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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武漢)

 
 

[지역설명]

 

후베이성의 수도 우한은 화중(華中) 전역의 경제적인 주요 거점으로, 장강(長江) 을 사이에 두고 한커우(漢口), 우창(武昌), 한양(漢陽) 3지구로 구성되어 있어서 「우한3진」(武漢三鎭)이라고 불렸다.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난징(南京) 점령 후, 쉬저우(徐州) 작전을 거쳐 약30만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우한 공략전을 실시했다. 1938년 10월에는 제11군이 우한3진을 점령. 그 직후에 우한에 들어온 병참기지 설치 운영 부대는 300명의 「위안부」가 수용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적경리(積慶里)에 대규모 군 위안소 거리를 조성했다.

 

야마다 기요시(山田淸吉)

 

전 일본병의 증언

우한 병참사령부 위안계장

적경리(積慶里) 거리의 창립기념일은 11월 8일이며, 이 날은 임시 공휴일이다. 오전 중에 뒤편 공원에서 우량 위안부 표창식이 있었고 병참 관계자 외에 군 참모부, 경비 사령부, 헌병 분대관계 장교도 초대되었다. 당시 진료를 담당하고 있던 오사와(大澤) 군의(軍醫) 대위가 병참을 대표하여 인사했다. 낮에는 도시락이 나왔고 내빈에게는 특별히 작은 술 한 병이 추가되었다.


출전 : 『武漢兵站』(図書出版社、197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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