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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등록

이중하가 홍단하(洪丹河)는 조선 영토로 조사지역에 합당치 않다고 회신

  • 발신자
    李重夏
  • 수신자
    淸國官員
  • 발송일
    1887년 4월 19일(윤)(丁亥閏四月十九日)
□ 같은 달[1887년 윤4월] 같은 날[19일] 조복에 답함
 조복하는 일입니다. 귀 조회를 접수하였는데 그 내용은, “본국처에서 귀 부사와 함께 홍토산(紅土山) 물줄기의 두 수원(水源)을 감득(勘得)하였는데, 비퇴(碑堆)와 거리가 매우 멀고, 물줄기가 비퇴와는 양자가 서로 관통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동유와붕수(董維窩棚水)에서 남쪽으로 흐르는[南面] 물줄기를 조사하였는데, 이 동유와붕수[棚]를 경유하여 물줄기를 따르니 물이 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생각건대 전번에 말씀하신 ‘복류’는 조사하였으나 실제 근거가 없었습니다. 이에 귀 부사도 “홍토산수는 비퇴와 접해 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동붕수(董棚水)는 홍토산수에 접해 있지 않고, 또 가운데에는 강격(岡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국처와 귀 부사의 두 차례 감계는 험난하고 어려운 고통이 필설로는 곡진히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귀 부사께서 이 감계하는 일을 위해 심력(心力)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경계지점[界址]은 하루에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고, 소국의 인민들은 한 달에 편안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재삼 귀 부사와 어느 곳을 경계의 근거로 삼을지 의논하며 결정하였습니다. 권 통사(通詞)는 구술(口述)하기를 ‘부사께서는 직접 홍토산수는 비퇴 및 동붕수와 본디 접해 있지 않고, 복류(伏流)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나, 정부의 의견이 홍토산수를 경계로 정하는 데에 있다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으니, 홍토산수를 제외하면 부사께서는 감히 책임지고 결정하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본국처는 진실에 근거하는 연유로 진정 통사의 구술하는 말이 오류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응당 조회를 시행하여 여쭈어서 권 통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서로 부합하는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에 조회합니다”라고 하여, 이를 접수하고 이번에 조사하였는데, 귀국처와 함께 비바람을 맞으며 험난함을 견디어내며 두루 수원(水源)을 조사했습니다. 귀하의 논의는 홍단하를 경계로 삼는 것이었고, 저희의 논의는 홍토수를 경계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홍단하를 조사하는 것은 원래 우리나라[敝邦]의 내지(內地)에 속하므로 애초에 의논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건대 홍토산수 앞의 한 물줄기는 곧 『황조일통여지전도』에 실린 대도문강이고, 이는 우리나라의 수백 년간 경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의 의견은 오직 이 물줄기를 경계로 정하여 옛 경계를 준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폐직이 이 물줄기 한 걸음도 버릴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퇴가 [홍토수와] 매우 멀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번에 함께 본 동류(董流)주 394
편자주 394)
동붕수(董棚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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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인접해 있지 않다는 것은 어제 이미 감계한 것입니다. 사실에 의거하여 답변을 드리고 아울러 통사에게는 오류가 없습니다. 이에 조회합니다.

  • 편자주 394)
    동붕수(董棚水)일 것이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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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하가 홍단하(洪丹河)는 조선 영토로 조사지역에 합당치 않다고 회신 자료번호 : gd.k_0002_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