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중국정사외국전

질지선우가 오걸(烏揭), 견곤(堅昆), 정령(丁令) 등 3국을 병합함

  • 국가
    흉노(匈奴)
처음 질지선우호한야에 항복하였고 군대가 약해 다시 스스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의 무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흉노의] 오른쪽 땅을 공격하여 평정하려 하였다. 한편 도기선우의 어린 동생은 본래 호한야를 모셨는데 그 또한 오른쪽 땅으로 도주하여 두 형주 001
각주 001)
“兩兄”은 屠耆單于와 呼韓邪單于를 말한다.
닫기
의 과거 병사 수천 명을 모아 이리목선우(伊利目單于)로 자립해 있었다. 길에서 질지와 만나 맞붙어 싸웠는데 질지는 그를 죽이고 그의 군사 5만여 명을 병합하였다.
[질지는] 이 군사와 곡식을 내어 호한야를 돕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흉노의] 오른쪽 땅에 머물러 살았다. 스스로 헤아리길 흉노 [전체]를 평정할 힘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더욱 서쪽으로 오손에게 가까이 가 더불어 힘을 합치길 원하여 사신을 보내 소곤미(小昆彌)주 002
각주 002)
小昆彌 : 서역 烏孫國의 국왕 호칭이다. “昆彌”는 본래 ‘昆莫’이라고 한다. 漢 宣帝 때에 大, 小의 구분이 생겼다. 모두 漢으로부터 印綬를 받아 각자의 영역을 다스렸다.
닫기
오취도(烏就屠)를 알현하게 하였다. 오취도는 호한야의 보호를 받고 질지는 쫓기는 오랑캐임을 보고, [질지를] 공격하여 의 비위를 맞추려 하였다. 이에 질지의 사신을 죽이고, 그 머리를 [의] 도호(都護) 주둔지에 보냈으며, 8천의 기병을 일으켜 질지를 맞이하였다. 질지는 오손의 군사가 많음을 보고, 자신이 보낸 사신도 돌아오지 않자, 군대를 정돈하여 오손[군]과 조우하였을 때 공격하여 부수었다. 내친 김에 북으로 오걸(烏揭)주 003
각주 003)
「陳湯傳」에 따르면 “烏揭”는 “呼偈”라고 되어 있다(『漢書』 권70 「陳湯傳」 : 3008). 呼揭에 대해서는 주888) 참조.
닫기
을 쳐서 오걸이 항복하였다. 그 [오걸의] 군대를 내어 서쪽으로 견곤(堅昆)주 004
각주 004)
堅昆 : 키르기즈 족을 말하는데 투르크계에 속한다. 匈奴의 북방에 있던 堅昆, 鬲昆은 키르기즈 족의 가장 오래된 명칭으로 추정된다. 남북조시대에는 結骨․契骨, 唐代에는 黠戞斯․紇扢斯라고도 기록되었다. 唐代 투르크 비문에 처음으로 그 이름(Qyrqyz)이 등장한다고 한다. 몽골의 북서쪽 예니세이 강 상류에 살았으며 주민은 주로 유럽계로 추정된다. 그 선사문화는 특히 발달된 금속기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늦어도 6세기 후반 무렵에는 돌궐이 등장하면서 문화적 체질적으로 투르크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당대에는 이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堅昆都護府가 설치된 일이 있으나 명목적인 것이었다.
닫기
을 부수었고 북쪽으로는 정령(丁令)주 005
각주 005)
丁令 :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에 걸쳐 북아시아에 유목했던 투르크계 종족이다. 한자로는 丁靈, 丁零, 勅勒 등으로도 표현되는데 모두 ‘투르크’의 음역으로 추정한다. 匈奴의 전성시대에는 바이칼호수의 남안에서 알타이산맥 지방에 걸쳐 거주하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았으나, 나중에는 흉노를 공격하여 흉노의 멸망을 재촉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高車라고도 불렸는데, 5세기 말 알타이산맥 서안에 高車國을 세웠다.
닫기
을 항복시켜 [그 결과 오걸, 견곤, 정령] 3국을 병합하였다. 여러 차례 군대를 보내 오손을 공격하였는데 늘 이겼다. 견곤은 동쪽으로 선우정까지 7천 리 떨어져 있었고 남쪽으로 거사(車師)까지 5천 리 떨어져 있었는데 질지는 머물면서 도읍지로 삼았다.주 006
각주 006)
이 상황에 대하여 그루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呼韓邪에게 쫓겨난 질지는 중국에 복속된 몽골리아에서 현재 러시아령 투르키스탄 지역인 서방으로 신천지를 찾아서 떠났다. 도중에 일리 지역에서 오손을 격파하고 이밀 강 유역에서 呼揭와 아랄 초원의 堅昆을 복속시킨 뒤, 그들을 동맹자로 삼았다. 심지어 그는 소그디아나로 쳐들어갔다. 소그디아나 사람들은 성급하게도 그를 도와 그는 추강과 탈라스강의 초원에 牙庭을 세웠다. 이것은 서구에서 출현한 거대한 匈奴 제국의 한 기원이 되었다”(그루쎄, 1998 : 87).
닫기


  • 각주 001)
    “兩兄”은 屠耆單于와 呼韓邪單于를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小昆彌 : 서역 烏孫國의 국왕 호칭이다. “昆彌”는 본래 ‘昆莫’이라고 한다. 漢 宣帝 때에 大, 小의 구분이 생겼다. 모두 漢으로부터 印綬를 받아 각자의 영역을 다스렸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陳湯傳」에 따르면 “烏揭”는 “呼偈”라고 되어 있다(『漢書』 권70 「陳湯傳」 : 3008). 呼揭에 대해서는 주888)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4)
    堅昆 : 키르기즈 족을 말하는데 투르크계에 속한다. 匈奴의 북방에 있던 堅昆, 鬲昆은 키르기즈 족의 가장 오래된 명칭으로 추정된다. 남북조시대에는 結骨․契骨, 唐代에는 黠戞斯․紇扢斯라고도 기록되었다. 唐代 투르크 비문에 처음으로 그 이름(Qyrqyz)이 등장한다고 한다. 몽골의 북서쪽 예니세이 강 상류에 살았으며 주민은 주로 유럽계로 추정된다. 그 선사문화는 특히 발달된 금속기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늦어도 6세기 후반 무렵에는 돌궐이 등장하면서 문화적 체질적으로 투르크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당대에는 이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堅昆都護府가 설치된 일이 있으나 명목적인 것이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丁令 :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에 걸쳐 북아시아에 유목했던 투르크계 종족이다. 한자로는 丁靈, 丁零, 勅勒 등으로도 표현되는데 모두 ‘투르크’의 음역으로 추정한다. 匈奴의 전성시대에는 바이칼호수의 남안에서 알타이산맥 지방에 걸쳐 거주하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았으나, 나중에는 흉노를 공격하여 흉노의 멸망을 재촉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高車라고도 불렸는데, 5세기 말 알타이산맥 서안에 高車國을 세웠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이 상황에 대하여 그루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呼韓邪에게 쫓겨난 질지는 중국에 복속된 몽골리아에서 현재 러시아령 투르키스탄 지역인 서방으로 신천지를 찾아서 떠났다. 도중에 일리 지역에서 오손을 격파하고 이밀 강 유역에서 呼揭와 아랄 초원의 堅昆을 복속시킨 뒤, 그들을 동맹자로 삼았다. 심지어 그는 소그디아나로 쳐들어갔다. 소그디아나 사람들은 성급하게도 그를 도와 그는 추강과 탈라스강의 초원에 牙庭을 세웠다. 이것은 서구에서 출현한 거대한 匈奴 제국의 한 기원이 되었다”(그루쎄, 1998 : 87).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질지선우, 호한야, 도기선우, 호한야, 이리목선우(伊利目單于), 질지, 질지, 질지, 호한야, 호한야, 질지, 질지, 질지, 질지, 질지, 질지
지명
, , , ,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질지선우가 오걸(烏揭), 견곤(堅昆), 정령(丁令) 등 3국을 병합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