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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흉노를 고립시킨 뒤 양신(楊信)을 사신으로 보내 태자를 볼모로 보낼 것을 요구했으나 흉노가 과거에 한 약속과 다르다면서 거절함

 
  • 국가흉노(匈奴)
한나라양신(楊信)을 흉노에 사신으로 보냈다.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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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信을 匈奴에 보낸 것은 元封 4년(전109) 가을이어야 한다. 『漢書』의 기록(권6 「武帝紀」 元封 4年 秋條 “以匈奴弱, 可遂臣服, 乃遣使說之” : 196)에도 전109년으로 되어 있다.

이 무렵 한나라는 동쪽으로 예맥(穢貉), 조선을 정복해 군(郡)으로 삼고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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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漢나라는 元朔 元年(전128) 가을에 穢貉君 南閭가 朝鮮王 右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다음 內屬하자 그곳에 蒼海郡을 두었다. 元封 3년(전108)에 朝鮮을 멸하고 그곳에 樂浪, 玄菟, 眞番, 臨屯의 네 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20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서쪽으로는 주천군(酒泉郡)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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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泉郡 : 군의 명칭으로 지금의 甘肅省 疏勒河 동쪽과 高臺縣 서쪽에 있었다. 漢나라에서는 元狩 2년(전121) 가을에 匈奴 昆邪王이 休屠王을 죽이고 투항했기 때문에 河西가 비게 되자 元鼎 2년(전115)에 張騫을 烏孫에 사신으로 보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듣지 않자 그 땅에 酒泉郡을 두었다. 酒泉郡의 治所는 祿福에 있었는데, 지금의 甘肅省 酒泉縣이다.

을 설치해 흉노와 강(羌)이 통하는 길을 막았다.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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匈奴와 羌이 통하는 길을 끊는 것은 漢나라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로서 그들을 포위하는 방식의 일환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鹽鐵論』(「西域篇」 “胡西役大宛·康居之屬, 南與群羌通.” : 321)에서도 동일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한나라는 또한 서쪽으로 [대]월지 [주005]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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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17년 이후 수년에 걸쳐 月氏는 匈奴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 서쪽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먼저 지금의 新疆維吾爾自治區 일리하 유역과 그 서쪽에 자리잡고 大月氏를 형성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옮겨가지 않고 祁蓮山으로 들어가 羌人과 雜居한 소수의 세력이 小月氏을 형성했다. 여기서는 大月氏를 가리킨다.

, 대하(大夏)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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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夏 : 나라 명칭으로 박트리아(Bactria 또는 Bactriana)를 말한다. 힌두쿠시(Hindu Kush)산맥과 아무다리아(Amu Darya) 사이, 즉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로 전246∼전138에 존재했다. 페르시아어에서는 Bākhtar, 아랍어와 인도어에서는 Bhalika로 표기한다. 전126년 張騫이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大月氏의 침입을 받아 왕국이 망한 뒤였다고 한다. 「大宛列傳』에서는 大宛의 서남쪽으로 2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정착생활을 하여 성곽과 가옥을 가지고 있으며 大宛과 풍속이 같다고 하였다. 또 大君長은 없지만 때때로 성읍에 小長이 세워지고, 그 군대는 약하고 싸우기를 두려워하지만, 사람들은 장사는 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大月氏가 흉노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도망쳐 와서 그들을 점령하고 모두 臣屬시켰다고 하였다. 인구는 대략 100여 만 명이 되고, 도읍은 藍市城인데, 시장이 있어 각종 물건들을 판매하며, 그 동남쪽에는 身毒國이 있다고 하였다(『史記』 권123 「大宛列傳」 : 3164). 또한 『漢書』 「西域傳」에 따르면 대월지가 본래 敦煌과 祁連 사이에 있다가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당해 그 왕의 두개골을 匈奴의 老上單于가 술잔을 만들었고, 대월지는 멀리 도망가 大宛의 서쪽으로 지나 大夏를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嬀水 북쪽에 도읍을 삼고 王庭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大夏의 일부는 月氏의 공격을 받은 다음에 그 일부가 인도로 밀려들어가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와 [우호관계를 맺어] 통하고 [한나라의] 공주를 오손왕(烏孫王)에게 시집보냄으로써 [주007]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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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孫으로 시집간 공주는 漢 景帝의 손자 江都王 劉建의 딸 劉細君이다. 元封 6년(전105)에 烏孫王에게 출가하였다. 烏孫의 왕 昆莫은 그를 右夫人으로 삼았다. 武帝는 두 번에 걸쳐 宗室의 딸을 공주로 속여 烏孫王에게 출가시켰다.

흉노의 서쪽에서 [그를] 지원하던 여러 나라를 [그로부터] 떼어 놓았다. 또한 북쪽으로 농경지를 더욱 확장해 현뢰(胘靁) [주008]
각주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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胘靁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烏孫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新疆維吾爾自治區 塔城縣 부근에 있었다. 그 위치를 西河郡 西北邊 또는 內蒙古自治區 鄂托克旗地域이라고도 하나 정확하게 알 수 없다. 『漢書』에는 “眩雷”로 되어 있다.

까지 나아가 요새를 구축해도 흉노는 끝내 감히 한 마디[의 항의]도 하지 못하였다. 이 해에 흡후 [조]신이 죽으니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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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將軍 翕侯 趙信은 元朔 6년(전126) 여름에 匈奴에 투항하여 元封 4년(전107) 그곳에서 죽었다.

한나라의 집권자들은 흉노가 이미 쇠약해져 신하로서 따르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신은 사람됨이 강직하고 굽힐 줄 몰랐는데, 평소에 [그가] 귀한 신하가 아니라고 하여 선우가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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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單于”가 없다.

[그를]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다. 선우가 [그를] 불러들이려고 해도 [양신이] 끝내 절(節)을 버리지 않자 선우가 이에 천막 밖에다 자리를 마련하고 양신을 만났다. [양]신이 선우를 뵙자 달래어 말했다.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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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楊信說單于曰”로 되어 있다.

“만약 [한나라와] 화친하기를 원하신다면 선우의 태자를 한나라에 볼모로 보내십시오.” 선우가 말하였다. “그것은 과거의 약속과 [주012]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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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約, 즉 과거의 약속은 漢 高祖가 使臣 劉敬을 보내 匈奴 冒頓單于와 맺은 和親之約을 말한다. 이것은 양국이 화친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그리고 文帝 4년(전176)에 다시 冒頓單于와 漢 文帝가 편지를 통해 과거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또한 文帝 6년(전174)에는 漢나라에서 匈奴의 冒頓單于에게 편지를 보내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양국의 화친 약속은 武帝시대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다르오. 과거의 약속은 한나라에서 늘 옹주를 보내면서 비단, 명주솜, 식품 등을 등급 차이에 따라 주어 화친을 하면 흉노도 [한나라의] 변경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오. 지금 본래의 약속과 달리 나의 태자를 볼모로 달라 하니 [오히려 과거의 약속과 다른 이런 일은] 바라지도 마시오. [주013]
각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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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幾 : “과거의 약속과 다르므로, 볼모를 보내는 일은 결코 바랄 수 없다.”는 의미이다.

” 흉노의 습속에 따르면 한나라 사자가 중귀인(中貴人) [주014]
각주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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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貴人 : ‘中貴’라고도 하는데, 皇帝의 寵愛를 받는 宦官을 말한다.

이 아닐 경우 [그 사람이] 유생이면 [주015]
각주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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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 : ‘先生’을 말하는 것인데, 生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漢書』에는 “儒生”으로 되어 있다.

설득하러 온 줄 알고 그의 변설을 꺾으려 하고, [주016]
각주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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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折其辭辯”로 되어 있다.

[주017]
각주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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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其”가 없다.

[사람이] 나이가 젊으면 자객이라 여겨 그의 기세를 꺾으려 했다. 매번 한나라의 사신이 [주018]
각주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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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兵“으로 되어 있다.

흉노로 들어올 때면 흉노 역시 바로 [사신을 한나라로] 상응하게 보냈다. 한나라에서 흉노의 사자를 잡아두면 흉노 역시 한나라의 사자를 잡아두는 등 반드시 대등한 수단을 취하며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주019]
각주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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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書』에는 “必得當乃止”로 되어 있다.



 

주 001
楊信을 匈奴에 보낸 것은 元封 4년(전109) 가을이어야 한다. 『漢書』의 기록(권6 「武帝紀」 元封 4年 秋條 “以匈奴弱, 可遂臣服, 乃遣使說之” : 196)에도 전109년으로 되어 있다.
주 002
당시 漢나라는 元朔 元年(전128) 가을에 穢貉君 南閭가 朝鮮王 右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다음 內屬하자 그곳에 蒼海郡을 두었다. 元封 3년(전108)에 朝鮮을 멸하고 그곳에 樂浪, 玄菟, 眞番, 臨屯의 네 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20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주 003
酒泉郡 : 군의 명칭으로 지금의 甘肅省 疏勒河 동쪽과 高臺縣 서쪽에 있었다. 漢나라에서는 元狩 2년(전121) 가을에 匈奴 昆邪王이 休屠王을 죽이고 투항했기 때문에 河西가 비게 되자 元鼎 2년(전115)에 張騫을 烏孫에 사신으로 보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듣지 않자 그 땅에 酒泉郡을 두었다. 酒泉郡의 治所는 祿福에 있었는데, 지금의 甘肅省 酒泉縣이다.
주 004
匈奴와 羌이 통하는 길을 끊는 것은 漢나라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로서 그들을 포위하는 방식의 일환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鹽鐵論』(「西域篇」 “胡西役大宛·康居之屬, 南與群羌通.” : 321)에서도 동일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주 005
전117년 이후 수년에 걸쳐 月氏는 匈奴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 서쪽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먼저 지금의 新疆維吾爾自治區 일리하 유역과 그 서쪽에 자리잡고 大月氏를 형성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옮겨가지 않고 祁蓮山으로 들어가 羌人과 雜居한 소수의 세력이 小月氏을 형성했다. 여기서는 大月氏를 가리킨다.
주 006
大夏 : 나라 명칭으로 박트리아(Bactria 또는 Bactriana)를 말한다. 힌두쿠시(Hindu Kush)산맥과 아무다리아(Amu Darya) 사이, 즉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로 전246∼전138에 존재했다. 페르시아어에서는 Bākhtar, 아랍어와 인도어에서는 Bhalika로 표기한다. 전126년 張騫이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大月氏의 침입을 받아 왕국이 망한 뒤였다고 한다. 「大宛列傳』에서는 大宛의 서남쪽으로 2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정착생활을 하여 성곽과 가옥을 가지고 있으며 大宛과 풍속이 같다고 하였다. 또 大君長은 없지만 때때로 성읍에 小長이 세워지고, 그 군대는 약하고 싸우기를 두려워하지만, 사람들은 장사는 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大月氏가 흉노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도망쳐 와서 그들을 점령하고 모두 臣屬시켰다고 하였다. 인구는 대략 100여 만 명이 되고, 도읍은 藍市城인데, 시장이 있어 각종 물건들을 판매하며, 그 동남쪽에는 身毒國이 있다고 하였다(『史記』 권123 「大宛列傳」 : 3164). 또한 『漢書』 「西域傳」에 따르면 대월지가 본래 敦煌과 祁連 사이에 있다가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당해 그 왕의 두개골을 匈奴의 老上單于가 술잔을 만들었고, 대월지는 멀리 도망가 大宛의 서쪽으로 지나 大夏를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嬀水 북쪽에 도읍을 삼고 王庭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大夏의 일부는 月氏의 공격을 받은 다음에 그 일부가 인도로 밀려들어가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주 007
烏孫으로 시집간 공주는 漢 景帝의 손자 江都王 劉建의 딸 劉細君이다. 元封 6년(전105)에 烏孫王에게 출가하였다. 烏孫의 왕 昆莫은 그를 右夫人으로 삼았다. 武帝는 두 번에 걸쳐 宗室의 딸을 공주로 속여 烏孫王에게 출가시켰다.
주 008
胘靁 : 고대 종족의 명칭으로 烏孫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新疆維吾爾自治區 塔城縣 부근에 있었다. 그 위치를 西河郡 西北邊 또는 內蒙古自治區 鄂托克旗地域이라고도 하나 정확하게 알 수 없다. 『漢書』에는 “眩雷”로 되어 있다.
주 009
前將軍 翕侯 趙信은 元朔 6년(전126) 여름에 匈奴에 투항하여 元封 4년(전107) 그곳에서 죽었다.
주 010
『漢書』에는 “單于”가 없다.
주 011
『漢書』에는 “楊信說單于曰”로 되어 있다.
주 012
故約, 즉 과거의 약속은 漢 高祖가 使臣 劉敬을 보내 匈奴 冒頓單于와 맺은 和親之約을 말한다. 이것은 양국이 화친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그리고 文帝 4년(전176)에 다시 冒頓單于와 漢 文帝가 편지를 통해 과거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또한 文帝 6년(전174)에는 漢나라에서 匈奴의 冒頓單于에게 편지를 보내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양국의 화친 약속은 武帝시대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주 013
無幾 : “과거의 약속과 다르므로, 볼모를 보내는 일은 결코 바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주 014
中貴人 : ‘中貴’라고도 하는데, 皇帝의 寵愛를 받는 宦官을 말한다.
주 015
先 : ‘先生’을 말하는 것인데, 生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漢書』에는 “儒生”으로 되어 있다.
주 016
『漢書』에는 “折其辭辯”로 되어 있다.
주 017
『漢書』에는 “其”가 없다.
주 018
『漢書』에는 “兵“으로 되어 있다.
주 019
『漢書』에는 “必得當乃止”로 되어 있다.
 
이름
양신(楊信) , [조]신 , 양신 , 양신 , 양신 , [양]신
지명
한나라 , 한나라 , 조선 , 주천군(酒泉郡) , 한나라 , [대]월지 , 대하(大夏)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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