 명칭이 Kash였고 거기에 ghar라는 요소가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여, 종래 Bailey의 가설에 찬동했다. 그러나 kash와 ghar라는 개별 요소의 의미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는 실정이다(桑山正進, 1992 : 18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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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지명
소륵국(疏勒國), 소륵성(疏勒城), 장안, 사차, 대월지, 대완, 강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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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륵국(疏勒國)에 대한 소개 자료번호 : jo.k_0002_0096_029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