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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한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을 염려하여 한나라의 소무(蘇武)와 마굉(馬宏)을 돌려보낼 것을 모의함

 
  • 국가흉노(匈奴)
2년(전83) 뒤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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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昭帝 始元 4년(전83)의 일이다.

가을, 흉노가 대[군]으로 쳐들어와 도위를 죽였다. 선우가 나이가 어리고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우의] 어머니 연지가 부정을 저지르고 나라가 분열되어 늘 한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올까 걱정하였다. 이에 위율이 선우를 위해 모의하였다. “우물을 파고 성을 쌓으며 누각을 세우고 곡식을 저장하여 중국 사람[秦人]에게 지키게 합시다.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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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나라 때 匈奴에 망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자손들을 여전히 ‘秦人’이라고 불렀다. 이후에도 ‘秦人’은 외국에서 중국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하면] 한나라 군대가 와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물을 수백 개 파고 수천 그루의 나무를 베었다. 다른 사람들이 혹 흉노 사람들은 성을 지킬 수 없으므로 이는 한나라에게 먹을 것을 남겨 주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위율이 이에 [이를] 멈추게 하고 다시 한나라 사신으로 [왔다가 흉노에] 항복하지 않은 소무(蘇武)마굉(馬宏) 등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모의했다. 마굉은 과거에 광록대부 왕충(王忠)의 부관으로 서쪽 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흉노에게 길이 막히자 [왕]충은 싸우다 죽고 마굉은 사로잡혔는데 항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흉노는 이 두 사람을 돌려보내 [그들의] 좋은 뜻이 전해지게 하고자 했다. 이해에 선우가 즉위한 지 3년이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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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昭帝 始元 6년(전81)의 일이다. 이해부터 蘇武를 漢나라로 돌려보내는 논의가 이루어져 元鳳 元年(전80년)에 그가 귀국할 수 있었다.

되었다.

 

주 001
漢 昭帝 始元 4년(전83)의 일이다.
주 002
秦나라 때 匈奴에 망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자손들을 여전히 ‘秦人’이라고 불렀다. 이후에도 ‘秦人’은 외국에서 중국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주 003
漢 昭帝 始元 6년(전81)의 일이다. 이해부터 蘇武를 漢나라로 돌려보내는 논의가 이루어져 元鳳 元年(전80년)에 그가 귀국할 수 있었다.
 
이름
위율 , 위율 , 소무(蘇武) , 마굉(馬宏) , 마굉 , 왕충(王忠) , [왕]충 , 마굉
지명
대[군]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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