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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골성(烏骨城)

 
봉성시(鳳城市)의 동남쪽, 기암괴석과 높은 봉우리로 유명한 해발 930m의 봉황산과 765m 고려산(高麗山)의 능선이 넓은 분지를 에워싸고 있다. 둘레가 약 15km에 달하는 요동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다. 산성의 북쪽과 동쪽은 애하(靉河)에서 가깝다. 산성의 동남쪽으로 심양과 단동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지나간다.
현지에서는 봉황산성(鳳凰山城)으로 부르고 있는 이 성은 험준한 절벽을 이용하면서도 산등성이를 따라 잘 다듬은 돌로 성벽을 쌓아올렸다. 두 산으로 연결된 능선은 북동에서 남서로 달리다가 평지를 만나는데, 크게 열려진 이곳에 정문인 남문터가 있다. 남문을 보호하던 옹성의 모습이 거대한 토벽으로 남아 있고, 그 정면으로 예로부터 이용된 도로가 지나고 있어 당사(唐使) 진대덕(陳大德)이 남긴 정탐기 『고려기(高麗記)』에 ‘(고구려의 성 가운데) 추요지처(樞要之處)’로 언급한 까닭을 실감할 수 있다. 오골성은 요동방면과 왕도 평양성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있고, 서쪽으로는 건안성(建安城)과 안시성(安市城) 등 요하 방어선의 주요 요새들과 연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성은 대수당 전쟁기의 여러 전투에서 고구려 방어체계의 중심 성으로 활약하였다.
북문터는 산성의 동북부, 두 산을 연결하는 능선이 움푹 꺼져 협곡을 이룬 곳에 있다. 그 좌우 능선으로 정연하게 쌓아올린 성벽이 잘 남아 있다. 북문의 서측으로 장대로 여겨지는 시설물이 남아 있다. 이곳에 서면 성 안은 물론 멀리 남문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북문을 빠져나가면 골짜기가 넓게 펼쳐지며, 차단벽이 성 밖 삼관묘구리(三官廟溝里)에 남아 있다. 동쪽에도 성문이 하나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는데, 특히 동쪽으로 많은 건축유지가 남아 있다.
현재 성 안에는 마을과 경작지가 북서면에서 동북면까지 펼쳐져 있고, 남문 터의 동편으로는 군부대가 들어서 있다.
오골성의 전경(서남→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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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골성의 전경(서남→동북)

오골성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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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골성 단면도

봉황산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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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황산의 전경

남문터(동북→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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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문터(동북→서남)

북벽Ⅰ(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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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벽Ⅰ(1998)

북벽Ⅱ(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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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벽Ⅱ(1998)

성 안의 전경(장대→남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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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의 전경(장대→남서, 1998)

북벽 근처의 석축단(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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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벽 근처의 석축단(1998)

북벽Ⅲ(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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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벽Ⅲ(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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