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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하가 수원 조사에 불응하겠다고 회신

 
  • 발신자李重夏
  • 수신자淸國官員
  • 발송일1887년 4월 8일(윤)
□ [1887년] 윤4월 8일 장파에 있는 청국 관원에게 조회 [주364]
편자주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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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하가 보내는 조회이다.


 조회하는 일입니다. 서두수가 교계(交界)와 관계없음은 지난해 수차례의 변증을 거쳤는데 뜻하지 않게 금번 행차에서 귀국처가 또 가서 이 물줄기를 감계하고자 하니, 이치상 실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도문(圖們)의 산수(山水)를 조사한다면, 변계(邊界)의 형편은 『황청일통여지전도(皇淸一統輿地全圖)』에 실려 있고, 지난해[上年]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 [주365]
편자주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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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각국통상사무아문(總理各國通商事務衙門)의 줄임말. 더 간략히 ‘총서(總署)’라고도 한다. 1860년 북경조약의 체결로 외국공사가 북경에 상주하게 되었다. 본래 서방 교섭은 오구통상대신(五口通商大臣)과 예부(禮部)의 이번원(理藩院) 등이 맡고 있었으나, 기존의 기구로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아편전쟁이 끝난 후인 1860년 12월 공친왕(恭親王) 혁흔(奕訢) 등은 총리각국사무아문의 설립을 건의하는 상주를 올렸다. 같은 달 함풍제(咸豊帝)는 이 기구의 설립을 허가했다. 이 아문은 구미와의 교섭사무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철로, 전보, 관세학교 등 각 분야사업도 관장했다. 총리각국사무아문이 설립된 이후에 군기처는 대내사무만 관장하고, 대외사무는 총리각국사무아문에 귀속되었다.

의 주의(奏議)에선 “서두수는 대도문강(大圖們江)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본다면 다시 변론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겠습니다. 폐직은 결단코 귀국처의 논의를 따라 감계할 필요가 없는 물줄기로 멀리 감계하는 것에 불응할 것입니다. 이에 조회하오니, 번거롭더라도 귀국처는 사조(査照)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에 조복합니다.

 
주 364
이중하가 보내는 조회이다.
주 365
총리각국통상사무아문(總理各國通商事務衙門)의 줄임말. 더 간략히 ‘총서(總署)’라고도 한다. 1860년 북경조약의 체결로 외국공사가 북경에 상주하게 되었다. 본래 서방 교섭은 오구통상대신(五口通商大臣)과 예부(禮部)의 이번원(理藩院) 등이 맡고 있었으나, 기존의 기구로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아편전쟁이 끝난 후인 1860년 12월 공친왕(恭親王) 혁흔(奕訢) 등은 총리각국사무아문의 설립을 건의하는 상주를 올렸다. 같은 달 함풍제(咸豊帝)는 이 기구의 설립을 허가했다. 이 아문은 구미와의 교섭사무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철로, 전보, 관세학교 등 각 분야사업도 관장했다. 총리각국사무아문이 설립된 이후에 군기처는 대내사무만 관장하고, 대외사무는 총리각국사무아문에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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