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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흉노땅을 잠식해 흉노 이북과 인접하게 됨

 
  • 국가흉노(匈奴)
이 뒤로 흉노가 멀리 달아나게 되자 고비 남쪽에 [흉노의] 왕정(王庭)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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匈奴의 王庭(오르두)은 원래 고비 남부 蘢城(龍城)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비를 건너 漠北地域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주238) 참조)

이 없게 되었다. 한나라황하를 건너 삭방에서 서쪽의 영거(令居)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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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居 : 縣 명칭으로 金城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甘肅省 永登縣 서북쪽에 있었다.

까지 곳곳에 [물을 대는] 도랑을 통하게 하고 농지를 개간하여 관리와 병졸 5, 6만 명이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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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본은 원래 “往往通渠置田, 官吏卒五六萬人.”이라고 표점하였다. 그러나 武帝 元朔 2년(전127)에 大將軍이 河南을 수복하자 朔方에 이주를 시켜 屯田하게 되었고, 元狩 4년(전121) 이후에 令居에도 屯田을 하였다. 따라서, 이때 그곳에 田官을 보내 管理하게 하여 屯田에 있는 吏와 卒이 당시 5 ~ 6만 명이 넘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資治通鑑』에서도 “田官”으로 이어서 읽었고, 胡三省 역시 注에서 “置官以主屯田.”라고 했다. 그러므로 “往往通渠置田官, 吏卒五六萬人”이라고 표점한 『漢書』가 타당하고, 여기에서는 이에 따랐다.

점점 [흉노 땅을] 잠식해 가 [한나라의] 땅이 흉노 [구지의] 이북과 인접하게 되었다.

 

주 001
匈奴의 王庭(오르두)은 원래 고비 남부 蘢城(龍城)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비를 건너 漠北地域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주238) 참조)
주 002
令居 : 縣 명칭으로 金城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甘肅省 永登縣 서북쪽에 있었다.
주 003
저본은 원래 “往往通渠置田, 官吏卒五六萬人.”이라고 표점하였다. 그러나 武帝 元朔 2년(전127)에 大將軍이 河南을 수복하자 朔方에 이주를 시켜 屯田하게 되었고, 元狩 4년(전121) 이후에 令居에도 屯田을 하였다. 따라서, 이때 그곳에 田官을 보내 管理하게 하여 屯田에 있는 吏와 卒이 당시 5 ~ 6만 명이 넘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資治通鑑』에서도 “田官”으로 이어서 읽었고, 胡三省 역시 注에서 “置官以主屯田.”라고 했다. 그러므로 “往往通渠置田官, 吏卒五六萬人”이라고 표점한 『漢書』가 타당하고, 여기에서는 이에 따랐다.
 
지명
한나라 , 황하 , 삭방 , 영거(令居) ,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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