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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두만선우(頭曼單于)가 죽고 묵특(冒頓)이 선우로 즉위함

  • 국가
    흉노(匈奴)
[두만]선우 주 001
각주 001)
頭曼單于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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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는 태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을 묵특(冒頓) 주 002
각주 002)
冒顿(재위 전209~전174) : 음은 묵특 또는 묵돌 등으로 읽기도 하는데, 묵특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冒頓의 의미는 투르크 또는 몽골어로 영웅을 지칭하는 바가투르(baghatur) 내지는 몽골어의 神聖을 지칭하는 보구드(boghud)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는 전209년에 아버지인 匈奴의 초대 頭曼單于를 살해하고 스스로 單于가 되었다. 이후 내정을 갖춘 다음 東胡와 月氏 등 인근 부족을 격파하고 오르도스의 樓煩과 白羊 등을 병합하였다. 그리고 秦나라가 확보했던 河南 지역을 다시 차지하는 등 세력을 크게 발전시켰다. 나아가 북방의 예니세이 강 상류의 丁零과 서북방의 堅昆 등도 복속시켰다. 이를 통해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거대한 유목제국을 건설했다. 漢나라와 싸워 이긴 이후에 화친을 통해 더욱 세력을 확대하는 등 匈奴帝國의 성립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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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하였다. 그 이후에 [선우가] 총애하는 연지(閼氏)주 003
각주 003)
閼氏 : 음은 연지(煙肢)와 알지 두 가지가 있다. 이것은 匈奴 군주의 妃(또는 妻)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기도 하고 皇后로 번역되기도 한다. 閼氏의 음에 대해 먼저 北宋代에 편찬된 『大宋重修廣韻』에 의거해 ‘閼’의 古代 漢語音이 燕, 蓮, 湮, 鄢, 焉과 같이 ‘연’으로, 匈奴의 부인들이 식물에서 추출해서 얼굴에 발랐다는 焉支(연지)와 같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謁’과 같이 ‘알’이라는 설, 그리고 歇, 羯 등 여러 어음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근거는 古代~現代 한국어의 음으로 『三國史記』 권1 「新羅本紀」 〈始祖條〉에 보이는 “閼川 楊山村”, “閼英” 및 『三國史記』 권2 「新羅本紀」 〈味鄒尼師今條〉에 보이는 “閼智”에서의 ‘閼’의 음이 ‘알’이기 때문이다(李丙燾, 1977 ; 李基東, 1982). 한편 閼氏의 漢語 古音을 ‘앗시(atsi)’로 보고 이것이 퉁구스어와 몽골어의 ‘아시(asi)’ 또는 ‘아쉬(aši)’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면서 閼氏 즉 匈奴語 ‘아시(asi)’는 퉁구스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閼’의 한국어 음은 ‘알(al)’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徐復, 1983 : 222~226). 여기에서는 顔師古의 주석에 의거해 “연지”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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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막내 아들을 낳자 두만 [선우] 주 004
각주 004)
『史記』에는 “頭曼”이 아니라 “單于”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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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특 [태자]을 폐하고 막내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묵특월지(月氏)에 볼모로 보냈다. 묵특월지에서 볼모로 있을 때 [그를 죽이려고 하는 생각을 가진] 두만[선우]가 갑자기 월지를 공격했다.주 005
각주 005)
匈奴가 月氏를 공격한 시기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蒙恬이 장성을 축조하고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匈奴가 중국에 대한 위협을 가하지 못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로 추정된다. 대략 秦 始皇帝 30년(전217)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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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월지가 묵특을 죽이려고 하자 묵특이 [월지의] 좋은 말을 훔쳐 타고 [본국으로] 도망쳐 돌아왔다. 두만은 [자신의 계획은 어긋났지만] 아들 묵특의 [용기를] 장하게 여겨 만 기(騎)를 거느리게 했다. 묵특은 이에 소리나는 화살[鳴鏑]주 006
각주 006)
鳴鏑 : 쏘면 날아가면서 소리를 내는 화살로 ‘嚆矢’라고도 한다. 원래 嚆矢나 鳴鏑은 공격 시작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화살인데, ‘어떤 사건의 시작이나 기원’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쉬이익’하고 鳴鏑 소리가 나면 이어서 수십, 수백 발의 화살이 뒤따르기 때문에 鳴鏑은 적에게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鳴鏑의 실물을 보면 화살촉 중간 부분에 동그란 방울처럼 생긴 부분이 있다. 그 속이 비어 있고 구멍이 1~6개 정도 뚫려 있어 비행 중에 호루라기처럼 소리를 내게 된다. 재질은 뼈나 청동제가 많고 철제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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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고 부하들에게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연습을 시키면서주 007
각주 007)
그 예하 부락의 모든 백성들이 騎馬를 부리고 활을 익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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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내가] 소리나는 화살을 쏜 곳에 [너희들이] 모두 쏘지 않으면 베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정말] 짐승을 사냥하러 나가서 소리나는 화살을 쏜 곳에 쏘지 않는 자가 있자 바로 베어 버렸다. 얼마 후에 묵특이 소리나는 화살로 스스로 [자신의] 좋은 말(善馬)을 쏘았는데, 좌우에서 감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자 묵특이 바로 좋은 말을 쏘지 못한 자들을 베어 버렸다. 다시 얼마 지난 후 [묵특이] 소리나는 화살로 스스로 아끼던 처를 쏘았는데, 좌우에서 몹시 두려워하여 감히 쏘지 못하자 [묵특이] 다시 베어 버렸다. [또] 얼마 뒤에 묵특이 사냥하러 나갔는데, 소리나는 화살로 [두만]선우의 좋은 말을 쏘니 좌우의 부하들이 모두 쏘았다. 이에 묵특이 그의 좌우 [부하가] 쓸 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아버지 선우 두만을 따라 사냥을 나가 [묵특이] 소리나는 화살로 두만을 쏘자 그의 좌우 [부하들이] 모두 소리나는 화살을 따라 화살을 쏘아 선우 두만을 죽였다. 마침내 [묵특은] 그의 계모와 동생들, 그리고 [그를] 따르지 않는 대신들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 이에 묵특이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주 008
각주 008)
冒頓單于가 자립을 한 것은 秦 2世 皇帝 元年(전209)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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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頭曼單于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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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冒顿(재위 전209~전174) : 음은 묵특 또는 묵돌 등으로 읽기도 하는데, 묵특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冒頓의 의미는 투르크 또는 몽골어로 영웅을 지칭하는 바가투르(baghatur) 내지는 몽골어의 神聖을 지칭하는 보구드(boghud)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는 전209년에 아버지인 匈奴의 초대 頭曼單于를 살해하고 스스로 單于가 되었다. 이후 내정을 갖춘 다음 東胡와 月氏 등 인근 부족을 격파하고 오르도스의 樓煩과 白羊 등을 병합하였다. 그리고 秦나라가 확보했던 河南 지역을 다시 차지하는 등 세력을 크게 발전시켰다. 나아가 북방의 예니세이 강 상류의 丁零과 서북방의 堅昆 등도 복속시켰다. 이를 통해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는 거대한 유목제국을 건설했다. 漢나라와 싸워 이긴 이후에 화친을 통해 더욱 세력을 확대하는 등 匈奴帝國의 성립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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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閼氏 : 음은 연지(煙肢)와 알지 두 가지가 있다. 이것은 匈奴 군주의 妃(또는 妻)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기도 하고 皇后로 번역되기도 한다. 閼氏의 음에 대해 먼저 北宋代에 편찬된 『大宋重修廣韻』에 의거해 ‘閼’의 古代 漢語音이 燕, 蓮, 湮, 鄢, 焉과 같이 ‘연’으로, 匈奴의 부인들이 식물에서 추출해서 얼굴에 발랐다는 焉支(연지)와 같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謁’과 같이 ‘알’이라는 설, 그리고 歇, 羯 등 여러 어음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근거는 古代~現代 한국어의 음으로 『三國史記』 권1 「新羅本紀」 〈始祖條〉에 보이는 “閼川 楊山村”, “閼英” 및 『三國史記』 권2 「新羅本紀」 〈味鄒尼師今條〉에 보이는 “閼智”에서의 ‘閼’의 음이 ‘알’이기 때문이다(李丙燾, 1977 ; 李基東, 1982). 한편 閼氏의 漢語 古音을 ‘앗시(atsi)’로 보고 이것이 퉁구스어와 몽골어의 ‘아시(asi)’ 또는 ‘아쉬(aši)’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면서 閼氏 즉 匈奴語 ‘아시(asi)’는 퉁구스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閼’의 한국어 음은 ‘알(al)’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徐復, 1983 : 222~226). 여기에서는 顔師古의 주석에 의거해 “연지”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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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史記』에는 “頭曼”이 아니라 “單于”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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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匈奴가 月氏를 공격한 시기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蒙恬이 장성을 축조하고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匈奴가 중국에 대한 위협을 가하지 못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로 추정된다. 대략 秦 始皇帝 30년(전217)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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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鳴鏑 : 쏘면 날아가면서 소리를 내는 화살로 ‘嚆矢’라고도 한다. 원래 嚆矢나 鳴鏑은 공격 시작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화살인데, ‘어떤 사건의 시작이나 기원’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쉬이익’하고 鳴鏑 소리가 나면 이어서 수십, 수백 발의 화살이 뒤따르기 때문에 鳴鏑은 적에게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鳴鏑의 실물을 보면 화살촉 중간 부분에 동그란 방울처럼 생긴 부분이 있다. 그 속이 비어 있고 구멍이 1~6개 정도 뚫려 있어 비행 중에 호루라기처럼 소리를 내게 된다. 재질은 뼈나 청동제가 많고 철제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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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그 예하 부락의 모든 백성들이 騎馬를 부리고 활을 익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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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冒頓單于가 자립을 한 것은 秦 2世 皇帝 元年(전209)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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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두만]선우, 묵특(冒頓), 두만 [선우], 묵특, 묵특, 묵특, 두만[선우], 묵특, 묵특, 두만, 묵특, 묵특, 묵특, 묵특, 묵특, 묵특, 묵특, [두만]선우, 묵특, 두만, 묵특, 두만, 묵특, 묵특
지명
월지(月氏),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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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선우(頭曼單于)가 죽고 묵특(冒頓)이 선우로 즉위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