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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과 토문강의 명칭과 관련한 소개와 의문

 
     ○ 두만강의 이름은 예전부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왕래하는 공문서에 혹은 토문강(土門江)이라고 칭하고, 또는 도문강(圖們江)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일찍이 변계(邊界)를 밝히지 않아서 그 칭하는 바를 크게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경계를 논의하는 것에서 우리나라의 원래 자문에 토문강 경계 조사를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신(臣 : 이중하)이 토문감계사(土門勘界使)로 명을 받들고 나아가 비석의 동쪽 토문강의 경계를 자세히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총리아문(總理衙門) 주의(奏議)에서는 곧 도문강 사계파원(圖們江査界派員)의 직함이라고 했습니다. 또 “도문강 감계관(圖們江勘界官)원문에는 ‘圖們江査界官’이라고 하였으나, [주647]
    편자주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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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문감계(土門勘界)』에 의거하여 ‘圖們江勘界官’로 고쳤다.

    이라고 하면서 중국파원은 단지 도문강의 감계 조사를 위주로 하면서 도문강은 두만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단지 두만강의 근원을 조사한다면 신이 명을 받든 뜻과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계를 논의하는 일은 자연히 갈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이 수차례 토문(土門)과 도문(圖們)은 같지 않다고 말하면 저쪽에서는 오직 토문과 도문은 본래 한 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만주어(滿洲語)인데 『청문감(淸文鑑)』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주 647
    『토문감계(土門勘界)』에 의거하여 ‘圖們江勘界官’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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