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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는 흉노와의 전투에서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광리가 흉노에 투항함

 
  • 국가흉노(匈奴)
그 후 2년이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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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武帝 天漢 4년(전97)이다. 『漢書』 「武帝紀」에 天漢 3年(전98) 가을에 匈奴가 雁門에 들어오자 4年(전97)에 貳師將軍을 보냈다고 되어 있다.

지나서 다시 이사장군 [이광리]를 시켜 6만의 기병과 보병 10만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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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七萬’으로 되어 있다.

을 거느리고 삭방[군]에서 나아가게 했다. 강노도위 노박덕이 만여 명을 거느리고 이사[장군 이광리]와 만났다. 유격장군 [한]열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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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說 : 弓高侯의 庶孫으로 校尉로서 大將軍을 따라 匈奴 정벌에 공을 세워 龍頟侯가 되었다가 죄를 지어 侯를 잃었다. 元鼎 6년(전111) 橫海將軍으로 東越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워 按道侯가 되었다 太初 3년(전102) 游擊將軍이 되어 五原 밖에 주둔해 있었다. 光祿勳이 되었다가 巫蠱사건으로 戾太子에게 죽임을 당했다.

은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오원[군](五原郡)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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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原 : 郡 명칭으로 前漢 元朔 2년(전127)에 설치되었다. 치소는 九原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烏拉特前旗 동남 黑柳子鄕 三頂房村 古城)이다. 관할구역은 內蒙古自治區 後套 이동, 陰山 이남, 包頭市 이서와 達拉特, 准噶爾旗 지역이다. 後漢 말에 폐지되었다.

에서 나갔다. 인우장군 [공손]오는 만 명의 기병과 보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안문[군]에서 나갔다. 흉노가 [이 정보를] 듣고 짐이 될 수 있는 처자와 자산[累重]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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累重 : 짐이 될 수 있는 처자와 재산을 의미한다.

을 모두 여오수(余吾水)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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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吾水 : 강의 명칭으로 『山海經』 「北山經」에서 “涂吾之水”라고 되어 있다. 지금의 몽골공화국에 있는 셀렝게강의 중요한 지류 중의 하나인 톨강을 지칭한다.

의 북쪽으로 대피시킨 다음 선우가 10만 기를 이끌고 [여오]수 남쪽에서 기다렸다가 이사장군 [이광리]와 전투를 벌였다. 이사[장군 이광리]는 [공격을] 풀고 되돌아오다가 선우와 연이어 10여 일을 싸웠다.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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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맥락상 “貳師將軍 [李廣利는] 單于와 10여 일을 계속 싸우다가 [군사를] 풀고 돌아왔다.”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사[장군 이광리]는 자신의 가족들이 무고(巫蠱)의 난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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巫蠱 : 古代의 迷信으로 呪術師들이 사술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漢 武帝 末年에 皇帝가 方士神巫를 좋아하여 여자 무당들이 宮闕에 출입을 했다. 漢 武帝 征和 2년(전91)에 方士와 무당들이 宮人들을 고혹시켜 木人을 宮中에 묻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때 우연히 皇帝가 병에 걸렸다. 戾太子와 사이가 나쁜 강충이 “皇帝의 병은 무당들의 현혹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궁중의 木人들을 파내자 太子宮에서 나온 것이 가장 많았다. 太子가 두려워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패하자 자살했다.

에 연루되어 몰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무리를 거느리고 흉노에 투항하니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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征和 2年(전91), 巫蠱가 시작되어 3年(전90)에 李廣利가 匈奴를 공격하러 나갔다가 패배하고 항복하였다.

이에 살아서 돌아온 자가 천 명 중에 겨우 한두 명에 지나지 않았다. 유격[대장 한]열도 전과가 없었다. 인우[장군 공손]오도 좌현왕과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해 철수해 돌아왔다. 이해에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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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武帝 征和 3년(전94)이다.

한나라 군사로 출정해 흉노와 싸운 사람 중에서 군공(軍功)을 따질 만한 여지조차 없어 논공할 만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한편] 조칙을 내려 태의령(太醫令)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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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醫令 : 관직 명칭으로 前漢시대에 太常과 少府에 소속되어 있었다. 太常 소속은 百官의 병을 치료하고, 少府 소속은 궁정 귀족의 병을 치료하였다(『漢書』 권19 「百官公卿表」 : 726).

수단(隨但)을 체포했는데, [이는] 그가 이사장군 [이광리의] 가족이 몰살되었다고 말해 이광리를 흉노에 투항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012]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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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서는 『史記』의 내용을 이어 “明年, 且鞮死, 長子狐鹿姑單于立”로부터 그 이후 匈奴傳의 내용이 전개된다.



 

주 001
漢 武帝 天漢 4년(전97)이다. 『漢書』 「武帝紀」에 天漢 3年(전98) 가을에 匈奴가 雁門에 들어오자 4年(전97)에 貳師將軍을 보냈다고 되어 있다.
주 002
『漢書』에는 ‘七萬’으로 되어 있다.
주 003
韓說 : 弓高侯의 庶孫으로 校尉로서 大將軍을 따라 匈奴 정벌에 공을 세워 龍頟侯가 되었다가 죄를 지어 侯를 잃었다. 元鼎 6년(전111) 橫海將軍으로 東越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워 按道侯가 되었다 太初 3년(전102) 游擊將軍이 되어 五原 밖에 주둔해 있었다. 光祿勳이 되었다가 巫蠱사건으로 戾太子에게 죽임을 당했다.
주 004
五原 : 郡 명칭으로 前漢 元朔 2년(전127)에 설치되었다. 치소는 九原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烏拉特前旗 동남 黑柳子鄕 三頂房村 古城)이다. 관할구역은 內蒙古自治區 後套 이동, 陰山 이남, 包頭市 이서와 達拉特, 准噶爾旗 지역이다. 後漢 말에 폐지되었다.
주 005
累重 : 짐이 될 수 있는 처자와 재산을 의미한다.
주 006
余吾水 : 강의 명칭으로 『山海經』 「北山經」에서 “涂吾之水”라고 되어 있다. 지금의 몽골공화국에 있는 셀렝게강의 중요한 지류 중의 하나인 톨강을 지칭한다.
주 007
이 부분은 맥락상 “貳師將軍 [李廣利는] 單于와 10여 일을 계속 싸우다가 [군사를] 풀고 돌아왔다.”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주 008
巫蠱 : 古代의 迷信으로 呪術師들이 사술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漢 武帝 末年에 皇帝가 方士神巫를 좋아하여 여자 무당들이 宮闕에 출입을 했다. 漢 武帝 征和 2년(전91)에 方士와 무당들이 宮人들을 고혹시켜 木人을 宮中에 묻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때 우연히 皇帝가 병에 걸렸다. 戾太子와 사이가 나쁜 강충이 “皇帝의 병은 무당들의 현혹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궁중의 木人들을 파내자 太子宮에서 나온 것이 가장 많았다. 太子가 두려워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패하자 자살했다.
주 009
征和 2年(전91), 巫蠱가 시작되어 3年(전90)에 李廣利가 匈奴를 공격하러 나갔다가 패배하고 항복하였다.
주 010
漢 武帝 征和 3년(전94)이다.
주 011
太醫令 : 관직 명칭으로 前漢시대에 太常과 少府에 소속되어 있었다. 太常 소속은 百官의 병을 치료하고, 少府 소속은 궁정 귀족의 병을 치료하였다(『漢書』 권19 「百官公卿表」 : 726).
주 012
『漢書』에서는 『史記』의 내용을 이어 “明年, 且鞮死, 長子狐鹿姑單于立”로부터 그 이후 匈奴傳의 내용이 전개된다.
 
이름
[이광리] , 노박덕 , 이광리 , [한]열 , [공손]오 , 이광리 , 이광리 , 이광리 , 한]열 , 공손]오 , 수단(隨但) , 이광리 , 이광리
지명
삭방[군] , 오원[군] , 안문[군] , 여오수(余吾水) , [여오]수 ,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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