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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관야정

관야정

관야정은 평지인 평양성 외성 안에 바둑판 모양으로 남아있던 종횡으로 난 도로가 기자의 정전유지가 아니고, 고구려 도성의 도로유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도로의 네 귀퉁이에 돌을 세운 것은 도성을 설계할 때 도로의 폭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고구려가 이곳에 도읍을 정할 때 도로의 폭을 정하고 석표(법수)를 세운 것으로 보면서, 석표의 가장 오래된 것은 후세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가 조사한 석표의 간격을 고구려척(곡척의 1척 1촌 7분 6리, 약 0.35638m)으로 계산하면 대로는 40척, 소로는 15척이 되었고,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구역을 조사하여 보면 600척(약 181.8m)이 되며, 양쪽 도로의 폭을 제외하면 거의 500척이 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1구획(정)의 길이는 양쪽 도로 폭을 포함하면 고구려척으로 600척이 되고, 도로의 폭을 제외하면 500척(약 178.19m)이 된다고 하고, 이러한 비율로 도시가 설계된 것으로 본 것이다. 이는 전자형구획의 한 변의 길이를 고구려척으로 500척에서 600척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러한 분할은 수문제의 대흥성과 같기 때문에, 이러한 고구려의 도시설계는 대흥성의 도시설계를 참고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즉, 그는 당의 장안성이 된 수의 대흥성에도 종횡으로 대소의 도로가 구획되었는데, 후기 평양성의 도시설계는 수의 도성을 참고해서 종횡으로 도로를 만든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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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야정 자료번호 : ispy.d_0001_004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