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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축소와 중간 배상

1. 일본의 영토축소와 중간 배상

나치스 독일이 항복한 후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에서 미국·영국·소련 3개국 연합국 정상이 모여 2차 대전 전후처리에 관하여 회의하고, 1945년7월 26일 일본에 대한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의 항전이 계속되자 미국은 8월 6일과 9일에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또한 9일에는 소련이 그때까지 지켜오던 일본과의 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국 동북지방의 만주국 주둔 일본군에 대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충격을 받은 일본정부는 9일 서둘러 국체(國體) 즉 천황제(天皇制)의 유지를 조건으로 하는 포츠담선언 수락을 결정했다. 그리고 8월 14일 스위스와 스웨덴 주재 일본공사관을 통하여 연합국에게 항복 의사를 통고하고, 이튿날 천황의 목소리를 통해 국내외 일본 국민에게 이 사실을 발표했다.
일본의 항복에 따라 카이로선언·얄타협정·포츠담선언 등, 전쟁 중에 연합국측이 구상했던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구도가 현실로 나타났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지속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세력을 확장해 온 일본은 침략전쟁을 통해 얻은 해외 영토들을 모두 상실했다. 반면에 중국은 타이완과 동북지역을 회복했고 중일전쟁으로 일본군에 점령당했던 지역에서 주권을 회복했고 한반도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다. 일본이 상실한 영토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타이완 식민지: 청일전쟁 결과 할양받은 타이완과 펑후[澎湖]섬들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중화민국에 넘겼다.
b. 남부 사할린(Sakhalin) 과 쿠릴(Kuril) 열도: 러일전쟁 결과 할양받은 남부 사할린과 함께 오늘날 북방영토로 불리는 섬들을 포함한 쿠릴 열도가 소련 지배권 하에 들어갔다.
c. 한반도: 일본군 무장 해제를 이유로 미국과 소련이 진주하여 분할 점령했다. 1948년 남한과 북한에 각각 독립 정부가 수립되었다.
d. 남양군도 :1차 대전 이후 위임통치 후에 일본이 병합했으나 패전 이후 실효적 지배권을 상실하고 미국의 신탁통치로 이어졌다.
e. 오키나와: 오키나와 본섬과 주변 도서들이 미국의 군정 아래 들어갔다가 1972년에 모두 일본의 지배권으로 복귀했다.
f. 오가사와라섬 등: 오가사와라제도[小笠原諸島], 화산열도(火山列島), 미나미토리섬[南鳥島], 오키노토리섬[沖ノ鳥島]이 미국의 관리권 아래 들어갔다가 1968년에 일본으로 복귀했다.
 
일본은 패전 결과 중간배상의 형태로 전쟁배상 일부를 지불했다. 중간배상이라 함은 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군수공장의 기계 등 일본 국내에있는 자본설비를 철거하여 과거 일본이 지배했던 국가에 이전하거나 양도하는 형태의 배상을 말한다. 이것은 패전 직후 폴리(Edwin E. Pauley)를 단장으로 하는 대일 배상조사단이 추진한 배상정책이다. 패전 이후 1950년 5월까지 일본에서 총 1억 6,515만엔 상당의 공장 기계가 중간배상을 위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가운데 중국이 54.1%, 인도네시아(네덜란드)가 11.5%, 필리핀(미국)이 19%, 버마주 965
각주 965)
버마(Burma)는 1989년부터 미얀마(Myanmar)라는 국가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주로 1940년대와 50년대를 언급하는 까닭에 역사적 용어로서 버마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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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말레이(영국)가 15.4%를 가지고 갔다.

  • 각주 965)
    버마(Burma)는 1989년부터 미얀마(Myanmar)라는 국가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주로 1940년대와 50년대를 언급하는 까닭에 역사적 용어로서 버마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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