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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이지사선우(伊稚斜單于)가 죽고 오유선우(烏維單于)가 즉위함

  • 국가
    흉노(匈奴)
몇 년 후 이지사선우가 즉위한 지 십삼 년 만에 죽고주 001
각주 001)
漢 武帝 元鼎 3년(전114)伊稚斜單于가 재위 14년 만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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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 오유(烏維) 주 002
각주 002)
烏維單于(재위 전114~전105) : 匈奴의 여섯 번째 單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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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서서 선우가 되었다. 이해가 한나라의 원정(元鼎)주 003
각주 003)
漢 武帝의 다섯 번째 연호(전116~전11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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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114)이었다. 오유선우가 즉위했을 때 무제 주 004
각주 004)
『史記』에는 “天子”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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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비로소 군현을 순수하러 나섰다.주 005
각주 005)
漢武帝의 순행은 元封 6년(전105) 겨울에 열두 장군을 이끌고 邊境의 郡縣을 巡視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雲陽을 출발하여 上郡, 西河, 五原 등을 거쳐 長城 밖으로 나아가 單于臺에 올랐다. 單于臺는 雲州 雲中縣 서북쪽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다음에 朔方에 이르렀고 北河로 가는데 군대 18萬騎와 旌旗가 거의 천여 리에 걸쳐 늘어서 있어 匈奴를 놀라 떨게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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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한나라가 바야흐로 남쪽으로 양월(兩越)주 006
각주 006)
兩越 : 南越과 東越을 가리킨다.
南越은 南粤이라고도 한다. 古代 南方 越人의 일족이다. 원래는 族名이었는데, 뒤에 趙佗가 세운 國名되었다. 그 강역은 지금 廣東과 廣西 지구를 포함하여 남쪽으로는 越南 북부까지, 북쪽으로는 湖南省과 貴州省 남부까지 해당한다. 秦이 六國을 통일한 뒤 이 지역에 桂林郡, 南海郡, 象郡 3郡을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史記正義』는 廣州 南海縣에 도읍하였다고 전하고 있는데, 秦始皇 33년에 岭南을 통일한 뒤 南海郡을 설치하였고, 郡治는 番禺城이었다. 또한 지금의 廣州市 越秀區 내에 속한다(『史記』 권113 「南越列傳」).
東越은 閩越과 東甌와 함께 지금 福建省과 浙江省 남부에 거주하던 越族의 일파이다. 閩越은 司馬遷에 따르면 越王 句踐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대략 전334년 戰國時代 구천의 7代孫 無疆시대에 越이 망한 이후 그의 일부가 閩으로 옮겨가 살게 되면서 형성되었다. 秦代 閩中郡을 설치하자 그의 통치를 받다가, 無諸가 진나라 말에 반란을 일으켜 漢의 劉邦을 도와 閩越王이 되었다. 『史記』 권114 「東越列傳」). 漢 武帝 元鼎 5년(전110) 봄에 南越의 相 呂嘉가 반란을 일으키자 가을에 伏波將軍 路博德과 樓船將軍 楊僕이 南越로 와서 元鼎 6년(전111) 겨울에 진압하고 南越에 南海 등 9개의 郡을 설치했다. 또한 6년(전111)에 東越王 餘善이 반기를 들자 가을에 橫海將軍 韓說과 樓船將軍 楊僕이 東越을 정벌하였다. 元封 元年(전110) 겨울에 繇王이 자살하고 그 백성은 江淮 사이로 이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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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치느라고 흉노를 공격하지 못했는데, 흉노 역시 [한나라의] 변경에 [쳐들어]주 007
각주 007)
『史記』에는 “匈奴亦不侵入邊”으로 되어 있는데, 『漢書』 권6 「武帝紀」에 따르면 元鼎 5년(전112) 가을에 匈奴가 五原에 쳐들어와 太守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匈奴가 쳐들어오지 않았다는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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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았다.

  • 각주 001)
    漢 武帝 元鼎 3년(전114)伊稚斜單于가 재위 14년 만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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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烏維單于(재위 전114~전105) : 匈奴의 여섯 번째 單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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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漢 武帝의 다섯 번째 연호(전116~전11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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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史記』에는 “天子”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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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漢武帝의 순행은 元封 6년(전105) 겨울에 열두 장군을 이끌고 邊境의 郡縣을 巡視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雲陽을 출발하여 上郡, 西河, 五原 등을 거쳐 長城 밖으로 나아가 單于臺에 올랐다. 單于臺는 雲州 雲中縣 서북쪽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다음에 朔方에 이르렀고 北河로 가는데 군대 18萬騎와 旌旗가 거의 천여 리에 걸쳐 늘어서 있어 匈奴를 놀라 떨게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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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兩越 : 南越과 東越을 가리킨다.
    南越은 南粤이라고도 한다. 古代 南方 越人의 일족이다. 원래는 族名이었는데, 뒤에 趙佗가 세운 國名되었다. 그 강역은 지금 廣東과 廣西 지구를 포함하여 남쪽으로는 越南 북부까지, 북쪽으로는 湖南省과 貴州省 남부까지 해당한다. 秦이 六國을 통일한 뒤 이 지역에 桂林郡, 南海郡, 象郡 3郡을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史記正義』는 廣州 南海縣에 도읍하였다고 전하고 있는데, 秦始皇 33년에 岭南을 통일한 뒤 南海郡을 설치하였고, 郡治는 番禺城이었다. 또한 지금의 廣州市 越秀區 내에 속한다(『史記』 권113 「南越列傳」).
    東越은 閩越과 東甌와 함께 지금 福建省과 浙江省 남부에 거주하던 越族의 일파이다. 閩越은 司馬遷에 따르면 越王 句踐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대략 전334년 戰國時代 구천의 7代孫 無疆시대에 越이 망한 이후 그의 일부가 閩으로 옮겨가 살게 되면서 형성되었다. 秦代 閩中郡을 설치하자 그의 통치를 받다가, 無諸가 진나라 말에 반란을 일으켜 漢의 劉邦을 도와 閩越王이 되었다. 『史記』 권114 「東越列傳」). 漢 武帝 元鼎 5년(전110) 봄에 南越의 相 呂嘉가 반란을 일으키자 가을에 伏波將軍 路博德과 樓船將軍 楊僕이 南越로 와서 元鼎 6년(전111) 겨울에 진압하고 南越에 南海 등 9개의 郡을 설치했다. 또한 6년(전111)에 東越王 餘善이 반기를 들자 가을에 橫海將軍 韓說과 樓船將軍 楊僕이 東越을 정벌하였다. 元封 元年(전110) 겨울에 繇王이 자살하고 그 백성은 江淮 사이로 이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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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史記』에는 “匈奴亦不侵入邊”으로 되어 있는데, 『漢書』 권6 「武帝紀」에 따르면 元鼎 5년(전112) 가을에 匈奴가 五原에 쳐들어와 太守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匈奴가 쳐들어오지 않았다는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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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이지사선우, 오유(烏維), 오유선우, 무제
지명
한나라, , 한나라,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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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사선우(伊稚斜單于)가 죽고 오유선우(烏維單于)가 즉위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