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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난성(海南省) 하이난도(海南島) 삼아시홍사(三亜市紅沙)

 
 

루 만 메이(蘆満妹, Lu Man-mei)

 

 

피해자의 증언

 

1926년 대만 신죽현(新竹縣) 출생

1943년 17세 때에 「간호사의 일이 있다」라고 누가 말을 걸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입이 증가하면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에게 말하면 반대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몰래 집을 나왔습니다.
30, 40명의 여성과 대만의 고웅(高雄)에서 배에 실려 하이난도의 금림항(檎林港)에 가고, 다시 거기에서 홍사(紅沙)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는 건물은 아직 없고, 목조로 방이 20, 30개는 있는 단층으로 된 연립주택과 같은 건물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잠시 후 완성되자 우리는 각각 다다미 2개정도가 들어가는 좁은 방에 넣어졌습니다. 거기는 일본인 부부가 경영하는 위안소였습니다.
처음으로 군인이 왔을 때,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울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일본병은 첫날은 7, 8명이, 그 후는 하루에 14, 15명이나 오고, 방의 앞에서 열을 만들어 「빨리 해라!」라고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감시가 심해서 도망칠 수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는 임신해 버리고, 1944년, 임신 8개월이 되어, 위안의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겨우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삼아시홍사(三亜市紅沙) 위안소 흔적
- 제공:기주(紀州)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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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아시홍사(三亜市紅沙) 위안소 흔적

    제공:기주(紀州) 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


 

박래순(朴来順)

 

 

피해자의 증언

 

한국·경상남도 출생

1941년, 경상남도에 있는 고향의 마을에 일본군이 와 「여자 전쟁지 후방 봉사정신대(女子戦地後方奉仕挺身隊)」를 징집, 「저 쪽(중국)으로 가면, 취사, 세탁, 부상병을 보살펴 주는 일로, 매월 급료를 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선전에 응모했습니다. 열차로 중국 동북부의무순(撫順)까지 연행 후, 「위안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굴욕의 날이 되었습니다. 1942년 2월에 중국 본토에서 일본의 군함으로 하이난도(海南島)에 연행,해구(海口)의 위안소에 넣어졌습니다. 그곳은 일본 군사령부의 근처이고, 대만인이나 필리핀인의 여성도 있었습니다. 1943년 1월에는 일본군의 차량으로 삼아(三亜)로 옮겨지고,홍사(紅沙)의 구가원(欧家園)이라고 하는 위안소로 옮겨졌습니다. 그 후, 두 번 다시 고향을 볼 수 없었습니다.(1995년 하이난도에서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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