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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의 진량(陳良) 등이 흉노에 투항하자 왕망이 15명의 선우를 세우고자 하니 오주류선우가 분노함

  • 국가
    흉노(匈奴)
이 당시 무기교위(戊己校尉)주 001
각주 001)
戊己校尉 : 『漢書』 「百官公卿表」에는 “元帝 初元元年(전48) 설치되었고, [屬官으로] 乘․司馬가 각 1인, 候 5인이 있으며, 秩 比六百石이다”라고 하였다. 丞이 比六百石이니 戊己校尉의 秩祿은 比二千石이 될 것이다. 戊己校尉는 車師前國의 王庭인 高昌의 交河城에 주로 설치되었다. 車師國에 屯田한 것은 宣帝 地節 4년(전66)이 처음이다. 그 뒤 元康 2년(전64) 匈奴가 車師國을 공격하자 漢은 車師國 屯田을 포기하고 車師國 사람들을 渠犂로 옮겼으며 交河城 일대가 匈奴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곳에 다시 戊己校尉를 설치한 것이 「百官公卿表」에 나오는 元帝 初元 元年 때의 일이다. 戊己校尉의 前身은 屯田校尉이며 屯田을 ‘戊己’로 개명한 것은 ‘戊己’가 匈奴 멸망을 상징하는 ‘以土塡水’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呂太山, 2005 : 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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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史)주 002
각주 002)
戊己校尉府의 屬吏로 보인다. 秦漢시기에는 史라고 칭해지는 吏員이 많다. 公府에는 長史가 있고 郡府에는 卒史가 있다. 縣廷에는 令史․丞史․尉史 등이 있다. 여러 曹署에서는 正職이 掾이고 副職이 史였다. 이들 掾史 아래에 또다시 令史가 있고 그 밖에 小史가 있으며 그 지위가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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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량(陳良)종대(終帶) 주 003
각주 003)
陳良․終帶(?∼13) : 두 사람 모두 王莽시대 西域 戊己校尉의 史였다. 建國 2년(10) 이들은 戊己校尉 刀護를 살해하고, 吏士 2천여 명을 협박하여 匈奴에 투항하였다. 그 후 3년 뒤, 烏累單于가 繼位하여 다시 신과 和親을 맺었다. 이때 王莽은 이들을 京師로 압송하여 불에 태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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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승(司馬丞) 한현(韓玄)·우곡후(右曲候)주 004
각주 004)
“司馬丞․右曲候”는 모두 戊己校尉府 소속의 軍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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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任商) 등은 서역 [국가들]이 배반하는 일이 많음을 보고, 흉노가 크게 침략하고자 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죽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모의하여 이졸(吏卒) 수백 명을 협박하여 함께 무기교위 초호(刀護) 주 005
각주 005)
원문은 “刀”인데, 顔師古는 ‘초(貂)’로 발음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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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살해하고, 사람을 보내 흉노 남리한왕(南犂汗王)의 남장군(南將軍)에게 알렸다. 흉노 남장군은 2천의 기병을 서역에 보내 진량 등을 맞이하였다. 진량 등은 무기교위 [휘하의] 관리와 군사, 남녀 2천여 명을 모두 협박하여 흉노로 들어갔다. 한현임상은 남장군의 주둔지에 남았고, 진량종대는 선우정으로 갔다. [다른] 사람들은 별도로 영오수(零吾水) 주 006
각주 006)
“零吾水”는 현재 어느 곳을 말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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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두어 경작하며 살게 하였다. 선우는 진량종대를 오환도장군(烏桓都將軍)이라 부르면서, 선우의 거처에 머물게 하였고 자주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며 어울렸다.
서역도호 단흠은 상서하여 흉노 남장군 우이질자(右伊秩訾) 주 007
각주 007)
右伊秩訾 : 匈奴의 官名으로 右伊秩訾王이라고도 한다. 한의 上郡 以西 지역에 거주한다. 左伊秩訾와 그 지위가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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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무리를 이끌고 여러 나라를 약탈, 공격한다고 말하였다. 왕망은 이에 흉노를 크게 나누어 15명의 선우를 세우고자 하여, 중랑장 인포(藺苞)·부교위 대급(戴級)을 보내 군사 1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귀한 보물을 가득 실은 채 운중군의 변새 아래에 이르러, 호한야선우의 여러 아들을 유인하여 순서에 따라 [선우로] 임명하려 하였다. 통역관을 변새 바깥으로 보내 우리한왕 의 아들 등(登), 조(助) 등 3명을 꾀어내었으며, 도착하자 협박하여 효선우(孝單于)로 책봉하고 의자가 달린 수레와 고거(鼓車)주 008
각주 008)
鼓車 : 북을 단 儀仗車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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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대, 황금 1천 근, 여러 종류의 비단 1천 필, 기를 매단 창[戲戟] 10자루 등을 사여하였다. 순선우(順單于)로 책봉하고 황금 500근을 사여하였다. 장안으로 차례대로 보냈다. 왕망인포선위공(宣威公)으로 봉하고 호아장군(虎牙將軍)주 009
각주 009)
漢宣帝와 王莽 때 虎牙將軍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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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임명하였다. 대급양위공(揚威公)으로 봉하고 호분장군(虎賁將軍)주 010
각주 010)
虎賁將軍 : 虎賁이란 ‘猛虎처럼 달린다’는 말로 용맹함을 뜻한다. 虎賁校尉는 漢武帝 때 설치되었으나 虎賁將軍의 이름은 王莽시기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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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임명하였다.
[오주류]선우가 듣고 분노하여 말하였다. “선대의 선우가 한선제의 은혜를 입었으니 배반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천자는 선제의 자손이 아니니 어찌 [그의 손에서 선우로] 즉위할 수 있는가?”주 011
각주 011)
찬탈자 王莽에게 單于로 임명되는 것은 宣帝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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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골도후·우이질자왕 호로자(呼盧訾)와 좌현왕 낙(樂) 등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운중군의 익수새(益壽塞)주 012
각주 012)
益壽塞 : 현재 內蒙古 呼和浩特 혹은 包頭 부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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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침입하여 관리와 인민을 크게 학살하였다. 이해가 건국 3년(11)이다.

  • 각주 001)
    戊己校尉 : 『漢書』 「百官公卿表」에는 “元帝 初元元年(전48) 설치되었고, [屬官으로] 乘․司馬가 각 1인, 候 5인이 있으며, 秩 比六百石이다”라고 하였다. 丞이 比六百石이니 戊己校尉의 秩祿은 比二千石이 될 것이다. 戊己校尉는 車師前國의 王庭인 高昌의 交河城에 주로 설치되었다. 車師國에 屯田한 것은 宣帝 地節 4년(전66)이 처음이다. 그 뒤 元康 2년(전64) 匈奴가 車師國을 공격하자 漢은 車師國 屯田을 포기하고 車師國 사람들을 渠犂로 옮겼으며 交河城 일대가 匈奴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곳에 다시 戊己校尉를 설치한 것이 「百官公卿表」에 나오는 元帝 初元 元年 때의 일이다. 戊己校尉의 前身은 屯田校尉이며 屯田을 ‘戊己’로 개명한 것은 ‘戊己’가 匈奴 멸망을 상징하는 ‘以土塡水’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呂太山, 2005 : 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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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戊己校尉府의 屬吏로 보인다. 秦漢시기에는 史라고 칭해지는 吏員이 많다. 公府에는 長史가 있고 郡府에는 卒史가 있다. 縣廷에는 令史․丞史․尉史 등이 있다. 여러 曹署에서는 正職이 掾이고 副職이 史였다. 이들 掾史 아래에 또다시 令史가 있고 그 밖에 小史가 있으며 그 지위가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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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陳良․終帶(?∼13) : 두 사람 모두 王莽시대 西域 戊己校尉의 史였다. 建國 2년(10) 이들은 戊己校尉 刀護를 살해하고, 吏士 2천여 명을 협박하여 匈奴에 투항하였다. 그 후 3년 뒤, 烏累單于가 繼位하여 다시 신과 和親을 맺었다. 이때 王莽은 이들을 京師로 압송하여 불에 태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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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司馬丞․右曲候”는 모두 戊己校尉府 소속의 軍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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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원문은 “刀”인데, 顔師古는 ‘초(貂)’로 발음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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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零吾水”는 현재 어느 곳을 말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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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右伊秩訾 : 匈奴의 官名으로 右伊秩訾王이라고도 한다. 한의 上郡 以西 지역에 거주한다. 左伊秩訾와 그 지위가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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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鼓車 : 북을 단 儀仗車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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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漢宣帝와 王莽 때 虎牙將軍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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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虎賁將軍 : 虎賁이란 ‘猛虎처럼 달린다’는 말로 용맹함을 뜻한다. 虎賁校尉는 漢武帝 때 설치되었으나 虎賁將軍의 이름은 王莽시기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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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찬탈자 王莽에게 單于로 임명되는 것은 宣帝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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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益壽塞 : 현재 內蒙古 呼和浩特 혹은 包頭 부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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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진량(陳良), 종대(終帶), 한현(韓玄), 임상(任商), 초호(刀護), 진량, 진량, 한현, 임상, 진량, 종대, 진량, 종대, 단흠, 우이질자(右伊秩訾), 왕망, 인포(藺苞), 대급(戴級), 호한야선우, , , 등(登), 조(助), , 효선우(孝單于), , 순선우(順單于), , , 왕망, 인포, 선위공(宣威公), 대급, 양위공(揚威公), [오주류]선우, 선제, 호로자(呼盧訾), 낙(樂)
지명
영오수(零吾水), 운중군, 장안, 운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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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의 진량(陳良) 등이 흉노에 투항하자 왕망이 15명의 선우를 세우고자 하니 오주류선우가 분노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1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