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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已復馳啓東宮狀 癸巳正月

西厓集

 
  • 출전『西厓集(서애집)』 西厓先生文集卷之六 書狀 平壤已復馳啓東宮狀 癸巳正月한국고전종합DB
 

平壤已復馳啓東宮狀 癸巳正月

 

어제 순찰사 이원익 등의 보고에, “중국 군사가 아군과 협력하여 평양으로 진공하였는데, 중국 군사는 칠성문(七星門) 지도 으로, 아군은 함구문(含毬門) 지도 으로 각각 들어가서 지금도 한창 싸우고 있다……” 하였습니다. 왜적은 확실히 전멸될 때를 당하였고 종묘와 사직은 벌써 회복될 가망이 있으니, 경사를 치하하여 마지않습니다.
평양을 수복하고 나서 다시 중국 군사에게 강을 건너 전진하라고 청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만, 북도에 남은 적은 아직 소굴을 의지하여 물러가려 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제 만약 중국 구원병이 많이 와서 평양을 벌써 수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병은 반드시 기가 꺾여 감히 서쪽으로 급히 내려오려고 계획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법에 먼저 소문을 내고 뒤에 실행한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이 시기를 이용해서 일부의 군사를 나누어 보내 영흥(永興)ㆍ고원(高原)ㆍ정평(定平) 등으로 나오면, 북도의 백성들은 왕사(王師)를 기다린 지 오래여서 반드시 메아리처럼 호응할 형세가 있고, 함흥에 남은 적들은 뒷걱정이 있을 것입니다. 함흥의 적이 물러가면 북도의 정문부(鄭文孚) 등이 거느린 군사는 수레를 나란히 몰고 전진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중국 장수가 안주에 왔을 때 직접 “평양을 수복하고는 군사를 나누어 북으로 진격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말하였으나, 걱정거리는 중국 군사가 가는 데마다 군량을 대는 일입니다. 북도는 산악 지대라 한결같이 비었으니 뒤댈 길이 난감하고, 더구나 고갯길은 험하고 멀기도 하여 중국 군사는 빨리 지칠 것이니, 우리 군사를 보내 도모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변변치 못한 생각으로는, 평양에 적이 없으면 저하(邸下 동궁)의 호종(扈從) 중에서 날쌘 군사 4, 5백 명을 골라내고 강동 조방장(江東助防將) 박명현(朴名賢)이 거느린 군사를 보태면 수가 1천여 명은 될 것입니다. 또한 재신들 중에서 슬기 있는 한 사람을 함경도 순찰사로 삼아, 양덕(陽德)과 맹산(孟山)을 넘어서 남도의 군사와 민간인을 합하여 별안간 함흥 이남의 적을 무찌르면, 열흘 동안에 철령(鐵嶺) 이북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강원도와 합세하여 경기도로 향하고 대군은 황해도를 따라 내려가 동서로 기각(掎角)을 이루면 서울을 수복하고 추악한 무리들을 다 쫓아 버릴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에게 명을 내리시어 좋은 의론을 따라 처리하여 기회를 놓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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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日巡察使李元翼等傳報。天兵與我軍。協力進攻平壤。天兵入自七星門。我軍入自含毬門。時方廝殺云云。倭奴政當殄滅之期。宗社已有重恢之望。不勝慶賀之至。平壤旣已收復。則所當更請天兵。渡江前進。第慮北道之賊。猶據巢穴。不肯退去。今若聞天兵大至。平壤已復。則必褫氣不敢遽爲向西之計。然兵有先聲而後實。宜乘此際。分遣一枝軍馬。出於永興,高原,定平之間。則本道人民。久望王師。必有響應之勢。而咸興之賊。亦有反顧之憂。咸賊旣回。則北道鄭文孚等諸軍。可方軌而進。頃日天將到安州時。面言旣得平壤。則當分兵向北云。而所患者。天兵所過。必須糧餉。此道山郡一帶。一樣虛竭。難可接濟。且嶺路險遠。客兵易爲因疲。不如使我軍往圖爲便。區區之意。平壤旣爲無賊。則邸衛扈從。分出精銳四五百。益以江東助防將朴名賢所率之軍。其數可至千餘。又使宰臣有計慮一人。爲咸鏡道巡察使。踰陽德,孟山。糾合南道軍民。乘其不意。勦擊咸興以南之賊。旬日之間。鐵嶺以北。可以收拾。然後與江原道合勢。以向京畿。而大軍從黃海以上東西掎角。京城可復。醜類可盡。伏乞下備邊諸臣。從長議處。毋失機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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